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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14. 2022

목탄화에 담긴 지금의 우리

다녀온 전시 - 아드리안 게니

가을은 아침과 오후, 저녁이 모두 좋아지는 계절인 것 같아요. 요즘 저는 계절을 마음껏 즐기려는 마음으로 시간을 잘게 쪼개서 쓰고 있어요. 한밤에 산책을 하며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찍기도 하고 일요일 아침이면 봄과 여름을 열심히 살아내고 맛이 한껏 오른 제철 과일로 워크숍에서 배운 요리를 만들어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뒷산에 다녀오기도 하면서요. 가을은 아침과 오후, 밤이 지닌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아드리안 게니의 전시는 갤러리 오픈 시간에 맞춰 다녀왔습니다.


갤러리가 문 열기 한시간 전쯤 한남동에 도착해 따듯한 플랫화이트와 소금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갤러리를 찾았어요. 아침의 페이스 갤러리는 정말 평화롭더군요. 한적할 틈이 없는 한남동도 아침 만큼은 꽤나 여유로웠어요. 페이스 갤러리의 1층에서는 팀랩의 전시가 한창이어서 우선 팀랩의 전시에 먼저 들렀어요. 팀랩의 디지털로 그려내는 자연은 몇 번을 봐도 신비롭더라고요. 그리고 2층의 아드리안 게니 개인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목탄화로 그려낸, 아마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펼쳐졌어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모습으로요.


편집/이미지 '마니'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NOTE > - 아드리안 게니 작가 배경 설명은 <Adrian Ghenie - The Hooligans>를 참고했습니다. 





루마니아의 현대미술가, 아드리안 게니

아드리안 게니 전시 전경 / 페이스 갤러리 / LARKET 촬영

전 어떤 창작물을 볼 때마다 그걸 세상에 내놓은 창작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왜 이런 창작물이 나왔을까?’라는 질문의 대답은 결국 창작자들에게 있으니까요. 아드리안 게니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집권한 지 3년 후인 1977년에 태어났습니다. 차우셰스쿠는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중 한명이며 그가 통치한 23년 동안 루마니아는 상상이상의 인권 유린과 경제 궁핍 등 암흑의 시간을 보냈죠. 그가 12살 때 TV를 통해 목격했던 차우셰스쿠 부부가 체포되어 총살당하기 직전인 1989년 크리스마스의 한 순간을 그림에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배경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는 ‘어둠’과 ‘불안감’의 정서가 깔려 있어요. 트럼프의 유사-초상 시리즈 작업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으나 미루어 짐작하건데 트럼프임을 알 수 있게끔 표현하죠.  아드리안 게니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은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아요. 다만 짐작하게 할 뿐이죠.  <The Wall>이란 작품에서는 트럼프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짓겠다는 벽을 상상하며 그림에 담았습니다.

작가의 그림에는 그렇게 늘 인간이 지나온 역사의 시간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 아드리안 게니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팬데믹 시대를 지나온 우리의 모습을 그려냈어요.



새로운 목탄의 세계 

아드리안 게니 전시 전경 / 페이스 갤러리 / LARKET 촬영

아드리안 게니의 이번 개인전은 그의 첫 목탄화 작업이기도 해요. 유화로 회화 위주의 작업을 해온 그는 왜 목탄 드로잉을 선택한 걸까요? 전시회 한 켠에는 아드리안 게니가 이번 전시를 두고 한 인터뷰 영상에서 목탄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 말했어요. “꽤 오랜 시간 드로잉을 멀리했습니다. 마치 갇혀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예요. 드로잉은 정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회화 작품은 제가 만든 실수들이 쌓이고 쌓여 완성되고는 합니다.

유화 물감을 사용할 때면 저는 실수한 부분을 지우고 또 그 위에 다른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 모든 실수들이 쌓여 제가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요. (중략) 이번에는 처음으로 실수를 반복하며 드로잉을 만들어가면 어떨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이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위에 목탄을 사용해보니 선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렇게 제 회화 작품에 더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드로잉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시간 중에 의미 없는 시간이 없는 것처럼, 지나온 실수 중에 의미 없는 실수가 없나 봅니다. 실수가 반복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작품도 완성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팬데믹, 나 

아드리안 게니 전시 전경 / 페이스 갤러리 / LARKET 촬영

팬데믹은 세상을 바꿔놓았죠. 이제 많은 부분이 일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변했어요. 이번 목탄 드로잉 속 인물들의 시대적 배경은 디지털과 팬데믹이예요. 휴대폰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몰두하는 모습, 의자에 앉아 리모콘을 들고 있는 모습, 마스크를 챙기는 모습. 이건 바로 오늘도 우리가 한 행동이죠.

아드리안 게니는 과거에 그림 속 사람들의 손은 주로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기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했다고 말해요. 그리고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보다 집에서 시간을 보냈죠. 극장에 가는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친구를 만나는 대신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요. 전시회의 그림을 보면서 오늘의 나와 가장 가까운 하나의 그림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전시명 : 아드리안 게니 개인전
⚫ 장소 : 페이스(Pace) 갤러리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7
⚫ 기간 : 2022년 10월 22일까지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일, 월 휴관)
⚪ 문의 : 02-790-9388




☕ 전시 보고 뭐하지? �

한남동은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늘 사람이 붐벼요. 이른 시간에 전시회가 보고 싶어 아침 일찍 한남동에 갔어요. 갤러리가 오전 10시 오픈이어서 한 시간 전쯤 페이스 갤러리 근처에 있는 카페 더그레이트에 갔어요. 카페 더그레이트는 화분으로 채워진 야외 테라스석도 있고 반려견 동반이어서 오후에는 늘 손님이 많아요. 하지만 아침은 꽤 평화로웠어요.이곳 인기 메뉴 중 하나인 그래도 아침 일찍은 비교적 한산했어요. 커피도 커피지만 버터향이 은은한 소금빵도 추천해요. 아! 병맥주도 파니 한낮에는 간단히 한 잔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LARKET 촬영

⚫ 장소 : 카페 더 그레이트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7
⚫ 운영시간 : 오전 8시 30분~밤 9시
⚪ 문의 : 070-7733-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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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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