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즐거움을 안겨줬고 판단력을 발달시켰으며 결정적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는 데에 큰 축을 담당하는 존재로 변해갔다. 정확하게 새 옷을 고르고 사는 일에서 이 같은 정신증축현상이 발현됐다. 의류쇼핑은 어느덧 내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신을 지배하며 신체의 자율권을 박탈했다. 옷에 들어갈 알맞은 몸을 만드는 일이 그러했다.
시작은 자의가 아니었다. 드디어 교복신세를 면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어른들이 숱하게 했던 말, 대학 가면 살 빠져. 내게만 국한된 사실일지 모르지만 정말 살이 알아서 빠졌다. 돌이켜보면 호기심에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헤집고 다니는 통에 늘어난 신체활동과 더불어 간식거리를 입에 댈 시간부족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였다. 한 학기 동안 서서히 체중8kg이 줄었고 체중계 숫자는 초등학교 졸업직전에나 봄직한 51kg이 되어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신기해서 매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체중계를 오르내렸다. 특히, 대중탕에서 재는 체중변화의 재미는 너무도 쏠쏠해서 아예 집에 사우나 시설을 설치하고프기도 했다.
그런데 마법 같은 체중감량에도 사행심 비슷한 감정이 생겼는지 무감각할 정도로 만족이 되질 않았다. 조금만 더 빠지면 배가 납작해질 텐데. 조금만 더 빠지면 허벅지와 종아리가 매끈해질 텐데. 조금만 더 빠지면 복사꽃처럼 청초하면서 도도해보일 텐데. 끝이 없었다. ‘조금만 더’의 극적 대비효과에 대한 갈망은. 그럼에도 어느 정도까지 체중을 낮춰야할지 기준은 잡히지 않았다.
반면 양육하는 내내 군살이 없는 딸의 외형을 접해보지 못한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얘가 어쩌려고 이렇게 말라가? 살 빼는 거 여기서 그만 둬. 더했다가는 환자가 따로 없겠어. 여자는 적당히 살집이 있어야 안 아프고 나중에 고생 덜 하는 거야.”
“나중 언제 고생을 덜 하는데?”
“언제긴.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고 모유 주며 키울 때지.”
“엄마는 내가 무슨 애 낳으러 여자로 태어난 줄 알아? 여자는 가꾸고 예뻐질 의무가 있는 거야.”
“이게 이모랑 지내더니 말하는 거 봐라. 정신 차려. 골골대는 몸으로 애 낳으면 아기도 아파. 그러면 진즉에 네 몸 관리 못한 거 두고두고 후회된다 너. 아이한테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한다고 생각해봐.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걸.”
당시엔 한 귀로 흘렸다. 출산은 아직 내게 멀고도 먼 훗날의 불완전한 사건 같은 거였다. 여아로 태어나 성인이 되면 출산을 하게 될 것이라는 연역적 예언에 불과한 엄마의 조언은 나를 한 치도 흔들지 못했다. 난 외려 반드시 살을 더 빼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유용한 다이어트 방식이 있는지 인터넷 서핑에 집중했다.
방식은 종류에선 무수하고 다양했고 실천에선 놀랄 만큼 단조로웠다. 적게 먹고 오래 많이 움직이는 게 키포인트였다. 이미 해오던 일이어서 새롭게 얻은 정보가 초라했다. 정보라고 일컫기에도 적당치 않았다. 뭔가 자극될만한 요소가 절실했다. 그러다 우연히 배우 이영애의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신장 165cm 체중 48kg’
내용 중 이것만 눈에 들어왔다. 나와 똑같은 키인데 체중이 적게 나가다니! 단순수치비교만으로도 내 몸이 아주 뚱뚱하다고 생각됐다. 내친김에 여러 여자 연예인들의 체중조사에 나섰다. 거의 45~48kg 사이였다. 자극치고는 충격적이었다. 연예인을 비롯해 거리에서 보는 날씬한 여성들의 적정 체중이 48kg이하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내 체중은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부끄러운 숫자였던 것이다. 이것도 모르면서 엄마말만 믿고 정말 내가 마른 몸이라고 잠깐이나마 믿었다니. 기준은 자동 설정되었다. 48kg까지 체중을 줄인다는 목표. 더구나 다음날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는 여성학 강의 중 나의 목표달성에 대한 각오는 굳게 다져졌다. 강의에서 다룬 주제는 여성의 신체가 사회의 시선으로 통제된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교수의 발언 중 내 귀를 단단히 붙잡은 구절은 이것이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삼십 대 젊은 여성 대다수가 원하는 체중이 48kg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자신의 체격조건이나 건강상태를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48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죠.”
‘48’ 이 숫자는 더 이상 불복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거기에 옆자리에 앉은 타 학과 여학생이 속삭이듯 “내가 48인데 난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아.” 라고 중얼거리는 것까지 들은 통에 무엇이 나를 제지할 수 있었겠는가.
