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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Nov 12. 2021

11 길고양이 TNR 대작전

지자체에서 중성화 수술받기


 크림프레즐오레오는 아기들과 그럭저럭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일을 하는 친구가 보내주는 근황들은 힘든 삶의 단비 같았다. 이때쯤에 나는 새로운 직장을 잡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힘든 와중에도 고양이들 생각뿐이었다.


새침 프레즐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 고양이들


기숙사 집사님만 가서 약을 타 온 영수증



 그리고 아직 수유 중인 레오에게 다시 발정기가 왔는지 크림이와 프레즐이 자꾸 뒷목을 깨물어 레오의 뒷덜미에 상처가 날 지경이었다. 레오도 발정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기색이었고, 허피스는 많이 호전됐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육아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기숙사 집사님이 꾸준히 돌봐주신 덕분에 아기 고양이들의 상태도 나아지고 있었다. 상태가 가장 나빴던 셋째도 외관으로는 거의 나아 보였다. 하지만 둘째는 낫는 것이 더뎠다.



차례대로 첫째, 둘째, 셋째



해탈한 레오



 행복한 레오네 가족은  사람의 무릎에서 알콩달콩 낮잠을 즐기기도 했고, 아기들도 아장아장 걷는 것이 익숙해져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나는 중성화와 입양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레오와 떨어져 입양을 보내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기숙사 고양이 복지와 평판, 고양이들 개개묘의 삶을 위해서라도 그게 나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입양  날이  아기 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도  급한 문제가 있었다. 어른 고양이들의 중성화다.


 고양이는 수유 중에도 다음 임신이 가능하다. 레오가 이렇게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생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시 발정기가 와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 빠지게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직 수유와 육아로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였다.


 단체생활을 하는 길고양이는  마리만 중성화를 진행할 경우 약자로 여겨져 무리에서 소외되기 쉽다는 글을 읽었다. 당차고 똑똑한 레오의 성격  당하고 살지는 않을 테지만, 언제나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했다.  추측이 틀리면 가뜩이나 몸이  좋은 레오는 다시 눈칫밥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의 중성화를 동시에 진행하고 싶었다. 게다가 크림이와 프레즐까지 중성화하지 않았다가 혹시나 레오 외에 다른 암컷 고양이가 이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또다시 아깽이 파티가 열릴 것이 뻔했다. 그런데 모두를 동시에 중성화해주기엔 금액적인 부분이 문제였다. 저렴하게 수술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100  이상이 예상됐다.


 다니던 병원에 중성화 관련 문의를 하기도 했다. 길고양이라 수술 후 케어가 어려운데 입원이 가능한지 묻자 예민한 고양이는 자기 영역권이 아닌 환경에서는 밥을 잘 먹지 않는데, 고양이는 하루만 밥을 먹지 않아도 위험하기 때문에 어렵겠다고 했다. 게다가 한 마리당 비용이 거의 40만 원 이상씩이었다.


 중성화를 위해 사비를 털어 돈을 모으고 있었고, 고양이들의 치료를 위해 모금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모금된 금액은 액수가 적어 허피스 치료비로 전부 지출되었다. 사비로라도 당장  짝짓기를 하는 레오부터 당장 중성화를 해주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또다시 모두를 동시에 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렇게 돌고 도는 생각의 굴레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TNR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인터넷에 검색해봤을 때 기숙사가 있는 시에서 수술을 아무렇게나 한 후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방사하거나, 수술을 하지 않고 그냥 방사한다는 사례를 접해 망설여졌다.


   동안 고민하던 나는 고양이 카페에서 최근에는 병원을 바꿔 괜찮다는 글을 읽고 나서야 지자체에 TNR 신청했다. 이마저도 예산이 정해져 있어 모두가 TNR 받을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청 순서대로 중성화 수술을 하다가 예산이 떨어지면 내년으로 미루는 식이다. 신청하는 고양이는 늘어나고, 예산은 줄어들고…. 나중에 고민하더라도 일단 먼저 신청해놓기로 했다.




고양이 대장 오레오





재미있게 노는 첫째와 막내. 체격차이가 있다.



