요나 콤플렉스

by 달빛그림자

어린 시절부터 꿈이 많았던 나는 돈이 안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하게 된 일 중에 하나가 영화사 스크립터였다.

때는 바야흐로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중국 올로케이션을 떠나는 영화팀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스크립터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

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연출부에 있으면

현장도 경험할 수 있고 본래 내 꿈이었던 작가가 되는 일도

좀 수월하리란 생각에 덜컥 이력서를 보냈다.


영화사는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영화사였는데

뭐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특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운이 좋았던지 이력서를 보낸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게 됐고 소심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였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뒤에 또 면접을 보세요? 제가 잘할 수 있으니까 면접을

더 보지 마시고 그냥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당차게 이야기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뭐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덕이었는지 나는 정말 그 팀의 스트립터가

될 수 있었다.


영화사의 스크립터란 문서 작업을 전반적으로 책임지는

일인데 감독님과 함께 영화의 제작 과정인

Pre-Production, Production, Post-Production에

모두 참여하는 스태프다. 쉽게 말해 현장에서 감독님 옆 의자에

앉아서 함께 모니터를 보며 어떤 씬의 어떤 테이크가

OK가 났는지, NG가 났는지, Keep이 났는지를 체크하며

문서를 정리하는 사람이다.

영화사에는 크게 연출부와 제작부 두 파트가 존재하는데

제작부는 영화사의 정직원인 반면 연출부는 어떤 영화를 위해

구성되는 팀이라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받는

계약직 스태프였다. 물론 현재는 이런 현장 스태프들의

열악한 상황이 많이 개선이 됐다고 들었다.


아무튼 나는 우연찮게 들어간 영화사에서 햇수로 4년을

근무하며 4편의 영화를 준비했는데 참 희한하게도

내가 들어가는 영화팀마다 속된 말로 영화가 엎어지는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영화를 찍어야 돈도 받을 텐데 들어가는 영화마다 엎어지니

그 기간 동안 나는 궁핍한 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영화사에서 교통카드 값을 충전해주고, 점심저녁은

장부에 달아놓으면 결제를 해줬기에 굶어죽지 않는 정도로

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사 스태프가 바라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물론 나도 실제 현장에 나가 배우들의 연기도 보고,

영화 제작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영화 제작이 지연될수록 당시 내 마음에는 차라리

크랭크인이 안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자라났다. 영화 현장을

경험해보겠다고 자원한 일이었는데 막상 그 일이 실제로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존재했던 것이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훗날 나는 우연한 기회에 중국어 번역을 하게 됐는데

한동안은 영화사 일과 번역을 병행하다 네 번째 영화가

엎어진 후로는 중화권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됐다. 그러다 책 한 권을 맡게 됐는데

그 책에 등장한 '요나 콤플렉스'란 단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본래 요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로 악한 도시

니느웨로 가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이 임무를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쳐버렸다. 그 뒤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바다에 빠져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된다.

'요나 콤플렉스'는 바로 이런 요나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중요한 임무나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다하고

현실을 회피하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실제 요나 콤플렉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나는 작가의 이런 해석에 깊이

공감했다. 영화사에 다니던 시절 영화 촬영이란 꿈과 목표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론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나였었기에

요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누구보다 이해가 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당시 영화가 촬영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던 건 스스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현장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나는 늦깎이 영화인으로서 사실 사방이 모르는 것 천지였다.

물론 내가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은 연출부 사람들이나 조감독님,

감독님도 모두 아는 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면서

마냥 나만 배려해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적당히 눈치로 일을 배웠고, 적당히 문서 작업하는 일도 익혔다.

물론 일이 막히면 연출부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100%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모든 걸 적당히 하다보니 크게 욕먹을 일은 없었지만

그 일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터라 현장에 나가면

실수를 남발할 것이 내 눈에 먼저 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현장에서 폐를 끼치고 욕을 먹느니 차라리 영화 촬영이 시

작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실수를 하고 욕을 먹느니 일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를

바랐다니 얼마나 이기적인 마음인가.

그것은 자신감 부족과는 다른, 준비 부족에서 온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영화 촬영이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렇다, 나는 그 당시 바보 소리를 좀 듣고

머리를 쥐어박히더라도 묻고 또 물으며 모르는 것을 알고

넘어가야 했다.

멍청하게 보이더라도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정확히 챙겨 물어야 했다.

나는 소심함을 무기 삼아 실수 자체가 일어날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실수를 줄일 방법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창피해서,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핀잔을 듣기

싫어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뤘다.

그것도 무려 영화 4편을 작업하는 동안 내내 말이다.


비가 내리지 말라고 내가 마음 속으로 내내 기도한 덕분(?)인지

나는 뮤직 비디오 한 편을 찍는 현장에 나가본 것을 제외하면

결국 영화 한 편 찍어보지 못하고 영화인 생활을 마무리해야 했다.

요나는 결국 고래 뱃속에서 토해져 나와 하느님이 맡긴 임무를

완수했지만 나는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그때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소심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제대로 알고

넘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장 멍청해 보이는 것은

사실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알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며 눈앞의 순간만 넘기기를 바라면 결국

제대로 된 준비를 마칠 수 없고 진정으로 원하던 목표나 임무가

맡겨졌을 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적당히를 외치며 꿈이나 목표를 이루려는 사람은

결코 최선을 다하는 멍청이와 바보를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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