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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Dec 08. 2023

기간제가 뭐 어때서?

처음으로 말해보는 속 마음

 교장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쳐 공손히 두 손 모아 목례를 하고 지나가는데, 이내 누군가를 부르신다. 겨울을 맞이한 학교 건물은 희한하게 바깥보다 더 추워서 총총 화장실로 향하는데, 애타게 부르는 그 외침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은 3초 후쯤에 알았다. 내 성씨를 착각해서 잘못 불렀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름을 헷갈릴 만큼 거의 호출하실 일이 그동안 없었는데 무슨 일로 부르셨을지 긴장되면서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유를 알 것 같았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구두로 내년도 재계약을 약속했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따로 호출하셔서 통보를 해주시곤 했는데, 올해는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고, 생계형 아줌마의 마음은 조금 따뜻해졌다. 12월을 맞이한 학교는 학기말 업무와 함께 내년도 준비를 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새 학년도 업무분장과 수업 시수를 정하느라 때론 교과 별로 선생님들끼리 다투기도 하며 팝콘이 필요한 상황이 종종 펼쳐지기도 하는데, 어차피 결정권이 없어서 어찌 보면 속 편한 우리들은 한 발자국 멀리서 이 막장드라마를 지켜보는 것이 나름 흥미롭기도 하고, 그 결말에 우리의 거처가 달려있기에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12년 차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 선생님들이 육아휴직이나 병가 등으로 장기간 학교를 비워야 할 때 그 휴직기간 동안 모든 수업과 담임업무 등의 행정업무를 똑같이 맡게 된다. 최대 일 년씩 계약을 하게 되고, 4년 동안은 시험 없이 계약 연장이 가능하지만, 휴직을 낸 정교사가 복직을 하거나 학교 교육과정 상 수업시수가 사라지면 우리의 자리가 없어지기에 다른 학교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운이 안 좋은 선생님은 일 년마다 옮겨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나의 12년은 운 좋게도 누군가의 휴직 대체 자리가 아니었고 교육과정 상 일본어교과 수업 시수는 있는데 가르칠 교사는 없어서(?) 그 자리에 채용이 된 경우였기에 감사하게도 장기계약이 가능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인 생활을 하면서 교육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생뚱맞게도 교사자격증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다니던 회사에 평생 다닐 생각이었고, 교사라는 직업은 특별한 사람들만, 남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직업인 줄 알았기에 (또 그래야 한다고 지금까지도 믿는다) 누군가의 앞에서 발표도 못했던 내가 교단에 선다는 것을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 현장에서는 담임 못한다고 교장실 바닥에 드러눕거나, 수업 시수를 한 시간이라도 덜 하려고 본인 이익을 위해 인간의 본성의 민낯을 보여주시는 선생님들도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그들도 결국 월급쟁이였음을 알게 되어 충격도 많이 받았었고 또 그들을 지켜보면서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살다왔는데, 일본어 교사 자격증 따는 게 뭐 어렵겠어! 하며 귤 까듯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었지만 안이한 생각이었고 첫 출산과 함께 얻은 그 자격증을 그냥 집에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다는 현실과 생각에 이르게 되어 나의 기간제 교사 생활은 시작되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었기에 다행히도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셔서 일하는 데 육아가 아무 지장이 없었고, 또 말씀은 안 하셨지만 며느리가 갑자기 동네에서는 잘 알려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에서 교사가 되었기에 만족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자랑스러운 며느리가 될 수 있어서 많이 뿌듯했고, 선택받은 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교사라는 직업을 갑작스럽게 얻게 되면서 신기하고 신이 났었다. 게다가 그 당시 어디서 구했는지 하키채나 각목을 교내에서 하나씩은 들고 다니시던 남자선생님들 사이에서 단지 여선생님이라는 이유 하나로 난생처음 누려보는 남학생들의 관심과 인기에 나의 전성기가 펼쳐진 것 같았다.


 학교와 학생들과 사랑에 빠져 '교사'로서 순조롭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가 없었는데, 각종 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바로 붙어있어서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라는 것이 갑자기 너무나도 창피하고 부끄럽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워킹맘 같긴 한데 다른 직장맘들보다는 일찍 퇴근하는 것 같기에 다른 엄마들이 봤을 때는 궁금도 했을 것이다. 한 번은 학교에 다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내가 뭘 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혼자 생각이 많았다. 날 이렇게 만든 것은 엄마들이 모여서 하는 수다 단골 소재인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에 2반에 오신 그 선생님은 기간제래" "뭐? 그거 가짜잖아!"와 같은 이야기를 나눌 때,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고 빨리 다른 화제로 넘어가길 조용히 기다렸다. 실제로 이상한 기간제 선생님들도 있기에 아무 반박도 못했다. '가짜'라는 표현에 아니라고 하기도, 맞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처음부터 바로 옆 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정체를 밝혔다면 좀 더 숨을 쉬며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을 텐데, 기간제라고 밝히는 것이 쉽지 않고 자존심도 상하며 기간제 교사 엄마를 둔 아들에게도 미안했었다.

 

 여전히 학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기간제 교사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뭐 같이 일하는 정교사 중에서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사람도 있으니. 언젠가는 떠날 사람, 임용고시를 패스 못한 사람, 실력이 없을 거란 선입견에 그런 말들을 하는 거 같은데 실제로는 더 젊어 에너지가 넘치며 실력도 있고 열정이 있는 능력 있는 기간제 샘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 학교에서는 빠르게 적응하여 어떠한 결손이 느껴지지 않도록 업무를 해낼 사람을 원하기에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경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 이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학력으로 말하자면 스카이 출신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슬프지만 (적어도 나는) 재계약을 위해 더 눈치를 보며 더욱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우리 반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되기에 누구보다도 더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는 한 대한민국에 있는 누구보다도 내 교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본어 원어민 발음과 생생한 일본 생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뿐 아니라 학생들 입장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진심으로 나아갈 것이다. 내년도에도 기회를 줄 학교에도 감사하며 (아직 구두로만 얘기를 하고 계약서에 도장은 안 찍었기에 불안하다) 새롭게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나의 작은 최선을 모아 사랑을 전할 것을 이 글을 쓰며 다짐한다. 모두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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