 아기 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랐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많이 양호해진 첫째와 막내는 둘이 잘 놀았지만, 아직 상태가 좋지 않은 둘째는 노는 데에 쓸 기운이 없어 보였다. 간혹 남매가 와서 장난을 걸면 잠시 같이 놀다가도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둘째는 그저 눈을 감고 새액새액 힘겹게 숨을 쉬며 가만히 앉아있곤 했다.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고양이보다는 사람 주변에 가 있었다. 곁에 와서 그저 살아있는 데에 힘을 쓰는 그 주먹만 한 솜털 뭉치를 보고 있자면 안쓰러움과 무력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어두운 곳이 편한지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다리 사이로 들어와 쉬는 것을 좋아했다. 인간 숨숨집으로 간택받으면 다리가 저려도 꼼짝없이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그저 가만히 눈감고 있는 일이 많던 둘째






  19 6 중순, 동물보호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다. 길고양이를 포획  수술이 끝나면 다시 해당 구역에 방사해주시는 분이었다. 이미 작년 10월에도 기숙사 사감실에서 고양이들의 중성화 신청을 해놓았는데 내가  신청했고, 최근   구역을 시행 중이기 때문에 스케줄을 빠르게 잡을  있을  같다고 하셨다. 내게 가장 빠른 휴무일과 그분의 스케줄을 협의해 날짜를 잡았다. 오레오가 수유 이지만 아이들의 출생일을 말씀드리자 중성화 수술이 가능할  같다고   미룰 필요 없이 6 18일에 고양이들을 포획하기로 했다.


 고양이들 포획을 돕고 가는 길을 배웅하며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그날 나도 용인으로 향했다.





 사정을 설명 들은 기숙사 집사님이 적어주신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나를  아이들은 배고프던 차에 집사  만났다며 기대에  눈빛으로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맘때쯤 기숙사 고양이들의  위치가 기숙사 입구에서 주차장 쪽으로 바뀌었다.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누군가 설치해준 미니캣 타워. 아기 고양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미모 발산하는 프레즐과 민화 속 호랑이처럼 찍힌 레오. 나는 이 사진을 좋아한다.
뚠뚠 고양이 프레즐
아빠와 아들. 프레즐과 첫째.
밥 대신 쥐어준 마따따비에 심취한 크림



 약속 시간이 되어 고양이들을 포획해가실 분이 도착하셨다. 고양이들의 상태를 멀리서 확인하고 말로만 듣던 통덫을 세팅했다. 통덫 끝 쪽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간식을 두고, 입구 쪽에도 맛보기로 조금 떨어뜨려두면 완성이었다. 하루를 내리 굶은 고양이들은 처음 보는 통덫에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다가왔다. 그러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넌 이미 먹고 있다, 뚠뚠 프레즐 / 안에 들어가는 건 무서우니 바깥으로 빼내려고 건드리는 똑똑 레오


간식이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곤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오레오


완전히 들어가 통덫문이 닫혀도 밥을 먹는 프레즐 / 줄 서서 기다리는 크림이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는 레오의 통덫



 밥이라면 그저 좋은 프레즐이 가장 먼저 잡혔고, 수색하던 레오가 그다음이었다. 가장 겁이 많고 소심한 크림이는 머뭇거리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다른 통덫이 하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되는 레오 곁을 알짱거리다가 다른 고양이들이 갇히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겁이 많은 크림이가  광경을 보았으니 경계심이 강화되어   잡히는  아닐까 잠시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잡혀가는  보고 안절부절못하며 무서워서 애웅 울던 크림이는 겁이 많은 만큼이나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하나 남은 통덫에 날름 갇혀버린 크림. 문이 철컹 닫히자마자  먹는 것도 잊고 난리를 치며 탈출하려고 울어댔다.


 갇힌 고양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담요로 감싸주었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가필드를 잡기 위한 새로운 통덫도 가필드 출몰지역에 두 개 설치해두었다.




가필드를 잡기 위해 따로 숨겨둔 덫



 갇혀버린 고양이들은 저마다 울며 아우성이었다. 프레즐은 슬픔 섞인 목소리로 도와달라는 듯 계속해서 울었고, 레오는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살피며 울었다. 겁이 많은 크림이는 울지도 못하고 얼어붙어있었다.


