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울어도 된다? 안 된다!

직장은 친구 모임이 아닌 전쟁터

by 박진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난 직속 상사의 버림을 받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나름대로 인수인계를 받고 맡아야 할 업무를 다 떠받게 되었지만, 회사란 곳은 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손이 달리고 스케줄은 촉박하고 수입은 짜다. 그나마 업무에 대한 성취감과 으쌰 으쌰하는 후임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이런 시기가 언젠가 끝나겠지. 버티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오겠지(다른 사람보다 나만 믿고 달렸던 때다). 코피 흘리며 수능 준비했던 적도 있는데 이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했다. 내 계획대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치명적인 고난은 상대방의 "막무가내"였다.


서러운 마음에 훌쩍인 적 있다

클라이언트의 갑질을 받았다.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 명령식의 오더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밤낮없이 진도를 뺐고 수면 부족으로 인해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 일상의 사소한 트러블에 예민해지고 대체 무얼 위해 이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늦은 밤(새벽 2~3시 정도), 홀로 돌아가는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인생에 대해 회의감만 들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학창 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지금쯤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태어날 때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지금쯤 덜 힘들까? 답답한 기분이 가슴을 메우며 억울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플 때는 펑펑 울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단, 이튿날은 눈이 퉁퉁 부을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터벅터벅 걸으며 홀로 눈물을 훔쳤다. 다시 날이 밝으면 오늘 하루도 파이팅 하자고 부서 직원들을 다독였다. 어깨가 뭉치고 아침부터 울적해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믿음직한 리더 이미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동료 앞에서는 눈물 보이지 말자

전 팀장인 Y가 떠나자 본사에서 새로운 담당자를 정해 주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깔끔한 단발 커트인 K가 나의 직속 상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업무차 연락하고 피드백을 받다 보니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도 회식 자리나 송년회 모임이면 항상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랬던 K가 여러 협력사와의 연말 송년회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과음한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테이블에 고개를 떨군 채 펑펑 울었다. 한국 파트의 모든 책임을 져야 했던 게 힘겨웠을까? 회사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없어 외로웠을까? 어쨌든 그녀가 구슬프게 흐느꼈다. 곁에 있던 감독님 D가 안쓰러워하며 그녀를 그러안고 위로해 주었다.


직장에서 함부로 눈물 보이지 말자.

그때 그 장면을 목격한 뒤로 깨달았다. 직장에서 눈물을 보이면 상사든 후임이든 공적인 관계 수립에는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상사의 입장에서는 안쓰럽다고 톡톡 위로하겠지만, 언젠가는 약점으로 역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임의 입장에서는 선배가 무너진 모습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저런 사람은 믿을 만할까? 언젠가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진 않을까? 어쩌면 그때부터 퇴사할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지옥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으려고 분투하겠지만, 눈물은 함부로 보이지 않기로 했다. 그 눈물에는 너무나 많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으니까. 고단함, 나약함, 막막함, 억울함, 답답함, 서운함...


나이가 들고 맡은 포지션이 많아지고 높아질수록 그만큼 도전적인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성공한 자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라!


물론 그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모든 인생을 다 그런 방식으로 이겨내야 행복한 건지 묻고 싶다. 너무 힘들다면 조용한 곳을 찾아 곰곰이 생각하고 계산해 보길 바란다. 과연 부단히 다독이고 위로하며 견뎌낸 것의 결과물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말이다. 어쩌면 나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힘들고 답답하다면 울어도 된다. 분노를 터뜨려도 된다. 다만, 같은 직장 동료 앞이라면 꾹 참길 바란다. 그대가 의지하고자 했던 사람이 전부 그대를 지지하는 “천사”가 아니란 걸 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