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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Oct 29. 2021

09 오레오(3)

아기 고양이 납치사건

어떤 무지는 폭력이다


 본인이 관심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명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특히 고양이가 반려동물계의 샛별로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공부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분양받는 사람이 많다. 펫 샵에서 돈을 주고 사거나, 처음 만난 고양이를 지켜보지 않고 함부로 '냥줍'하거나. 그런 사람 중에는 자신이 불쌍한 동물을 '구원'하는 거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동물을 가족이 아닌 패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기를 낳은 레오도 이런 사람 때문에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대동 단결하여 분노한 사건이다.



레오와 아기들. 왼쪽부터 첫째, 둘째, 셋째(임의)



 19년도 4월 3일, 추운 겨울 레오가 출산에 성공했다. 병원 검진을 갔을 때 X-ray를 찍지 않아 총 몇 마리를 임신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7마리를 낳았다고 한다. 그중 혹독한 겨울 날씨에 살아남은 것은 3마리뿐이었다. 그마저도 레오의 심한 허피스가 옮아 아기들도 눈병과 기침, 콧물 증상이 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최소 2-3개월 간 수유가 필요하며 레오의 허피스 치료는 출산 1달 후부터 시작하기로 했으니 그동안은 레오와 아이들이 영양분을 잘 섭취하고 면역력을 기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양이를 싫어하던 기숙사 측에서도 출산한 고양이마저 냉대할 수는 없었는지 박스집을 없애지 않았다. 오레오와 세 마리 아기들은 암묵적인 승낙 속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차가운 겨울을 나고 있었다.


 프레즐도 아기가 태어나자 아빠 역할을 톡톡히 하며 오레오와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같은 집을 쓰며 따뜻한 몸으로 체온을 데워주고 그루밍을 해주는 등 공동육아를 했다. (고양이는 원래 공동육아를 한다.)



(아래에는 고양이 별로 간 아기 고양이 사진이 있으니 스크롤에 주의하세요.)












 

가운데 세 마리만 살아남은 아이들



 레오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직 근무하는 친구 편에 길고양이 겨울집을 보내 조립을 부탁했다. 박스집을 철거하지 않는 기숙사 측의 암묵적인 허용하에 겨울 집까지 설치가 되었다. 다행히도 살아남은 세 마리 아기들은 그렇게 조금 더 따뜻한 집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아래부터 첫째, 둘째, 셋째


왼쪽부터 첫째, 둘째, 셋째


박스집보다 나은 겨울집






사생팬 피해를 입은 기숙사 아이돌


 아직 근무 중인 친구나 몇몇 사람들이 나를 기숙사 냥이의 대모로 생각해주어 매일 여러 가지 소식들이 들려왔다. 레오의 안약을 챙겨주시는 집사님도 레오와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하루 한 번씩 알려주셨다. 그렇게 매일매일 성장해가는 아기 고양이와 초보 엄마 레오의 설레는 이야기를 들으며 레오와 아기들을 병원에 데려갈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친구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누군가 레오의 세 마리 아기 중 그나마 상태가 좋은 두 마리를 데려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들어가 있지 않은 아르바이트생 전용 오픈 카톡방에 '아기들을 데려왔으며 자신이 기르겠다'는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2019년도 4월 28일의 일이다.






 친구가 캡처해준 사진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너무 큰 분노가 너무 순식간에 몰아쳐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아기들을 데려간 즉시 원래 기르던 고양이와 합사 시킨 그 사람은 자신이 이미 기르는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사람이었다.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고양이는 산책을 시키지 않는다. 고양이는 태생이 영역 동물이라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당황하고 긴장하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 등의 이유로 잠시 불가피한 외출을 할 때에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스트레스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 작은 자극에도 놀라 액체처럼 유연한 몸으로 하네스를 벗어버리고 멀리 달아나는 것 역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럴 경우에는 고양이가 모든 상황에 너무 놀란 상태라 앞만 보고 달려가며, 정신을 차릴 때쯤엔 완전히 낯선 구역에 도착해 있기 때문에 찾기 매우 어렵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이라는 직업이 생겨난 이유기도 하다. 고양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한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고, 가슴속에 새겨두었을 격언도 있다.


