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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Nov 02. 2021

10 오레오(4)

아기를 낳은 아기 고양이

한 달배기 아기 고양이들


 극적으로 아기 고양이들을 돌려받은 레오는 프레즐과 함께 아기들을 살뜰히 살폈다. 본인도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출산까지 한 초보 엄마일 텐데, 레오의 극진한 육아에 기숙사 사람들 모두가 기특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란 아기 고양이 삼 형제는 아깽이답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궁금해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레오에게 옮은 허피스가 점점 심해져 눈병과 기침을 달고 살았다. 출생 1달, 고양이들이 병원 진료를 볼 때가 되었다.





 2019년 5월 2일, 고양이들의 진료를 위해 기숙사로 갔다. 레오의 안약과 안연고, 아기들의 눈 위생을 매일 챙겨주시는 기숙사 집사님과 함께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기존의 이동장으로는 아기들까지 모두 데려가기에 작은 것 같아 새로운 이동장을 구매했는데, 사진에 보이는 로켓형 이동장이 고양이에게 썩 좋지 않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소중한 아기들도 어느새 많이 자라 있었다. 아기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심스럽고 떨리는 마음이었다.


 공동육아를 하는 프레즐이 아이들과 함께 자고 있었다. 아이들을 납치당했다가 돌려받은 후, 레오는 이소를 한 상태였다. 보통 어미 고양이는 둥지를 옮겨 다니며 아기를 기른다. 같은 보금자리에 오래 머무를 경우 천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 알아놓은 곳도 없이 내가 보내준 겨울 집에서만 지내던 레오가 집에서 벗어나 다시 풀밭에서 아이들을 기르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적에게 노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말 못 하는 동물이라도 위험한 것은 다 알기 마련이다. 레오가 그만큼 스트레스받았을 생각을 하니 또 먹먹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이소 한 후에는 그전까지 가끔 보여주던 새끼를 꼭꼭 숨겨두고 혼자만 밥을 먹으러 왔는데, 기숙사 집사님도 한참 찾은 후에야 레오의 새 보금자리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의외로 밥자리와 가까운 곳이었다. 찬바람과 이슬을 걱정한 기숙사 사람들이 새로운 집을 만들어주었고, 다행히 레오는 그 자리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프레즐 등 위의 고양이가 막내, 그 옆은 첫째
육아가 피곤한 프레즐
아이들을 그루밍해주는 프레즐



 내가 도착했을 때 레오는 나무 위에 앉은 참새를 사냥하고 있었다. 한 달 전 시름시름 앓던 것보다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생기 넘치는 오레오의 사냥놀이에 안도감과 기쁨이 찾아왔다. 레오 바라기 프레즐은 아이들을 핥아주다가도 오레오에게 다가갔다.





 멀찌감치 밥을 챙겨주자 가필드도 나와서 식사를 했다. 용기를 낸 건지,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게 익숙해진 건지는 몰라도 곧잘 먹었다. 꼬리는 여전히 빼빼 마르고 여기저기 다친 모습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생존신고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크림이도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삼촌 고양이로서 조심스럽게 아기 고양이들의 냄새를 맡고 아껴주는 모습이었다.


 볕은 좋고, 고양이들은 화목하고, 아기들은 삐약삐약 울며 익숙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팔랑팔랑 걷고 뛰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흐뭇하게 바라볼 만큼 훈훈한 분위기였다. 이런 날들만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정도였다.


 챙겨간 사료를 오레오가 먹는 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아기들의 상태를 직접 보기로 했다. 식욕이 폭발한 프레즐이 레오의 밥을 잘 뺏어먹어서 레오까지 배불리 먹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모든 아기 생명체들은 다 귀엽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것은 아기 고양이가 아닐까? 이제 막 걷기 시작해 한 걸음 한 걸음이 미숙한 아기 고양이가 내게 뽀짝 뽀짝 다가온다면 그 놀라움과 귀여움에 심장이 난동을 부릴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행운을 여러 차례 얻을 수 있었다. 겁이 없는 아기 고양이들은 내 무릎을 계속 등반했고,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 가벼운 털 뭉치들이 떨어질까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룰 줄 모르는 그 조그마한 발톱은 꽤나 따가웠다.



위쪽부터 첫째, 둘째, 셋째의 뒤통수






냥글냥글 고양이 밭



 배를 채운 레오가 가서 눕자 아기들은 득달같이 레오에게 달려가 젖을 먹었다. 내 팔뚝만도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젖을 빨리는 레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해산 후에 영양식이나 보양식 한번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혼자 힘으로 아가들을 기른 레오가 '어때? 나 이만큼 해냈어.'하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출산한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이럴까? 아기의 귀여움보다는 레오가 뭉클하고 짠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견디지 않으면 어쩔 텐가. 레오는 내리막길에 불편하게 누워 익숙하다는 듯 젖을 먹였다. 보석 같은 눈으로는 나를 바라보았다. 무덤덤하다는 듯, 괜찮다는듯한 그 시선이 더 마음에 박혔다.


 레오와 함께 공동육아하며 실질적으로 아기들을 길러주신 기숙사 집사님이 아기들이 젖 먹는 것을 도와주셨다. 아기들이 태어난 순번은 모르지만 가장 작은 아기가 젖을 잘 못 찾아서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 일쑤라고 하셨다. 집사님이 매번 밥 먹는 것을 도와주신 모양이다.


 참고로 이 날 병원에서 몸무게를 잰 순서대로 아기 고양이들을 첫째, 둘째, 셋째로 부르게 되었다.