 레오가 또 임신일 수 있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임신 극초기일 경우에는 중절 및 중성화가 가능하나 이후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필드는 이후에 기숙사  통덫에 갇힌 채로 발견되었다. 내가 기숙사에 살던 때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퇴사한 이후로는 점점  상태가 나빠져가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을 받으며 구내염 등의 처치도 가능하지 않을지 기대하던 생각이 무너지게 되었다.


 길고양이가 TNR 하고 나면 방사  한쪽 귀를 살짝 잘라 '중성화 수술이 완료된 고양이'라는 표식을 남긴다. 그런데 가필드는   귀가 모두 잘려있었다. 아메리칸 컬이나 스코티쉬 폴드처럼 특이한 귀를 가진 고양이들을 흉내내기 위해 고양이의 귀를 자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명백한 학대다.


 포획하는 분은 가필드가 정말 중성화가 되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미  한쪽이 잘려있기 때문에 데려갈  없다고 하셨다. 가필드야말로 가장 처치가 필요해 보이는데 데려갈  없어 자신도 정말 미안하다고 하셨다. 만약 데려갈 수만 있다면 자신이 구내염 약도 넣어줬을 텐데  데려가서 어떡하냐고 진심을 다해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분은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시는구나 껴졌다. 동시에 가필드에게 인간을 대표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어찼다. 아마 가필드가 인간을 그토록 경계하고 무서워하던 이유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가 오면 포획작업이 중단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모두 포획된 이후에 비가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들끼리만 남은 아기 고양이들이 문제였다. 아기 고양이들도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다.






 아기 고양이들을 캐리어에 넣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날이 흐려 비가 올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비 오는 날 혼자 남겨질 아가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캐리어에 처음 탑승해본 아기 고양이들은 신기했는지 바깥세상을 구경하다가, 갇힌 것을 깨닫곤 꺼내 달라고 울다가,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병원 진료 결과 지난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행히 첫째와 셋째는 호전이 되었고, 특히 셋째가 상태가 나아져서인지 체중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둘째는 여전히 허피스가 심한 상태였다. 아가들의 눈곱과 콧물을 닦아주는 동안 안쪽 처치실에서는 테크니션 선생님들의 귀엽다는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어찌나 순하고 피곤했는지 얼굴을 닦이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고 한다. 아직 어린 아가들이지만 먹는 약을 조금 써보자고 하셔서 안약과 먹는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상태가 좋지 않은 둘째
이동장에 들어가 순서대로 바깥구경을 하는 아기 고양이들
잠을 자는 넉살까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거냐!"



 다행히 기숙사로 돌아올 때쯤에는 한바탕 퍼붓던 비가 그쳐있었다. 상쾌하고 쌀쌀한 공기를 다시 맡게 된 아가 고양이들은 부모가 없어져서 당황한 눈치였다. 레오가 TNR을 위해 잡혀가기 전 배불리 젖을 먹어서인지 아기 고양이용 습식에 약을 섞어주었지만 입도 대지 않았다. 비싼 약을 버렸다는 것보다는 밥을 먹은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먹어주지 않아서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다시금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첫째와 막내는 조금 뛰어놀다가, 보호자 고양이가 없어서 무서운 것인지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형제들이 뛰어노는 동안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있던 둘째는 비가 오는데도 구태여  곁에 와서 버티고 앉았다. 같이 자라고  안에 넣어줘도 엉금엉금 기어 나와  옆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당장 아가들을 데려갈  없는 현실이 속상했다.


 "언니 갈 거야!"하고 집에 넣어준 후 아예 일어나서 자리를 뜨자 그제야 둘째도 나오지 않았다. 비가 올 것을 예상은 했지만 우산은 챙기지 않아 아직 근무하던 동료가 우산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세상의 온정과 작은 생명의 무게를 생각하며 귀가했던 것 같다.








 중성화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다. 크림이와 프레즐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낯선 환경인데도 녀석들은 밥을 아주  먹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말도 어찌나 많은  끊임없이 야옹거린다는 소식이 나를 민망하면서도 기쁘게 해주었다.


