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7살,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계기는 이모의 말 때문이었다. 나와 고작 10살 터울이 진 막내이모는 직장을 이유로 우리 집에 얹혀사는 중이었고 월급을 받으면 당시 가장 핫한 아이템들을 그러모으는 게 취미였다. 취미만 아니었으면 고되게 일터로 돈 벌러 나가지 않았을 거라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럴 때면 본래 나이보다 적어도 다섯 살은 더 들어보였다. 하지만 퇴근길에 쇼핑백을 어깨에 들추고 오는 날은 나와 동갑이라 해도 충분할 만큼 앳된 얼굴이 되어있었다. 그렇대도 이모의 흥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진 않았다. 쇼핑은 예쁘고 멋있는 사람들만 하는 특화활동으로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얼굴에 신장에 따라 정해진 평균체중을 웃도는 사람은 낄만한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었다. 아니면 내 몸에 자신이 없어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렸는지도 모른다. 속살이 불어나고 살이 트는 체중증가 증세를 겪다보니 저절로 움츠러들었으니까.
고교생인 내가 가진 패션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엄마가 사주신 사계절이 구분되는 넉넉한 핏의 셔츠 4장과 스트레이트 진 두 벌뿐이었다. 교복을 착용하니 그 외는 필요 없다는 게 엄마의 설명이었고 나도 동의했다. 외투는 없었느냐고 묻고 싶은 이들이 있을까봐 답하자면 봄가을 재킷과 겨울 패딩 및 코트는 엄마 옷을 빌렸었다. 그러는 편이 경제적이라고 엄마는 주장했다. 우리 집 가정형편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학생에게 옷은 무용지물이라는 데에 뜻이 맞아 가능했던 결정이다. 정말 나는 스타일이라는 것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세안을 마치고 얼굴에 바르는 크림도 종종 생략했고, 풋크림이라는 것은 새로 출시된 아이스크림 이름인가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보습제의 보호막이 없어도 건조함을 느끼지 못하는 본연의 방어막이 튼튼했던 시절이라 코스메틱 세계는 나와는 영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이랬던 나를 두드려 깨운 날은 이모가 화장품가게를 쓸어왔나 싶을 만큼 화려한 외관을 가진 화장품들을 사온 어느 저녁이었다.
“너는 뭘 또 이렇게 한바구니 사오는 거야? 옷이야?”
엄마가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는 투로 현관을 들어서는 이모를 붙들고 말했다.
“아니야. 옷은.”
이모는 뿌듯하게 옷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럼 뭐야? 너 월급 받아서 엄마, 아빠께 용돈 한 번이라도 드려본 적은 있어? 물건 사는 데만 정신 팔려서 도리도 접어치운 거 아니야?”
“다음 달 엄마 생신에 드리려고 맘먹고 있어.”
이모는 좀 전과는 다르게 살짝 풀죽은 목소리였다.
“얘가, 얘가 그럼 그렇지. 뼈 빠지게 자식 낳아 기르면 뭐해? 머리 굵어 집 떠나면 제 몸만 위할 줄 알지. 부모님도 너만큼이나 좋은 물건 보실 줄 알아. 그런데 자식 기르다보면 자식한테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구두창이 닳아도 소매보풀이 풀풀 날려도 아직은 쓸모 있다며 개의치 않으시고 한푼 두푼 자식에게 더 쓰셔서 기르신 거야. 네가 그 공을 알면 이렇게 미친 듯 돈 써가며 살진 못할 거다!”
“언니도 엄마 아빠 자식이잖아. 이 집 장만할 때 아빠 퇴직금 일부 빼갔으면서 나한테만 자식 된 도리 운운하는 거 서운하려고 해.”
이모가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뭐라고? 이 계집애가 말이면 다니? 난 엄연히 빌린 거야 빌린 거! 그것도 이자 쳐서 다음 달 엄마 생신에 드리려고 다 준비해놨다고.”
엄마가 기세등등하게 대꾸했다.
“아니 왜 아빠 돈을 엄마 생신 때 돌려드려? 그것도 도리는 아닌 거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선 이모의 논리가 타당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모에게 응수했다.
“아빠 돈이 엄마 돈이나 매한가지야. 네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모르나본데 부부지간에 주머니 따로 차는 건 역적모의야. 이래서 옛말에 시집장가를 가야 어른이 된다고 했나보다. 부부의 비밀을 꼬맹이인 네가 어떻게 알겠니?”
