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되돌아보며 적는 소회 (5) - 연구에 대한 딜레마
내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다음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은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길고 가던 방향을 바꿀 기회는 많다고 하지만 사실상 첫 발걸음을 딛을 곳을 정하는 시기니까. 나 역시도 그랬고 내 주변 친구들 역시 그랬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처음 영재고를 준비하고, 입학할때까지만 해도 내 미래와 관련된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하기도 했고, 항상 프로그래머를 꿈꿔왔던터라 당연히 개발자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겠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주변에서 전문직이 좋다더라, 뭐가 좋다더라 하는 조언에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뀐 계기가 중3 당시 참여했던 화학올림피아드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학이든 과학이든 그 과목에 재능을 보인 몇몇 친구들보다 조금 아쉬웠다뿐이지 다 어느 정도는 했으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가 유난히 두각을 드러낸 과목이 화학이었다. 물리나 수학처럼 타고난 천재성이 문제 풀이에 영향을 덜 주기도 했고,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에 그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풀어내야 하는 접근법 자체가 나에게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 오히려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원래 좋아하고 꿈꾸던 컴퓨터, 정보 분야를 전공으로 삼을지, 아니면 내가 순수과학 중 가장 자신있고 흥미있어하는 화학을 전공으로 삼을지. 만약 내가 정보를 강점으로 내세우던 경기과고에 입학했더라면 크게 고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높은 확률로 정보를 선택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당시 경기과고의 정보올림피아드 성적이나 연구 성과 등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우수하다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학한 대전과고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영재고가 아닌 과학고로 운영되던 학교였기에 대전의 인재풀로만 운영되고 있던 시절이 길었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같지 않아 3D 업종 아니냐는 약간은 비하적인 딱지가 붙어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체 인원 중 정보 전공 자체의 수가 많지 않았던 때였고, 학교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정보보다는 수학, 과학에 자원을 투자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선생님의 숫자나 연구 기자재의 퀄리티 측면에서 정보는 나머지와 비교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컴퓨터 그거 어차피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될텐데 그게 그리 중요하냐'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지. 하지만 실제로 과학고의 순수과학 관련 연구 설비를 보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뀔지도 모른다. 내 체감상은 어지간한 대학의 학부생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비나 시료보다 고등학교 때 내가 쓸 수 있던 자원이 훨씬 더 비싸고 퀄리티가 좋았다. 그 말인즉슨 과학고에서 열심히 하려고만 하면 사실상 대학원 랩실 급의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무료로.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 오리엔테이션을 거치고, 나름 조금이나마 친해지게 된 선생님,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혜택을 놓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연구를 해보겠나 싶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모든 전공 분야에서 화학을 선택했다. 동아리도, R&E(자율연구)도.
처음엔 마냥 재밌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SEM, AFM을 활용하여 현미경으로 소재를 분석하고, 비싸디 비싼 싸이올(thiol)이나 금(Au) 용액을 활용해서 실험을 해보는 것 자체가 뭔가 모르게 고급진 일을 하는 것 같았고, 가설을 세우고 어떤 결론을 내기 위해 실험을 기획하는 과정도 재밌었다. 그 과정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계신 우리 지도교사 선생님들과 그 선생님들의 지도교수, 랩실의 연구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신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뭔가 일반적인 고등학생과 다르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이나 우월감에 젖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다보니 시간이 흘러 1학년 2학기가 되자 직접 논문을 기획하는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전의 연구들은 선생님과의 논의를 거쳐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받아 진행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2명의 친구와 힘을 합쳐 논문을 써보려고 하니 숨이 턱 막히더라.