<산책냥이의 끝은 실종이다.>


 애초에 산책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없다. 유튜브나 TV 프로그램에서 자꾸만 산책냥이가 노출되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대중들에게 산책냥이에 관해 설명도 없이 로망을 심어주어 고양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고양이 산책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초보 집사들은 '내 고양이도 TV에 나왔던 애처럼 특별한 고양이니까 산책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보면 개와는 달리 고양이 산책은 모두 집사의 욕심이며 그로 인해 고양이에게 해가 되는 일만 있을 뿐 득이 되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으면 그 동물의 습성을 공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기숙사 고양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유튜브·고양이 관련 서적·무료 강의·고양이 관련 커뮤니티 눈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을 쌓고 있었기에 이런 기본 중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기고양이들을 데려간 사람은 과거 산책냥이를 데리고 왔었다.



 또한 고양이들 간의 합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새로 온 고양이에게 어떤 질병이 잠복중 일지 알 수 없어 기존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새로운 고양이의 출현은 굉장한 스트레스기 때문에 고양이들끼리 싸움이 붙을 수도 있고 이렇게 처음부터 합사가 실패할 경우 같이 사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 그래서 최소 2주간 격리하며 며칠 간격을 두고 단계적으로 냄새 교환-대면-합사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간단하게 써두었지만 고양이 합사는 베테랑 집사들도 어려워할 정도로 큰 일이다.


 자칭 '아기 고양이 납치범'과의 이야기를 위해 나도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진작부터 알아봤어야 했지만, 좋게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당시에 캡처해두었던 오픈 카톡방 사진 일부를 첨부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체한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해당 카톡방에 올라왔던 의견 및 표현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용하지 않은 과격한 표현 혹은 고양이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또 길이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일부만 잘라서 올리는 것임을 밝힌다.






 그러나 고양이 납치범은 이 날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남은 아르바이트생들끼리 밤새도록 열띤 토론을 나눴다.


 고양이를 함부로 '냥줍'하는 것은 고양이에게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며, 스스로 자립과 생존이 가능한 길고양이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사람 손을 타서 야생성을 잃고 스스로 집사를 간택해 데려가 달라고, 도와달라고 따라오는 고양이나 다쳐서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는 예외 일 수 있겠다.


 하물며 아직 젖도 못 뗀 한 살 배기도 안된 아기 고양이들을 어미 몰래 데려가다니. 아기 고양이를 발견한다면 근처에 엄마 고양이가 있는지 최소 몇 시간에서 며칠을 지켜보다가 구조해야 한다.


 베테랑 집사들도 케어하기 힘들어하는 것이 젖먹이 고양이다. 젖먹이 아기 고양이들은 체온 유지에 도움을 주어야 함은 물론 3-4시간 간격, 올바른 자세로 분유를 먹여야 한다. 또 스스로 배변이 불가능해 배변을 유도해주어야 한다. 하루종일 옆에 붙어서 아기 고양이들만 돌봐야 하는 셈이다. 아기 고양이는 어미가 돌보더라도 연약한 생명체다. 어미에게서 떨어진 아깽이(아기 고양이)의 생존율이 낮은 데엔 다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생끼리 대화를 나눠봤자 정작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당사자 없이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 밝았고 나는  사람이 일어나면   있도록 카톡을 보내 두었다.



기숙사는 동물 금지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아이들을 안으로 들이지 못한 이유다.



 

 아기 고양이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말에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닉네임이 특이했던 그 사람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고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캡틴이라는 닉네임처럼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메고 다녔고, 처음 아기 고양이들을 데려갔을 때도 그 방패가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왔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컨셉이 있는 사람 같았다.

