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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Oct 27. 2021

08 오레오(2)

누구인가?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아픈 길고양이


 2018년 11월에 퇴사를 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은 편도 3시간 거리의 길을 달려 고양이들을 보러 갔다. 놀이동산에 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고양이를 보기 위해 그 먼 거리를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솔직히 나 스스로도 잘 이해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보지 않고는 걱정되고 그리워 자꾸 생각나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오레오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애 첫 겨울나기가 힘들었던 걸까? 심한 허피스에 걸려 눈곱과 콧물, 기침이 심하며 식욕도 떨어져 밥은커녕 한참이나 설득해야 겨우 츄르를 먹어준다고 했다. 심지어 레오는 임신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봤던 2월 19일에는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확연히 배가 불렀다고 한다. 19년 3월 31일, 레오의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사 유튜브 화면 캡처


 한 달여 만에 방문한 기숙사, 3월의 끝자락이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의 기숙사 주변을 둘러보며 레오를 찾았다. 하지만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아도 마른 잔디밭에서 자고 있던 크림이와 허물어져가는 박스집에서 혼자 자고 있던 프레즐만 보였다. 영상으로 전달받은 레오의 상태가 심각해 보였는데, 레오를 찾지 못해 병원에 못 가는 경우는 생각해두지 않았기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레오가 처음 자주 있었던 흡연장과 오토바이 주차구역을 둘러볼 때였다. 레오를 발견했다.




 레오는 겨우 고개를 들어 내가 왔다는 것만 보고는 다시 웅크린 채로 가늘게 숨을 쉬었다. 간신히 숨 줄만 붙들고 있는 모양에 너무 화가 났다. 그렇게 죽고 못살더니 레오가 임신하고 아프자 남루하지만 따뜻할 박스집을 빼앗고 혼자 자고 있던 프레즐, 레오를 예뻐했으면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기숙사 사람들. 하지만 그건 모두 핑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책임을 미루고 이제야 나타난 나 자신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레오의 매 호흡이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내가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도 눈을 떠보기는커녕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레오에겐 모든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즉시 콜택시를 부르고 레오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택시가 도착하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다시 깨달았던 것 같다. 치즈가 내 마음속으로 폴짝 뛰어들어왔던 그때처럼, 내가 크림·치즈·프레즐만큼이나 레오를 뼛속까지 깊이 사랑했다는 걸 느꼈다. 매서운 바람이 쌩쌩 불어서 인간이 롱 패딩을 입고도 덜덜 떨 정도로 가혹한 날씨에, 아무런 가림막도 없는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힘들게 숨을 쉬던 레오…. 얼마나 추웠는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덜덜 떠는 레오를 보며 무력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려고 레오를 이동장에 넣었다. 그 사납던 레오가 저항 한 번 없이 인형처럼 달랑 들렸다. 그 모습마저도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레오는 택시를 타고나서야 덜컹거리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딘지 둘러보기도 했지만, 너무 아프고 힘들어 궁금한 것보다는 쉬는 것이 먼저였다. 병원에 가는 내내 눈을 감고 쉬었다. 나는 레오가 정신 차린 것에 안도하고, 혹시라도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이동장을 끌어안았다.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데려다주고 싶었다.





 병원에 도착해 몸무게를 쟀다. 4.58kg이었다. 한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것도 미안한데, 임신을 했는데도 5kg가 안 넘었다니 충격이었다. 진작에 중성화를 시켜줘야 했는데.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의 일이 중요했다.


 몸무게를 잰 레오는 이동장에 들어가기 싫다고 해 내가 꼭 껴안고 있었다(동물병원에 진료 보러 온 게 우리밖에 없었다). 한때 기숙사를 주름잡았던 미모의 레오. 얼굴이 퉁퉁 부어 눈이 작아지고, 눈곱과 콧물이 말라붙고, 그루밍할 기운도 없어 털이 꼬질꼬질해졌다. 그래도 그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레오가 푹신하고 따뜻하고 편안함만을 느낄 수 있게 안아주었다. 레오도 내 품 안에서 옛날 기억이 난 걸까?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


 수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우선은 초음파로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임신 20일 이전의 초기 상태에서는 초음파로도 임신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에게 듣기론 레오의 배에 아기가 움직이는 게 육안상으로 보일 정도라고 했으니 초기는 아닐 것 같아 진행하기로 했다.





