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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기술이후의 시대

실물경제 위에 쌓은 오아시스의 운영 전략

by 정진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는 '플랫폼'이었다. 기술을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하고, 유저를 끌어들여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는 것이 혁신이라 여겨졌다. 빠른 배송, 즉각적인 반품, 24시간 고객 응대 같은 편의성 극대화 전략은 당연시되었고, 고객의 경험을 개선한다는 명분 아래 자본이 투입됐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전략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낳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편의성이라는 KPI가 업계 전반을 지배하면서, 기업들은 마케팅비와 물류비 부담이 커지며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유저 수는 늘었지만, 수익은 따라오지 않았다. 기술 기반의 연결 모델만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요즘 이커머스는 고객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과잉 서비스를 제공하는게 아닐까? 새벽배송, 즉시 환불, 무제한 반품은 초기 유입에는 효과가 있지만, 지속 가능성하기는 어렵다. 고객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기업의 고정비는 치솟으며, 브랜드는 과로에 시달리게 된다.




오아시스의 방식: 실물경제에 기반한 성장

오아시스는 2011년 설립 이후 유기농·친환경 상품을 우리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위탁판매점에 공급하며 시작되었다. 신선식품 중심의 상품구성에서 벗어나 건강 의류, 침구류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하며 매출 기반을 다졌고, 2013년부터는 직영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본격적인 소비자 소매를 시작했다.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고품질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며, 유기농 제품은 비싸다는 인식을 깨는 데 성공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2018년 31개에서 2022년 53개까지 확대되었고, 현재는 4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 오프라인 유통 경험을 기반으로, 2018년 ‘오아시스마켓’이라는 온라인 브랜드를 런칭하고 새벽배송 시장에 진입했다. 베타 버전 런칭 3개월 만에 정식 론칭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고, 이듬해인 2019년 1,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2020년에는 2,300억 원, 2021년 3,569억 원, 2022년 4,272억 원, 2023년 4,754억 원, 2024년에는 5,171억 원으로 꾸준히 외형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오아시스의 주력 카테고리는 단연 유기농 농산물과 축산물이다. GAP(Good Agricultural Practices) 인증을 받은 과일, 무농약·무항생제 식품, 친환경 축산물 등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한 상품만을 취급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지향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확고하다. 주부를 중심으로 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은 오아시스를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식품 채널’로 인식한다.


이러한 철학은 가공식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향미증진제나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고, 국산 원재료 기반의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구성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 공급이라는 일관된 정체성을 지켜간다. 나아가 생활용품까지 확대해 원스톱 쇼핑 경험을 제공하며, SKU 확장을 통해 고객 편의와 재구매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오아시스는 단일 품목 중심의 유통을 지양하고 수천, 수만 가지에 달하는 SKU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특히 신선식품은 계절 및 작황 조건에 따라 매입단가가 변동되기 쉬우나, 대부분 국산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환율이나 글로벌 원자재 변수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오아시스는 이러한 가격 변동성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며, 소비자에게 안정적 가격과 품질을 유지한다.


물류 측면에서는 특허 등록된 자체 소프트웨어 '오아시스루트(OASIS ROUTE)'를 활용해 냉동·냉장·상온 제품을 단일 포장으로 처리하고, 물류 인력의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인력당 주문 처리 건수는 120~300건에 달하며, 하드웨어 투자 대신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화를 통해 감가상각을 최소화했다. 물류센터의 냉동/냉장/상온 통합 합포장 시스템은 포장비 절감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한 재고 처리 방식은 온라인 재고 부담을 사실상 제거해준다. 온라인 배송 후 남은 재고는 매장에서 할인 판매하거나 타임세일로 유연하게 처리되며, 평균 재고 보유기간도 업계 평균보다 짧다. 이는 낮은 폐기율과 신선한 공급을 가능하게 하며, 재고 관리가 비용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생산자와의 거래 구조 역시 오아시스만의 강점이다.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고 직소싱 체계를 통해 상품을 확보하며, 대금 지급도 선급 및 정산 후 10~20일 내 대부분 지급함으로써 생산자의 자금 회전을 돕는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서, 고품질 상품의 안정적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광고비 또한 매우 제한적으로 집행된다. 2023년 기준 광고선전비 비율은 매출의 0.7% 수준에 불과하며, 입소문과 충성고객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과 상품 품질만으로도 소비자의 인식을 전환시키며 자연스럽게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No, not that Oasis. I mean the one that delivers organic groceries at 5AM.

기술은 도구, 경쟁력은 운영에서 나온다

오아시스의 경쟁력은 기술보다 현장에 있다. 물류센터의 작업 동선, 1인당 처리 효율, SKU 구성과 회전율 조정, 유통기한 관리와 같은 운영의 디테일이 진짜 경쟁력이다. 기술은 그것을 자동화하고 최적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결국, 고객 충성도를 결정짓는 것은 신뢰와 반복성이다. 이 둘은 실물경제에 기반한 운영에서 나온다.


기술은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신뢰를 설계하지는 못한다. 오아시스는 기술이 아니라 운영의 정합성과 반복 가능한 품질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다. 빠른 배송과 AI 추천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가 품고 있는 신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고, 품질, 가격, 사람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오아시스는 이 모든 것을 물류와 운영이라는 실물적 기반 위에 구축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지금, 과도한 기술 낙관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연결보다 통제력이, 속도보다 정합성이 더 중요한 시대. 오아시스는 이 전환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술은 수단일 뿐이다. 진짜 경쟁력은 현장을 장악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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