 반면 레오는 임신 초기였다. 마취를  하고 개복 후에 발견된 거라 개복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 극초기 상태가 중성화를 시행했다고 한다. 대신 입원일이 연장되어야   같아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나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레오가 또다시  고생을  뻔했다니. 빛을 보지 못한 생명들에겐 미안하지만 내겐 레오가  소중했다. 아마  없이 바로 임신을 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수술을 진행하며 레오의 복강 속에서 하얗고 동글동글한 결절을 여러  발견해 제거했는데, 개수가 너무 많아 전부 제거하지는 못했으며 정확한 진단도 내리지 못했다고 하셨다. 중성화로 한시름 덜어질  알았던 걱정에 무게가  얹혔다.


 크림이와 프레즐은 기존에 설명해 주셨던 방사일에는 비가 와서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난 후에야 먼저 방사되었다. 레오는 회복되는 것을 보고 그보다 사흘 정도 후에 방사되었다. 다행히 먼저 방사된 크림이와 프레즐이  몸도 아플 텐데 그동안 습식을 먹으며 의젓하게 기다린 아가 고양이들을 돌봐주었고, 이후에 방사된 오레오도 다시 육아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레오의 모성애가 조금 떨어진 것은 아마 이 이후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가 고양이들이 독립할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린 탓도 있겠다. 새끼들이 독립할 때가 되면 어미 고양이는 일부러 젖을 주지 않고 냉정하게 대해 정을 뗀다고 한다. 그러면 '이상하다, 엄마가 왜 그러시지? 엄마 저예요!' 하던 아기 고양이들도 점점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영역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아직 독립을 하기엔 한두  정도가  있어야 했고, 레오는 유독 몸이 아픈 둘째에게  냉정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여태까지 금지옥엽 품어주던 둘째가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차갑지만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 가능성이 낮은 새끼보다 가능성이 높은 새끼에게 자원을 몰아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걸까? 다른 형제들이 젖을 먹고 성장에 집중할 동안, 둘째는 젖을 얻어먹기도 어려워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나는 언제나 레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래도 둘째에겐 습식을 조금 더 챙겨주었다.




중성화 후에도 집사를 의지하는 레오
집사를 기다리는 레오
첫째와 막내
자기 자식인데 완전히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아픈 손가락인 둘째를 챙겨주는 레오






 그렇게 예상 가능하던 기숙사 고양이들의 생태계에 또다시 변수가 발생했다. 누군가 작은 택배 상자 속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넣어 유기한 것이다. 대놓고 고양이들 집 앞에 버리고 간 의도가 자명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 아기 고양이 두 마리는 겨울 집 한 개를 차지하고 눌러앉았다. 아직 어리고 손을 타지 않아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한 마리는 경계심이 아주 강하고 책임감이 있었고, 조금 더 색이 옅은 다른 한 마리는 겁이 많고 조금 천진난만한 성격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고양이는 제 형제를 끔찍이 여기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경계했다. 반면 그 동생은 무언가 궁금하면 조심스레 다가가도 보고, 그러다 놀라면 화들짝 제 형제의 곁으로 도망가 숨었다.


  고양이보다도 책임감 없는 어떤 인간이 유기를 했냐며 분개하던 기숙사생들도 깜찍한 뉴페이스의 등장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블 사의 블랙 팬서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온통 까만 코트에 아직 다루지 못해 항상 뾰족하게 내밀고 있는 발톱은 정말 블랙 팬서를 연상시키는 외관이었다. 귀여운 것과 별개로 입양 보낼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눈앞은 잠시 캄캄해졌다는 것을 고백한다.




"넌 누구야. 나가." 경계하는 첫째, 형제와 놀고 싶은 둘째
"응? 놀자고?"
경계 중
"나 떨어졌어..."





 다행히 레오는 새로  아기 고양이들까지 당연하게 품어주었다.  자식처럼 아껴주기보다는 그냥 동네 아이 챙겨주는 느낌이었지만,   건사하기도 힘든 컨디션으로 그런 선행을 베푼 레오의 묘성은 정말 대단하다고   있다. 순둥한 크림이와 프레즐도  블랙팬서들을 돌보았다. 문제는 첫째 블랙팬서가 이것을 거부한다는 점이었다.


"아저씨들은 누군데요! 저는 제 동생이랑만 있을 거예요! 나가요! 비켜요!"


