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기록에선 마치 빵이 나의 불행에 전적인 이유가 된 것처럼 보일만하다. 빵도 원인이었던 셈이지, 근본원인은 종합적인 생활습관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참 모범생이었다. 자랑이 결코 아니니 야유는 잠시 접어두길 바란다.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 지식과 규칙 들이 내 사고방식과 활동의 기초와 잣대가 되었고, 난 어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게 세상이 가르친 것들이 백번 옳았다고 여겨서다.
이성교제는 대학생이 된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굳게 믿었고, 무단횡단은 아주 위험하므로 시간을 들여 돌아갈지언정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며, 무엇보다 학생의 본분인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공부에 충실하고 또 충실해야 하는 줄 알았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난 주위 기대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과도한 학습량을 소화시키려고 잠도 교우관계도 극단으로 줄였다. 오로지 목표만이 나와 함께 같은 길을 나아갔다. 그것도 나의 목표가 아닌 어른들이 주입한 명문대입학 목표로.
그런데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목표에서 벗어났다. 내 입장에서야 근소한 차이를 강조하고 싶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어른들은 서운해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정말 그 표정들을 대면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어떤 날은 그 표정들로 도배된 벽으로 막힌 방에 갇히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결국 본래의 목표에서 멀어진 대학과 학과에 입학했다.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다. 인사치레로 받는 축하의 말들에서는 진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라도 그러지 말았어야했는데 어느새 나 또한 어른들의 시선과 똑같이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찍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할래? 넌 이제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어리석게도 나를 책망하고 꾸짖는 날들이 늘어갔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노력이 부족해서 간절하지 않아서 학창시절 내내 품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거라고 자책했다. 입학결과 하나에 내 존재가 더는 쓸모없어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은 목표를 달성했느냐 못했느냐의 두 갈래였고, 달성하지 못한 고통에서 비롯된 자학은 나를 서서히 병들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 스스로도 고통에 둔감해져 가고 있다는 거였다.
이상하게 자학이 계속되는데도 아직 충분치가 않았다. 다시 말해 자책하는 일도 만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운이 없게도 실의에서 빠져나와야 할 적정시기를 놓치고 방황했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심경의 변화를 갖기가 어려웠다. 뚜렷한 감격이라든가 감동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적당주의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런데 더 비극적이었던 건 대다수 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도 어딘가 구겨지고 찢겨진 채였다. 하물며 그중엔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도 적잖았다.
그래서 나는, 나도 그렇게 살면 별 탈 없을 줄 알았다.
목표와 목적에 대한 고민을 거두고 관심을 끄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괜한 자아실현이라든지 개성추구라든지 하는 독자성을 기르기 위해 골치 아파하지 않으면 적당한 직장을 찾을 수 있었고, 또한 그런 곳에서는 유별난 능력을 발휘하라고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나의 방황은 더 심해졌을까?
무료하고 무의미하고 무음뿐인 내면의 소리로 이뤄진 삶은 습관이 되어갔다. 기상하고 일상 활동을 하고 잠들고. 그다음날도 똑같이. 그중 하나가 식습관이었다.
구태여 밥상을 차려 먹지 않아도 맛있고 눈을 호강시키는 빵에 정신을 팔았다. 어느 순간엔 같은 종류의 빵을 제과점별로 구입해서 비교하는 짓도 하나의 즐거움이 되어있었다. 단팥빵, 크로켓, 밤식빵은 어느 가게를 가든 손에 들고 나왔고 끼니마다 적든 많든 입에 넣고 그 단맛에 정체모를 어떤 괴로움을 달랬다. 언제까지고 이 방법이 통할 줄 알았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