곧장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날로 저녁식사를 끊었다. 끊었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았다. 남들이 저녁식사 대용으로 샐러리, 오이, 바나나, 고구마 등을 섭취한다면 나는 그보다 강경하게 몸을 혹사시키기로 작정한 것이다. 오후 3시 30분이후로는 물로만 배를 채웠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점심을 꾹꾹 눌러 담아 먹고 오후 3시가 되긴 전에 간식으로 과일이나 견과류를 챙겨먹었다. 대신 식사양이나 음식종류를 한정짓지 않았다. 달콤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쫀득한 떡은 하루아침에 잊을 수 있는 질감이 아니었다. 단박에 이것들을 절제하면 다이어트는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해 정 먹고 싶을 때는 아침식사에 곁들어 먹었다. 그래서 견딜 만했다. 식이는 이 정도에서 조율했고 운동법은 딱히 정하진 않았다. 평소처럼 움직이고 저녁산책 삼아 1시간을 쉬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하루도 게을리 않고 이주쯤 지나 체중계에 올랐다. 그전까진 한 번도 재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었다. 설렜고 떨렸고 두려웠다. 지난 노력에 대한 성과가 눈에 보이길 바랐다. -0,5kg. 결과였다. 고작 500g빼자고 그 미친 노력을 해왔나 싶어 땅이 꺼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했다. 배에 물컹하게 잡히던 살이 떨어진 것 같았는데 겨우 500g이라니. 스스로에게 사기당한 기분에 울적해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내 몸무게는 영영 5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좌절도 그런 좌절이 없을 정도로 침울하게 나를 책망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수없이 반문했지만 해답은 어디서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하고 가능성을 다시 점쳐봤다. 겨우 2주 지속하고 3kg이 훅 빠져 있길 바란 내가 염치없는 욕심을 부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주저앉아 실망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임이 분명하다며 내게 위로를 건넸다. 앞으로 2주간 더 지속하고 그때도 안 되면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로 작정하고 다시 똑같이 다음날을 맞아 실천했다. 생각을 버리고 몸을 지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악물고 몸을 단련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체중을 측정하기 전 거울에 비춰본 몸은 명료하진 않지만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지만 완전히 지우긴 힘들었다. 적어도 2kg은 줄어 있길 바랐다. 두근대는 심장에 손을 얹고 발도 체중계 단면에 얹었다. 처음엔 직시할 수 없어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사이 디지털 숫자가 가파르게 위치를 찾아 오르내리더니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바라볼 때였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숫자를 읽는데 내 시력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아니면 필시 체중계가 고장 났거나. 재차 확인할 셈으로 내려왔다 다시 올랐다. 처음과 같은 숫자, 47.8이었다. 47,8kg!
원했던 것보다 200g이 적었다. 놀랍고 기뻤다. 아니 그보다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노력과 땀에 대한 보상을 얻었다는 자아 발전적 에너지가 샘솟는 기분이었다. 소소한 일이지만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나를 가득 감쌌다. 살은 잃었지만 자신감을 얻고 보니 내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 아마도 살을 뺐다는 사실보다 내가 목표한 결과에 도달했다는 성취감에 흥분했던 것 같다.
당연히 옷을 입어보러 쇼핑센터로 나갔다. 구입할 생각보다는 입어보고 싶었던 옷들이 잘 맞는지 어울리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유행하던 부츠컷 청바지를 제일 먼저 입어봤는데 예전 같으면 가랑이에서 딱 맞았던 사이즈가 여유 있게 남았고, 몸에 달라붙는 탄성 좋은 티셔츠도 유연하게 몸에 안착됐다. 원피스는 종류와 길이를 막론하고 55사이즈가 보기 좋게 맞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에서 불거졌다.
한창 신나게 옷을 피팅하며 거울을 바라봤는데 불쑥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이 감돌았다. 잠깐이었지만 혼미하게 정신이 핑 돌아 절로 머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갑자기 빠진 체중에 몸이 익숙지 않아 생긴 현상이려니 했는데 머리털을 쓸어내려오던 손가락에 힘없이 걸려 따라 오는 것이 있었다. 머리카락이었다. 어쩌다 한두 올씩 빠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불치병 환자들을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볼법한 털 뭉치가 내 손안에 잡혀있었다. 당황해서 얼어붙었다. 두려움과 공포에 맞닿은 순간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바이킹의 최고점에서 하락할 때의 철렁하는 심장에 번지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옷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집에 가면 해결책이 기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해결책보다 더 큰 문제는 집에서 발생했다.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화장실로 향해 볼일을 보던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통으로 아랫배를 잡고 쓰러져 뒹굴었다. 통증으로 울먹이는 소리는 점점 비명으로 변해갔다. 놀란 엄마와 아빠가 쫓아 들어와 사정을 살필 것도 없이 나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향하셨다. 어떻게 진단을 받고 처치를 받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룻밤을 병원 침상에 가만히 누워 링거를 꽂은 채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날이 밝아 병원 밖을 나오며 내가 들은 병명은 급성신장염이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영양결핍과 대사 작용에 문제를 가져왔다는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 후 3일을 꼼짝 않고 죽과 약으로 끼니를 때웠다. 체중이 불지 줄지는 그때에는 중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