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와 자기 앞의 생

[영화리뷰] 새벽의 약속

by Sehy
포스터.jpg



작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다면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작가는 인생이란 집을 허물어 글을 쓴다' 란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만큼 자신의 지난 날을 하나하나 허물어 또 무언가로 만드는 사람도 없을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좋은 날이든, 좋지 않은 날이든 모든 것은 작가에게 있어 이야깃거리가 된다. 체코의 봄을 희망하며 썼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도 그랬고, 전세계의 모든 작가들도 그랬고 지금도 자신의 달력을 뜯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영화 <새벽의 약속>의 주인공인 로맹 가리도 또한 그러했다. 시리도록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허물었고, 어머니가 유대인 창녀라고 놀림받던 속상했던 시절 또한 허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가장 가슴 아프게 허물었던 것은 아마 그녀 자신이란 삶을 통째로 들어올려 자식에게 내어바친 어머니 니나의 기억일 것이다.


movie_image.jpg
movie_imageJG0WH5HF.jpg


자신은 겨울날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녀도, 동네사람들에게 유대인 창녀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당당하게 세상사람들 앞에서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대사가 될 거야. 위대한 사람이 될거야. 당신네들은 모두 이 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일거야.' 라고 소리질렀던 어머니, 니나(샤를로트 갱스부르 役). 그녀에게 아들 로맹 가리(피에르 니네이 役) 는 말 그대로 그녀의 전부이자,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즉, 아들이란 삶의 희망이 있기에 그녀가 힘들어도 억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들 강인하다고 한다. 신이 모든 곳에 있어줄 수 없어 대신 어머니란 존재를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 니나도 정말 강인한 여자로 그려진다. 자신의 아들, 로맹 가리가 잘 될 수만 있다면, 위대한 사람만 될 수 있다면 그녀는 아들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다. 니나는 로맹 가리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삶에서 여성, 명예, 국가 이 세 가지만 중요하단다. 반드시 기억하렴.너는 위대한 사람이 될거야. 너는 반드시 그렇게 될거야.'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큰 재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들인데도 니나는 아들에게 늘 그렇게 말했다. 자식이 남들에게 맞고 오면, 약해지려 할 때면 니나는 늘 아들에게 이를 삶의 사명으로 새기라는 듯이 세뇌시키듯 말해주었다. 하여, 로맹 가리는 살았을 때 유명해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 그나마 흥미가 있는 글의 길을 택하여 펜을 들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펜에 매달리며 자란 아들을 보필하고자 어머니는 더 큰 무대로 나가야 한다며 옷가게를 접고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넘어와 가진 돈으로 호텔을 차리고 아들을 파리의 대학에 보내며 계속 아들 뒷바라지에 삶을 쏟아부었다. 이런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받은 로맹 가리의 글쓰기는 어머니의 바램처럼 녹록치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글 하나로 먹고사는 위대한 작가가 되긴 정말 힘든 법이다. 물론, 그에게도 하나의 볕은 떴다.그의 단편이 한 신문에 실려 처음으로 그의 글을 세상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movie_imagePQ8MICX9.jpg


어머니는 마침내 우리 아들이 해냈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 후 그의 글이 소개되는 일은 드물게 되었고 이에 매일같이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전화에 로맹 가리는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로맹 가리가 글쓰기의 압박에 한창 시달릴 즈음, 하늘에 전쟁의 포탄이 쏘아올려졌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펜을 놓고 총을 드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


22.jpg
movie_image44.jpg


아니, 물론 전만큼 글에만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는 어쨌든 전쟁터에서도 펜을 놓진 않았다. '살았을 때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이 로맹 가리에게 전쟁터에서도 펜을 놓지 않는 정신적 지침대가 되어준 것이다.게다가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몸을 혹사시키신 이유에서인지 당뇨병에 걸려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이는 그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남은 날들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는 그렇게 머릿속 영혼의 쉼 없는 상태에서 글에 매달렸다. 급기야, 꿈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나타나 조금이라도 정신이 풀어진 것 같으면 그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포기했을 것 같냐며 나무랐다. 그렇게 그는 파리하게 말라가는 정신을 붙들어매고 글을 썼다.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누군가가 피흘리고 죽어가는 옆에서 글을 썼다. 그렇게 그는 마침내 <유럽의 교육>이라는 책을 완성하였고, 마침내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렇게 전쟁터에서 써낸 <유럽의 교육>이 로맹 가리의 생애 첫 정식출판저서가 되었고, 그는 종전 후 가장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은 사람, 어머니에게 금의환향하며 돌아갈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돌아간 그 곳엔 어머니는 없었다. 전쟁 중에도 자신과 편지로 소통하며 자신을 달래주었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집에도, 병실에도 없었다.


movie_image71QDHLBJ.jpg


자신의 죽음이 전쟁터에 나간 아들에게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던 어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하여 250여통의 편지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것도 3년 전에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더 내어줄 것이 없을 듯 한데도, 마지막 남은 사랑까지 마지막까지 내어주고 떠나신 것이다. 로맹 가리의 어머니, 니나는 정말로 강인했다. 이 세상의 어머니는 강인하고 위대하다는 말처럼 니나는 강인하고 위대한 사랑을 아들, 로맹 가리에게 내어주었다. 하지만, 영화 <새벽의 약속>을 다 보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니나는 정말 강인한 여자여서 저런 삶을 살다 간 것일까?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강인해져야만 했기 때문에 강인한 삶을 살기로 택한 것일까? 어머니는 본디 강인한 것일까? 아니면 강인해져야 했기 때문에 강인하게 된 것일까?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책을 내었는데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유명한 책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저서가 있다. 바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자기 앞의 생>이란 책이다. 창녀의 자식으로 버려진 아이인 모하메드와 과거 역시 창녀의 삶을 살았던 육십대 여자 로자의 이야기로 조숙한 열네살의 모하메드는 버려진 아파트에서 역시나 부모가 떼놓고 간 아이들 그리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육십대 로자를 돌보며 살아간다. 로자는 모하메드를 이뻐하여 그와 떨어져 있고 싶어하지 않아하고, 모하메드 역시 로자를 좋아하여 그녀를 살뜰히 챙긴다. 하여, 그녀가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그녀의 옆에 있어줬고, 결국 로자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을 때는 이제 모든 고생이 끝났다며 그녀를 보며 웃어주었다. 바로 이것이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버려진 열 네살의 모하메드에게 하나의 생이 살고 떠나가는 것의 의미이다.본 저서 <자기 앞의 생>엔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손을 꼭 쥐고 태어나는 모든 아기의 손 안에 '생'이란 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힘들 게 삶을 꾸려온 어머니를 보고서 든 생각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공정한 삶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정말 어렵게 삶을 꾸려간다. 자신의 어머니도, 로자 아줌마도, 세상의 멸시를 받아가면서도 살았던 그들은 그랬다. 그런 그들의 옆에 있었던 로맹 가리는, 모하메드는 그들을 보며 생이 누군가에게 조금은 스쳐가듯 비켜간다는 것을 봤던 것이 아닐까. 작가 로맹 가리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어머니, 니나.

늘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랬던 로자 아줌마.

그리고 누군가의 생이 조금은 비켜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로맹 가리를 위해서.



movie_image33.jpg



로맹 가리와 그의 어머니 니나를 그린 작품영화 <새벽의 약속> 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흑백의 삶이어도 한줄기 햇빛을 느낄 수 있는 삶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