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괜찮다가도 한 번씩 삶이 고달프고 또한 미치게 불행해서 자기연민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손쓸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였는지 구분이 되진 않지만 둘 다 너무 아프다.
나는 근래에도 이랬는데 진짜 심각했던 적은 5년 전이다.
그전까지는 공들여 몸을 돌볼지 않아도 알아서 활력이 도는 시기였다.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밤을 새워도 하루 새 회복됐고, 건강기능식품은 고사하고 입맛에 맞는 대로 영양불균형적인 식단으로 배를 채워도 체력과 피부상태는 온전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건강은 타고난 줄 알았다. 몸은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몸은 내가 하려고 의도한 모든 활동들을 방해하는 요인이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상당히 오만하고 비논리적인 판단이었다. 중요하게 여겼던 두뇌와 거기서 파생되는 감정과 의지인 정신력으로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니!
나의 중고등 시절 교과과목 교련시간에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신체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가르침을 지겹게 듣고 배워온 탓이라고 약간은 원망을 돌리고 싶다.
성인이 되면서 집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바쁜 아침 준비로 간편한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학교나 일터로 나간 후 점심은 어떤 보상심리가 작동하는지 자극적인 메뉴를 찾아 먹었다. 그러고 나면 아직 한참 남은 저녁식사 전까지 간식 생각이 절로 났다.
난 갈증해소용 식수이외에는 음료는 좋아하지 않아서 커피나 주스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용하지 않았다. 대신, 바삭한 비스킷, 부드러운 쿠키, 달콤한 초콜릿(초콜릿이 첨가된 모든 디저트 포함). 그리고 가장 애정하는 빵! 빵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났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다. 전날 빵을 사놓고 잠에 들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을 생각으로 잠에 빠졌었다.
한때는 빵이 주는 즐거움으로 인해 고된 하루일과도 견딜 수 있었다. 지금도 검색만 하면 전국 유명 빵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광고와 블로그 글 들이 넘쳐난다. 거기서 나도 빵에 대한 정보를 얻었음은 당연하다. 주말이면 여행을 빙자해서 빵 구입을 위한 탐방에 나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새롭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빵을 위해서라면 바다 건너 타국에까지 쫓아갈 계획은 내겐 중차대한 일 중 하나였다.
이러한 탐닉에 나는 어느새 완전히 열중해 있었다. 아침은 물론 간식, 저녁식사를 빵과 함께하는 날들이 늘어갔던 것이다. 밥이라고 생긴 것은 고작 점심 한 끼로만 충족했다.
이럼에도 내 몸은 아주 멀쩡했다. 오히려 지인들이 의아해하고 심지어 부러워하기도 했다. 빵을 비롯한 온갖 간식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데 살도 안찌고 피부도 곱냐면서.
이건 자랑이 아니라 이상하게 나는 칼로리가 높은 빵과 디저트를 섭취해도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어렵게 성공한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을 경험하지 않는 기적도 일어났던지라 나의 무분별한 빵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래도 여러 매체에서 쏟아지는 건강정보를 무시할 수 없어 샐러드용 채소와 과일들도 틈틈이 섭취했다. 그래야 빵을 마음껏 먹는 데 죄책감이 덜해졌으니까. 이를테면 건강에 이로운 식재료들과 함께 빵을 먹는다는 일종의 등가법칙 같은 거였다. 꼬집어 말하진 않았어도 내심 나도 식단의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뚜렷한 부작용이랄 게 없으니 고쳐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내 일과는 꽤 규칙적이었다. 아무리 빵을 좋아해서 먹었다지만 정해진 시간에 끼니로 대체했던 것이어서 실상 섭취한 양을 고려하면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순전히 주관적 판단에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지 소화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윗배가 더부룩해서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졌고 쉴 새 없이 트림이 터졌다.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씹어 삼켰는데 그 잔향을 내내 느껴야하는 건 전혀 깔끔한 인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중요한 자리에서 꺼억하고 소리 내는 실수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은 어찌한단 말인지. 병원에 달려가 증상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하지만 병원진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간단한 검사 수치만으로는 뿌리 깊은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진찰해준 의료인도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좋아질 거라는 답이 전부였다. 어느 정도는 나도 짐작한 결과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수년간 지속한 습관을 바꾸기란 바위가 모래로 부서지는 것만큼이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쉽지 않았고 나의 개선의지는 흐지부지해진 채 본래의 일상에서 남몰래 트림을 감추는 요령을 익혀갔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