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한약초콜릿

대학동기 강희와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자주보다는 종종에서도 드문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서 전화통화로 만나는 것이 전부지만 언제나 우리 둘 대화는 열띠다. 세월에 따라 대화주제는 변화를 맞았지만 어쩌면 어투는 그대로인지, 그래서 친구인가보다.


깡은 학생신분일 때부터 부모님 권유와 강요로 맞선을 보러 다녔다. 당시 나를 비롯해 동기들에게도 센세이션을 불러온 맞선이라는 성인의 세상은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호텔 라운지에서 멀쑥하게 차려입은 남자를 티테이블 맞은편에 앉히고 요모조모 따져 견적을 내는 게 맞선인지가 가장 중요한 팩트체크였던 그 시절이 강희으로서는 가장 핫한 때였다. 맞선남에게서 인기를 얻어서가 아니라 동기들의 질문세례로 그녀가 바빴기 때문이다.


“벌써 결혼하려고?”


“남자가 구준표라도 돼? 결혼을 서둘게?”


“시집가려고 학교 입학 했어?”


“너희 부모님은 왜 벌써 널 결혼시키려고 그러셔?”


동기들은 맞선을 당연히 결혼으로 연결시켰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듣게 된 강희의 진실은 조금은 서글펐다.


“우리 엄마가 점 보러 다니는 걸 무지 좋아하셔. 내가 열 살밖에 안됐을 때 점집에서 그러더래. 딸이 일찍 시집가기 글렀다고. 성장할수록 못생겨질 거라면서. 평범하게 연애해서 결혼할 생각일랑 아예 접고, 스무 살 되면 바로 선보여서 마땅한 데에 시집보내라고 신신당부하더란다. 그 말마따나 내가 못생겨졌고 그래서 마음 급해진 우리 엄마가 닥치는 대로 선 자리를 마련하는 거야. 나는 나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오는 건데도 엄마는 아랑곳 않으시지. 만약 남자 쪽에서 내게 호감을 보였다면 세세하게 캘 것도 없이 웨딩마치를 올렸을 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경직되어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강희가 열성적으로 맞선을 보러 나간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거대한 이면의 강제력에 아연해졌던 것이다. 한 술 더 떠 깡은 자기도 엄마 생각에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덧붙이는데 현기증이 일었다.


중고등 시절 친구들이 이성교제로 웃음꽃을 피울 때면 강희는 슬며시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는데 교제경험이 없는 자신이 친구들의 기분을 망칠까 저어해서였다는 대목에서 나는 숨통이 조이는 느낌이었다. 강희의 앞날은 결혼이라는 항구에 정박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도움을 줄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후로도 깡의 선을 지켜만 보는 게 내 입장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깡의 주말계획은 웬만해선 선으로 도배되었고 서른이 넘고부터는 나이 탓이라며 횟수가 줄었다. 그 뒤 깡은 맞선을 쉬는 주말이면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들러 다음 만남을 위해 옷과 구두, 화장품을 쇼핑하는 데에 할애했고 내가 시간이 생겨 동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 번 안 되는 깡과의 쇼핑동행에서 나는 그녀에게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금이 드는 쇼핑에서 고민 없이 점원이 권하는 대로, 유행한다는 이유로 덥석 집어 드는 강희의 소비는 그야말로 낭비였다. 돈, 시간, 체력 어느 하나 아깝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강희에게 어울리는 색감이나 패턴도 찾는 데 감이 없었다. 그냥, 필요해서 사는 거였다.


애프터도 받지 못한 선에서 착용했던 옷을 또다시 입고 새로운 상대를 만날 수 없다는 결벽 비슷한 감정이 강희를 무분별한 쇼핑중독으로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맞선을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친구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은 추천해 줄 자격은 가져도 될 것 같아 깡의 구매를 간섭하기로 작정했다.


“그거 정말 별로야. 얼굴이 훨씬 길어 보여.”

목 아래로 깊게 파인 니트를 시착하고 매장 거울 앞에 선 강희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전까진 아무도 나처럼 굴지 않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얼굴이기도 했다. 대체 그간 엉뚱한 쇼핑을 하느라 얼마나 손해를 본 걸까?


어쩌면 강희는 쇼핑을 위한 소비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새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예전 사람과의 흔적을 묻힌 채로 인연을 만나고 싶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번엔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가 옷에 깃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신중하게 접근했어야했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구현할 최상의 옷을 그리고 액세서리를 사냥했어야했다.


그러나 내가 권하는 것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단조로워.”


“음, 그건 뭐랄까,,, 사감선생 같아.”


“난 좀 더 화사한 게 좋아. 이 색은 칙칙하지 않니?”


거절의 이유도 다양했다. 사정이 이러니 어느새 나도 기진맥진해졌다. 더 이상 의견을 내는 게 무의미했다.


내 눈에 강희는 우아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정작 본인은 로맨틱한 공주 스타일을 고집했으니 우리의 대립은 당연했던 거다. 쇼핑에선 지갑을 든 자가 성공하는 법이니 나는 패자일 수밖에 없었고, 종국엔 그녀가 고르는 것을 생각과는 반대로 칭찬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한 가지, 정말 정녕 허용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구두.


현재는 구두보다 슬립온이나 스니커즈가 트렌드를 주도하지만 한때는 구두가 스타일의 정점에 도도하게 섰었다. 킬힐과 플랫이 극단적으로 유행하던 때였고 구두 굽 높이로 보아 선호하는 스타일이 확연할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특히나 힐 추종자였다. 깡이 구두를 고르는 내내 내 촉수가 예민해진 건 본능과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고른 건 라운드 코의 블랙 에나멜 재질 6센티미터 구두였다. 나는 깡의 선택이 싫었다. 결단코 싫었다.


높은 굽을 고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날 고른 의상과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아서였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화사한 플레어 스타일 원피스를 기껏 사놓고서 반짝이 블랙 구두라니, 미미인형이라도 되기로 작심한 것만 같아 적극적으로 구매를 말렸다. 내 주장은 적당한 베이지색 플랫이었다. 우리의 실랑이는 꽤 오래 갔고,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이겼다.


“플랫 신으면 너무 어린 애 같지 않아?”


강희는 매장을 빠져나오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고 나는 단호하게 내가 옳다고 말했다. 왜였는지는 몰랐다.


폭풍 같던 쇼핑을 마치고 헤어진 다음 날, 갑자기 잡힌 선 약속에 깡은 원피스와 마지막까지 내키지 않았지만 플랫을 신고 인연을 찾으러 나간다며 내게 연락했다.


그리고 저녁 무렵, 만남 두 시간여가 흘러서 강희는 울먹이며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너희 집 근처야. 나올래?”


급히 뛰어나간 나는 강희가 눈물로 번진 아이라인을 닦아내려 애쓰는 모습과 마주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속장소에서부터 뛰어왔어.”


“뭐라고? 뛰어? 왜?”


“그놈이 뛰래서.”


“.......”


난 할 말을 잃었다. 맥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 만난 놈이 차 마시고 밥까지 먹자하기에 들떴었어. 호텔 밖으로 나오니 썰렁해진 거야. 원피스만 입고 나갔더니 춥더라고. 그래서 내가 팔을 비비면서 좀 춥네요, 하니까 글쎄 그놈이!”


“그놈이 뭐?”


“추우세요? 그럼 제자리 뛰기라도 해보세요,
그럼 몸에 열이 돌 거예요.
그러잖아. 그래서 제자리 뛰기 하다가 그길로 달려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고맙다니 뭐가?”


“네가 플랫 골라줘서 뛰는 데 지장 없었거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한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