 



 한 아르바이트생이 그 사람의 인스타에서 과거의 발언을 캡처해오며 생명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완전히 드러났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아무리 이후에 고양이를 위해서 입사를 취소했다지만 차에서 동물을 기를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심지어 이 곳에서 일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고양이를 산책시키며 몇 번이나 찾아오다 아기들을 납치한 것이다. 아기 고양이를 돌려받을 수 있을 근거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레오의 아기들을 구조하기 위해 새로운 카톡방이 열렸다. J님이 동물보호 상담센터에 문의하셨고 나는 법률상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상담받은 내용과 법,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측의 입장을 정리한 J님이 납치범에게 개인 카톡을 보냈다. 그러나 한참 후에도 읽지 않아 전화를 하셨다. (그 사람의 연락처는 인스타와 블로그 등에 공개해 둔 채라 알 수 있었다.)





 굴삭기를 운전하는 현장에서 전화를 받아 아마 공사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이라 소음이 심했다고 한다. 아기 고양이들에게 분유를 먹였는지, 배변 유도를 해주었는지 묻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지 묻자 그냥 잘 있다고만 했다.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대답에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젖먹이 아기들이 사료를 먹을 수도 없을 테니 하루 종일 굶었을 텐데 상태가 괜찮을까?


 아이들을 키우려고 데려갔으면서 여태 병원을 가지도 않았다는 말도 황당했다. 보통 고양이를 입양하면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아직 병원 방문 전이며, 기를 수 있으면 기르고 어려울 것 같으면 다시 돌려놓겠다니? 생명은 장난감이 아니다.


 아이들의 상태가 걱정되어 다니던 동물병원에도 문의를 해보았다. 어미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제 자식임을 알아보고 다시 돌볼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하루가 지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루 종일 굶은 것 같다는 말에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라 병원에 와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은 오레오가 받아주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시끄러운 공사현장에 아기고양이들을 데리고 간 상태였다. 하루종일 자차에 놔두었으며 당연히 밥을 먹이지도, 배변유도를 해주지도 않았을 것이 뻔했다. 말 그대로 데려가기만 했을 뿐 전혀 케어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아기들을 기를거라고 우기고 있었다.






 이후 납치범은 J님과 카톡을 했다. 고소를 언급하자 돌려주겠다고 했다 한다. J님도 퇴사해 다른 지역에서 일을 다니던 중이셨지만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퇴근 후 기숙사로 가주셨다.


 4월 29일, 납치된 지 꼬박 하루 만에 아기 고양이들을 극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기숙사에서 만나면 불필요한 언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이동장을 가져가셔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나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겨울집 안에 깔려있던 담요를 먼저 챙겨가 아이들에게 냄새를 묻혀준 후 레오와 상봉시켜주었다.


 다행히 똑똑한 레오는 하루종일 찾아다니던 자기 아이들임을 알아보고 즉시 품어주었다.


 악몽 같은 하루였다. 하루 종일 마음을 졸였던 모든 사람들도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찾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울던 레오와 프레즐은 바로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았다. 아기들도 엄마를 알아봐서 놀라고 지치고 배고픈 몸을 달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 직접 가지 못하고 카톡으로 상황만 받아봐야 했던 나는 집 나간 심장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마중을 나온 프레즐과 아빠 품으로 달려가는 아깽이들




허피스때문에 비교적 상태가 좋지않던 고등어 무늬 고양이는 데려가지 않았다. 하루만에 다시 만난 형제들.





안심한 표정의 레오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기 고양이






 오픈 카톡 이전에 아르바이트생들의 소통 장소였던 페이스북 페이지는 누군가의 신고로 정지당했다는 웃픈 후기다.


 오늘의 글을 쓰기 위해 사진과 자료들을 다시 찾아보며 너무 화가 나서 몇 번이나 글쓰기를 중단했다. 당시에 오픈 카톡방에 올리기 위해 캡처해두었던 고양이 산책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런데 레오의 묘생은 왜 이렇게 기구한 걸까? 작은 고양이가 감당하기엔 힘든 일들을 겪었지만, 슬프게도 오레오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레오(4)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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