 사나운 레오의 정신이 돌아왔으니 초음파를 진행하는 동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레오는 아주 얌전히 있어주었다. 정신만 돌아오고 기력은 돌아오지 않은 탓일까? 하지만 레오의 눈빛은 '이 인간들이 나를 도와주려는구나' 하고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초음파로 확인한 결과 레오는 임신이 맞았다. 아기 심장이 뛰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감격스럽고도 원망스러운, 대견하고도 안쓰러운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릿수는 꽤 많아 보이는데, 정확한 마릿수는 초음파가 아닌 X-ray로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X-ray는 44,000원이었고 찍지 않았다. 가격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방사능이 걱정되어 한 선택이었는데, 집에 와서 '찍을걸, 찍어볼걸.'하고 매우 후회했다.


 임신 중일 경우에는 임신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약만 복용이 가능한데, 현재 레오가 걸린 허피스는 먹는 약으로 치료할 경우 아기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먹는 약은 처방해주지 않으셨다. 대신 심했던 눈병을 위해 안약과 안연고를 하나씩 처방받았다. 허피스가 심한 상태였지만 아기들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다. 출산 1달 후 기침과 콧물까지 집중적으로 치료하고, 현재로선 안약으로 눈병만 관리하기로 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오레오


생일은 임의, 체중은 마지막 진료일 기준이라 이 때는 4.58kg가 맞았다




 


오레오레 살자, 오레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레오는 이제야 눈을 뜨고 주위를 좀 살펴보았다. 덜컹거리는 택시 안에서 네트 너머로 내내 나를 바라보던 오레오.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숙사에 도착해 무너져가는 박스집 쪽으로 갔다. 프레즐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고양이가  알겠느냐만은 프레즐에게 화가 날뻔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생존이 달린 야생에서 약육강식의 삶이란 어쩔  없는  아닐까. 다만 모든 문제는 인간의 탓 아닐까. 심지어 프레즐도 컨디션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아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버려져 있던 박스를 주워와 신문지와 집에서 가져온  니트를 깔아주었다. 최대한 푹신하고 따뜻한 니트로 가져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박스집을 덮고 있던 낡은 이불을 끌어와  채를 나란히 덮었다. 박스집 2호점 탄생의 순간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때부터 이동장의 문을 열어놓았지만 레오는 나갈 생각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앞에 사료를 뿌려주어도 먹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고단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봐준다고는 했지만, 그 한 달이란 고양이들에게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오레오가 겪었을 수난이 밀물처럼 몰려와 나는 그냥 레오가 기운을 차리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박스집 1호점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는 오레오


박스집 1호점에 깔아주었던 니트. 다시 빼앗아서 미안해 프레즐




 바람도 막아주고 폭신한 바닥도 있는 이동장에서 한참을 졸던 레오가 눈을 떴다. 눈앞에 놓여 있던 사료도 천천히 먹어주었다. 다시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 같은 분위기였다. 2호점에는 프레즐이 홀랑 들어가 버려서 레오를 1호점에 넣어주려 했는데, 한사코 거부하고 차가운 잔디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목말라하는 것 같아 따뜻한 물을 떠 온 사이에 프레즐은 다시 1호점, 오레오는 2호점에 들어가 있었다.

 

 바닥에 깔려있던 니트를 레오에게 둘둘 말아주었다. 안약과 안연고도 넣어주었다. 집사는 떠날 시간이 됐다. 다행히 안약과 안연고는 나 못지않게 오레오를 걱정해주시는 기숙사생에게 넘겨드릴 수 있었다. 레오를 집으로 데려가지 못하는 게 속 쓰리도록 미안했지만, 반려동물을 들일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면 가족들의 동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퇴사한 이후로 나는 꾸준히 고양이를 데려오겠다고 어필하고, 가족들은 꾸준히 반대를 하는 상황이었다.



배가 부른 오레오


보양을 위한 닭가슴살 홀랑 먹으려는 프레즐



좌측이 2호점



결국 레오와 같은 상자를 쓰는 프레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레오와 처음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흡연장 화단에서 숨어서 자던 오레오, 성질머리 대박이었던 앙칼진 오레오. 내 눈에는 아직 아기 같고 실제로도 아기가 맞는데, 임신을 해서 아파도 치료하지 못하고 고통만 받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너무 미안할 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이들의 중성화를 위해 모으던 돈과 날짜 계산, 출산 후 레오의 케어 및 치료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확실한 것은 이날 이후로 레오가 나에게 온 진심을 다 내주었다는 사실이다. 이후로 기숙사에 방문하면 나를 알아보고 꼬리를 세우고 바르르 떨며 다가오고, 누나 바라기였던 프레즐조차 귀찮아서 가만히 누워있는 날에도 레오는 내가 떠날 때까지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나를 위한 거겠거니 하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레오의 검진을 받은 지 3일 후,









 2019.04.03., 레오가 출산했다.





-오레오(3)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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