물론 당연한 일이다. 대학원생도 사수와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는게 연구인데 그걸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 3명이서 한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어쨌든 여차저차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들어간 순간, 오히려 더 애매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경향성은 어느 정도 보였지만 학문적인 결과로 이끌어내기엔 부족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
이 때 처음 든 생각이 그 이후의 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거 그냥 데이터 조금만 조작할까...?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 물론 사람이니까 들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보긴 한다. 하지만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연구자들은 연구 윤리에 대한 강의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다. 물론 훌륭한 연구자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큰 거짓말로 한국에서 과학자의 위상을 바닥까지 꽂아버리셨던 황 모 박사님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게 문제가 되었던 연구 윤리 이슈를 듣다보면 사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교육을 워낙 많이 받아서인지 '조작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더라. 결국 그 연구에선 끝내 조작을 하지는 않고 그냥 실패한 실험으로 결론 짓고 다른 주제를 선생님과 논의하여 실험을 다시 설계하고 결과를 내 논문을 제출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고. 그 대회가 끝나고 나서 든 생각은 지금에야 그냥 하나의 대회일 뿐이기에 이렇게 수정도 할 수 있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좋은 경험이었다 웃어 넘길 수 있지만 나중에 이게 업이 되고 나서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내가 표절이나 조작을 한 다른 연구자들처럼 중요한 논문과 연구에서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멋지고 싶어하고 성공하는 싶어하는 사람이지 무결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연구라는 분야는 그 무결함이 지켜지지 않으면 끝내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접하면 접할 수록 강하게 들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야 하는 사람이 무결성을 잃는 순간 정말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자 이 길은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이 더 흘러 10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뀌긴 했다. 사실 연구도 일반적인 회사의 업무와 지향점이 조금 다를 뿐 그 진행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고, 꼭 모든 연구자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고1의 나는 그런 확신이 든 순간 더 이상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아졌고, 화학을 포기하고 컴퓨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고등학교의 첫 학년이 마무리되던 시점. 나는 화학올림피아드 준비를 멈추고 정보올림피아드 학원으로 향했다. 평촌에 있는 유명한 학원이었다. 당시 영재고 친구들은 방학이 되면 하루 정도를 빼고 전부 수학, 과학 수업 선행을 위해 대치동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고. 하지만 나는 내신을 조금 소홀히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중 3일의 오후와 저녁을 전부 빼 평촌의 정올 학원에 쏟아붓기로 했다.
사실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다고 무조건 대학에 붙는 것도 아니고 수상이 없다고 해서 못 붙는 것도 아니긴 했다. 그냥 조금 유리하다 정도지. 하지만 그 때 정올을 준비한 건 정말 내가 컴퓨터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처음 상담을 받고, 제대로 알고리즘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에 원장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수상은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도움은 될거다.
여기서 승부욕이 불타올랐던가. '아닌데? 나는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과 함께 온 방학과 1학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알고리즘에 때려박는 정신 나간 여정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재능이 충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알고리즘 대회라는게 사실 어떻게 보면 과학 경시보다는 수학 경시와 좀 더 유사성이 있다.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가 문제를 보고 거기서 정보를 얻어 조건을 구체화하고 이로부터 풀이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결국 다양한 수학적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냐 아니면 논리에 입각한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것이냐의 차이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 결과물 역시 식과 숫자냐 코드냐 정도로 구별될 뿐이고.
내가 수학적인 직관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했고, 그 노력이 배반하지 않았는지 다행히도 대전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전국대회에서도 턱걸이로 은상을 수상해 예비 국가대표 자격까지는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쳤기에 국가대표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도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을 뿐 1등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알고리즘 구현 능력도 좋고 직관도 뛰어난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애써 온 경쟁의 장을 굳이 들어가 패배하며 내 피를 전장에 흩뿌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미련 없이 올림피아드 공부를 마무리했다.
그 뒤에는 내가 정한 컴퓨터라는 진로를 향한 지난한 여정이었다. 열심히 내신을 따고, 교내에 관련 대회가 있다면 나가 수상하려고 노력하고, 관련된 행사도 참석하고 책도 읽고 생기부도 준비하고. 그렇게 나는 카이스트를 제외하고 지원한 모든 컴퓨터 관련 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대에 진학해 컴퓨터를 전공했다. 지금은 개발자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고1에서 고2로 넘어가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때 내가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하지 않았고, 내가 여기에 어느 정도 적성이 맞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면 난 고3이 되어 원서를 내던 시기에 진학부장 선생님의 설득에 넘어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앞선 글에서 말했듯 내신이 상당히 잘 나온 케이스였고, 그렇기에 사실상 서울대 의대를 제외하곤 내가 원하는 과를 모두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당시 알파고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 전의 컴퓨터 관련 학과는 어떤 학교에서도 반도체를 다루는 전기과, 범용성이 높은 화학, 화학생물공학과, 자동차와 로봇을 다룰 수 있는 기계과보다 입결이 낮았다. 그런 중상위권이 주로 쓰는 학과인 컴퓨터 관련 학과에 최상위권이 지원하는 순간 나보다 내신이 좋지 않은 친구들이 안정적으로 학과를 쓰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었고, 진학부장님은 그 지점을 우려하셨던 것 같다.
만약 정보올림피아드에 실패한 나였다면 화생공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며 화생공을 썼거나 아싸리 그냥 전문직이 되어버릴까 하며 의대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그 세계선은 현실이 되지 않았고 나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코드를 통해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 지금의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나중에 대학 시절 이야기를 쓰며 더 소회해 볼 부분이 있겠지만 돈 좋아하고 눈에 보이는 것 좋아하는 나에게 피드백이 빠른 컴퓨터는 적합한 도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서른을 눈앞에 둔 지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고민을 하기 위해 해야했던 앞선 고민들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을 요구했던 시기가 바로 고등학교 시절이었고, 그 때의 선택을 되짚어 보자니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