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갈 수 있는 데,

by 다미

몇 년간 집에 콕 들어박혀 지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인 것도 있었지만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작업실이 따로 없어 집을 작업실처럼 사용하고 있기에 작업을 하려면 반드시 집에서 해야만 했다. 회사를 다니고 작업을 하면서도 주변에 금을 쳐놓은 사람처럼 언젠가부터는 금 바깥으로 잘 나가지 않게 됐다. 나가는 일은 어쩌다 한번, 반짝 반짝 빛나는 것들을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을 때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이 마음도 비슷해졌다. 도전의 위험성이나, 불가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로 생각보다 과감한 도전을 했던 때가 있었다. 불도저는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다 궤도에 올려놨다. 무사히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그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시도가 무서워졌고 실패가 두려워졌다. 마음먹지 않아도 선 하나 그려놓을 수 있던 때와 달리, 마음을 먹고도 선 하나를 그리는 게 갈수록 어려워졌다.


완벽주의가 싹트고 울창해지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에는 그늘이 가득하듯, 완벽주의의 그늘 아래에서 계속 허우적댔다. 그늘 사이로 비치는 햇빛으로 발을 내딛는 걸 어려워했다. 잘못해서 그늘을 밟으면 어떡하지, 완벽하게 햇살 사이로만 이동할 수는 없을까, 이런 식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찼다. 늪에 빠진 사람처럼 제자리에서 계속 허우적거렸다. 지난 몇 년 동안이 꼭 그랬다.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안절부절 대던 삶. 선택을 하지 못했다. 아주 사소한 것도 그랬다.


밥을 먹으려면 메뉴를 고민하느라 밥 시간이 늦어졌고, 어딘가로 나가려고 계획하면 나가는 김에 무엇을 할 지 고민하느라 나가는 것이 늦어졌다. 하다못해 가고 싶은 카페 하나 결정하지 못해서 방 안에서 전전긍긍하는데 시간을 죄 끌어다 쓰고 결국엔 아무곳에도 가지 못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은 것들을 고민하는데 무엇을 망설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래하던 게임에서 깨달았다. 완벽주의가 극에 달했고 무엇도 실패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수풀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게임에서 캐릭터가 한번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리셋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무얼 얼만큼 완벽하게 하고 싶기에 이렇게 피곤한 리셋을 계속해야 하는가 싶었다. 그 리셋의 모습이 선택을 주저하는 내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주저하는 바람에 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완벽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완벽을 사랑하는가? 모든게 갖춰진 완벽한 것들만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하기는 어렵다. 사실 완벽이라는 것은 불가능과 궤를 같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를 향해 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뿐이고, 그 노력들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저 사람이 완벽해서 사랑하는가? 완벽하기에 예뻐보이는가? 인간적이라는 말은 완벽하다는 말과 동의어일까? 그 어떤 인간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삶을 살진 못한다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또한 우리는 완벽한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아니다. 완벽한 인간이 있다고 하면, 반대로 완벽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의 요인에는 그의 ‘인간적’ 즉, 완벽하지 않은 모습에 끌렸다는 점이 크게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차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완벽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살아가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실수하고 싶지 않고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말 저변에 깔려있는 완벽하고 싶다는 마음을 걷어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사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지 않았던 것 뿐이다. 펜으로 글을 쓰다 잘못 쓰면 그 위를 뭉개버리고 다시 쓰면 된다. 쓸 땐 아무 생각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하고자 하는 일도, 가고자 하는 곳도 모두 다 어느 정도는 허술할 수도 있다.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언제나 그런 법이다. 다만 그럴 때마다 되뇌어야 할 것은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다.


원래 삶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잘못 찍었다고 생각한 점이 의외로 아름답게 빛나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모든 게 다 망가지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반추해보고 수정해서 다시 걸어갈 수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언제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