젖을 못 찾아 입을 갖다 대 준 셋째(위쪽), 발육이 좋은 첫째(아래쪽)
꾹꾹이를 하며 먹는 아가들
지나갈게요~ 아까 젖 먹어서 배부른 둘째
공동육아하는 프레즐도 조금 지친 표정이다



 

 아가들에게 젖을 먹인 레오는 다시 배가 고파졌는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나는 배가 빵빵해져 기분이 좋아진 아기 고양이들을 데려다 상태를 살폈다. 병원에 가서 첫째, 둘째, 셋째를 나눈 것은 이후의 일이지만, 편의상 계속 이 순서대로 정리를 하겠다.




다소곳한 흰양말, 살짝 잘라간 치즈케이크 같은 뽕주댕이의 매력, 첫째
레오와 같은 무늬,  커서 미묘될 떡잎이 보이는 둘째
몸집은 가장 작지만 노는게 좋은 셋째



 아기들 모두 허피스가 심한 상태였다. 기침도 했고, 육안상으로 보이는 눈병도 심했다. 기숙사 집사님이 하루 한 번 눈을 깨끗하게 닦아주신다는데도 금방 눈곱이 끼고 콧물을 흘렸다. 레오도 호전은 됐지만 여전히 기침이 잦고 눈병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 모두들 병원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콜택시를 불러 기다리는 중. 닥쳐올 고난을 모르고 그저 집사를 만난 것이 좋은 오레오.








이동장이 생각보다 작았기에 택시를 타는 내내 뚜껑을 위로 들어 올려주었다. 지퍼가 달려있는 천 부분이 늘어나 위쪽으로 조금이라도 넓혀주고 싶었다.


 두 번째 병원행이지만 이번에는 아기들을 데리고 있는 데다 제정신이었던 레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내 상황을 살폈다. 병원에 가서 몸무게를 재는데 레오의 체중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아기들을 낳아서인지, 육아가 힘들어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8kg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몸무게까지 재고 난 후 한 마리씩 진료를 보았다. 아기 고양이들은 모두 눈병이 심한 상태였다. 내가 보기에는 둘째가 가장 심한 것 같았는데, 셋째가 눈 안에서 농까지 나올 정도로 가장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들이 안약을 넣으러 안쪽 처치실로 들어가자 레오는 당황해서 계속 문만 바라보았다. 황망하게 방 안을 둘러보다가도 안쪽에서 작은 소리만 들리면 바로 뛰어가 관찰했다. 아무리 울어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곁으로 와서 톡 건드리고 문쪽으로 가는 시늉을 반복했다.





 한참 후에 안정을 취하는가 싶다가도 또 온 신경은 안쪽에만 몰려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안약도 넣고 얼굴이 깨끗하게 닦인 아기들이 나오자 오히려 당황했다. 냄새가 달라져 기존의 자기 냄새가 옅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의 허피스 치료제로는 1알에 1만 원짜리 항바이러스제로 처방해주셨다. 눈병은 하루에 안약 4번, 안연고 2번을 넣어 관리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던 레오는 그래도 아기가 나오자 안심했는지 집사의 옆에 기대 누웠다. 꼬물꼬물 아기들을 레오에게 건네주자 아기들이 다시 젖을 먹기 시작했다. 진료는 끝났는데 뜻밖의 식사 타임에 진료실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병원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본인도 놀라고 긴장했을 텐데 이렇게 잠시 쉴 틈도 없이 끊임없이 육아를 해야 하는 레오가 너무 지쳐 보여 안쓰러웠다.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자 프레즐이 기다리고 있었다. 빈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 뜻이다. 꼬물이들은 꼬물꼬물 익숙한 아빠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겨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레오는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약을 먹이려고 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기숙사 집사님 모두 고양이에게 약을 먹여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제 급여를 시도했으나 똑똑한 레오가 도망갔고, 츄르를 묻혀줬지만 츄르만 핥아먹었다. 무던하고 바보 같은 프레즐과 달리 레오는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던 것이다. 츄르 묻은 캡슐이 물렁거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급해진 우리는 다시 한번 강제 급여를 시도했다. 겨우 입 안에 넣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레오가 토를 하기 시작했다.





 괴롭다는 듯 켁켁거리고 기침을 하다가 거품 섞인 침을 사방팔방에 뿌리고 다니는 오레오. 그때에는 한 알에 11,000원짜리 캡슐약의 행방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놀라서 풀숲에 숨은 레오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 발만 동동 굴렀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자 아마 캡슐이 입 안에서 터져서 침으로 뱉어버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나 대단히 초보였구나. 레오도 고생이었네.' 싶지만,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대단히 큰일이 난 줄 알았었다. 수풀에 숨어버린 레오가 잔뜩 화가 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이때까지 쌓아온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건가 싶었다.


 다행히 이후에 엄청난 영광의 상처를 얻어가며 약 먹이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레오가 용서해주어 다시 친하게 궁둥이를 두드려줄 수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아깽이들의 멀끔해진 모습을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단한 하루 여정을 마치고 집에 온 오레오
프레즐과 오레오, 과거.
뽀송해진 첫째의 모습




이제야 제대로 보는 둘째의 얼굴




세수하니 미모뿜뿜 셋째



아기들이 모두 레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혼자 남은 프레즐



여전히 숨어 다니는 가필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든 오레오







 그런데 이렇게 잠시 평화로운 것 같던 레오의 묘생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 오레오(5)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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