엄마의 설교는 이모를 뿔나게 만들었다. 육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가장 자주 들어 더 이상 듣기 싫다고 못 박은 단어가 꼬맹이였는데 우리 엄마가 무심결에 딸인 나를 대하듯 이모를 철부지로 대한 것이었다. 엄마도 이를 눈치 챘는지 멋쩍게 시선을 돌려 부엌에 가스불을 올려놓고 깜빡했다는 변명으로 부자연스럽게 몸을 감췄다. 이모는 잠깐 입술을 삐죽이더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이었다. 엄연히 내 방이지만 참 이상하게도 이모가 들어온 후론 내가 꼽사리 낀 느낌이었다. 나이 어린 비애를 이모가 내게도 알려준 격이다. 어쨌든 과부 사정 홀아비가 제일 잘 안다고, 어린 내가 어린 이모를 다독일 요량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래야 내가 방에 있어도 덜 불편해서다.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한 발 디밀었는데 바로 앞에서 이모가 내 손목을 홱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예견했던 반응이 아니라 당황했다. 시무룩해져있을 줄 알았던 이모는 환한 낯빛을 띠고 내게 말했다.
“어때? 내 연기 감쪽같았지? 휴~ 난 또 언니가 쇼핑백을 뒤져보는 줄 알고 식겁했네. 나이스 타이밍에 언니가 실수를 다하고 호홋. 이제 네 엄마도 어릴 적 사감 같던 서슬이 다 녹슬었나보다. 자라면서 내가 거짓말 할 적에 다른 식구들은 모두 넘어가도 네 엄마는 절대 안 속는 매의 눈이었는데 이젠 나이드니, 것도 별 수 없어졌나봐. 그런데 왜 조금은 속상하려고 하지?”
이모는 내가 따라가기 힘든 감정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말을 맺었다.
우리 엄마가 녹이 슬어 좋다는 건지 슬프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어 나는 멍한 표정으로 말없이 있었다.
“오늘은 우리 조카님 선물도 하나 있어. 이리 앉아봐.”
이모 말대로 침대가장자리에 걸터앉았는데 중앙엔 화장품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한눈에는 셀 수 없을 만큼 가짓수가 많았다. 브랜드명도 죄다 알파벳 금박글자로 박혀 화려했다. 엄마 화장대에선 보지 못했던 종류였다.
“이거야. 열어봐.”
이모가 건네 준 물건은 립스틱 크기 상자였다. 볼 것도 없이 립스틱이었지만 반짝이는 포장지로 포장까지 해온 것이었다. 내가 얼떨결에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손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연한 핑크색 색감표가 겉면에 붙은 의심할 수 없는 립스틱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모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걸 왜 날 줘?”
“왜냐고? 어머 조카! 그 나이엔 이 정도는 발라주는 게 사랑스러워. 여자는 자고로 어리나 늙으나 가꿔야 한다고 가정시간에 안 배워? 우리 때는 메이크업도 강사 초빙해서 알려주고 그랬는데? 아, 그건 졸업 직전이던가? 아무튼, 친구들은 다 바르고 다닐 거 아냐? 이성 친구도 사귀려면 적당한 꾸밈은 필요하지 않겠어?”
나보다 이모가 더 어리둥절해했다.
“이성 친구?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내가 무심한 투로 말하고 립스틱을 내려놓으려는데 이모가 제지했다.
“그러지 말고 한번 발라봐. 이모 선물인데 개봉도 안하면 서운하잖아. 가볍게 쓱 긋기만 하고 위아래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하는 게 다야. 자 어서.”
이모가 손거울을 내 면전에 들이미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했다. 쓰윽 긋고 입술을 두어 번 오므렸다 뗐다. 진하게 발색될 줄 알았던 립스틱은 입술에 윤기만 남겼다. 크게 어색해보이지 않아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입술만 촉촉해도 인상이 부드럽게 바뀌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모르는 인격이 내 얼굴 아래 잠자고 있는 착각마저 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고 드라마틱한 감동은 없었다.
“어디보자. 어머, 정말 잘 어울린다 얘. 처음치곤 잘하는데? 나중에 화장술에 도가 트는 거 아냐? 넌 눈이 크고 동그란 데 비해 입술이 얇고 날카로운 선이라서 화장으로 여러 분위기를 낼 수 있겠다.”
“내가 무슨 화장을 해? 화장한다고 예뻐 보일 리도 없을 건데. 원래 예쁜 애들이 꾸며야 티 나는 거잖아. 나는 아니야.”
“조카! 아직 뭘 모르는구나? 여자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다 예뻐져!”
돈만 있으면 누구나 예뻐진다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타고나길 미인으로 타고나야 예쁜 거잖아?
“돈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고가화장품을 사고 고급원단으로 만든 옷을 사 입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면 웬만해선 예뻐 보여. 그러니까 돈이 많아야 더욱 예뻐지는 거야. 필요하다면 성형을 해도 되지만 그것도 결국은 돈이거든. 그러니까 조카는 나중에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도록 해. 그러면 저절로 예뻐져.”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도 화사한 여배우들처럼 꽃처럼 피어나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게 돈으로 해결된다고?
그렇다면 나는 꼭 돈을 많이 벌 거야. 나도 예뻐지고 엄마도 아름답게 치장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