 앙칼진 울음소리에 집도 뺏긴 기존 고양이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에 따라주었다. 첫째 블랙팬서는 아주 바빴다. 호기심에 레오의 아기들과 놀기 위해 쫄랑쫄랑 따라간 동생 단속하랴, 귀엽다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간 경계하랴. 배는 고픈데 주는 밥을 먹자니 처음 보는 형태라 어색하고,  모진 세상에서 동생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다짐에 눈매는 날카로워져 갔다.


 이후로도 나는 짬짬이 고양이들을 보러 기숙사에 다녔다.




크림
떡실신한 첫째
비 오는 날, 레오의 메마른 뒷모습
수풀 속에 숨은 첫째
프레즐, 크림, 오레오






"하하하 레오야~ 나 잡아 봐라~"
"어..? 너 진짜 화난거였어?"
'클나따...'






내 눈엔 언제나 아기 고양이 오레오
사이 좋은 단짝 친구



중성화 후 프레즐은 빠르게 살이 쪄갔다
프레즐과 막내



막내 고양이
아기들은 언제 다 크는 걸까? 가끔은 이런 오붓한 데이트도 해줘야지
막내에게 쥐어뜯기며 놀아주는 프레즐
막내를 보살피는 크림



막내는 유달리 레오를 쫓아다녔고, 젖을 가장 늦게 뗐다




 추운 겨울이 오기  아가 고양이들을 예방 접종 및 건강 검진 후 입양 보내고 싶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오레오의  마리 아기들은 물론 유기된  마리의 까만 고양이들까지,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은    시에 없어졌다. 아직 독립 시기가 님에도 사라진  이상한데 모두가 동시에 없어졌다는 점이 가장 수상하다. 인간의 짓이 분명했다.


 누군가 기르려고 데려간 걸까, 하지만 다섯 마리를 동시에 데려가다니? 고양이 학대범이나 살해범은 아닐까? 아기 고양이들만 데려다 파는 업자가 있을까? 누군가의 신고로 보호소에 갔나? 할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을 했다. 포인핸드 어플을 설치해 눈이 빠지게 들여다보며 매 분마다 새로고침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단서는 없었고 아기들의 행방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납치범으로부터 어떻게 지켜냈던 아기 고양이들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리다니 아직까지도 죄책감이 크다. 아기들이 없어진 후 오레오, 프레즐, 크림 세 마리 어른 고양이들은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난번과 똑같이 아기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아직도 풀숲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술래잡기하던 아기들의 모습이 선연하다.









포획의 수모를 겪은 가필드. 정말 양 쪽 귀가 잘려있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캔을 그릇에 덜어주기도 전에 달려든 연인
돌베개로 낮잠을 청하는 가필드
마따따비에 심취한 크림과 오레오. 프레즐은 캣닢과 마따따비 모두 반응이 없다.



내 눈엔 영원한 아기 고양이, 프레즐
인간이 멀리 가기를 기다리는 가필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내 눈엔 언제나 아기 고양이, 크림


야간 데이트. 프레즐이 더 레오를 좋아한 것 같다


추웠던 날, 예전처럼 무릎 위 품에 안겨 한참을 잔 프레즐



"집사야 집 간다고? 배웅 가주마."
주차장은 위험하니 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우아한 밤 고양이, 오레오



레오가 너무 좋은 프레즐



지독하게 추운 날, 박스 속에서




"너무 추워요!"



가을 고양이, 오레오


가을 고양이, 프레즐



저기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데 여기 좀 한 번 봐주시겠어요?
네?
새로운 겨울 집을 조립해 주던 날



새 집이 아주 맘에 든 크림






코가 삐뚤어지게 춥던 날
'누가 놔준거지?' 두리번대는 프레즐


패딩 속을 파고든 고양이들




고마운 상자 속도 따뜻하진 않다



추운 겨울, 비를 맞으면서도 집사를 따라와 기다리는 레오





물그릇아 물그릇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쁜 고양이니?




흙투성이 발바닥
사료가 떨어졌다고 해서 사들고 간 날, 설거지 해 둔 밥그릇



집사를 따라다니느라 비에 젖은 레오



겨울은 잔인하다. 늘어가는 크림이의 눈곱



"잠시만요~ 실례할게요~"
"얘 뭐야?" / '헉... 레오였네...'
어이없는 레오와 호달달 크림
레오도 추운 걸 알기에 내쫓지 않는다. 체온을 나누는 고양이들



- 오레오(5)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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