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대는 이전 시대보다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급속한 공업화 시기를 지나오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처럼 우리 삶 역시 눈부신 발전의 혜택을 보고 있다. 소위 없던 시절, 품질, 디자인, 가치 같은 개념은 사치였다. 한 끼 밥이 더 중요하던 시기에 우리 부모님 세대는 허리띠를 졸라매셨다. 그 대가로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삶에서 여러 물건이 우리 주변을 채웠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시대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던 시대에 우리는 흑백 TV를, 라디오를, 선풍기를 경험했다. 치열한 기술과 경제개발로 인해 조금씩 우리의 안목이 높아지고 이는 품질 우선주의로 이어지고, 디자인으로 발전했다. 밀레니엄을 지나오면서 전체주의에서 개인의 의견과 개성, 생각, 그리고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욕구단계 이론처럼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이제 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품의 품질은 이제 중요한 선택옵션이 아니다. 디자인도 기본사항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가치소비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디자인은 급격한 산업화 속도의 사회에서도 살아남았다. 빨리빨리와 품질의 폭풍 속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언제나 산업의 중심 그 어딘가에서 시기를 노리고 있었던 덕분이다. 이제는 가치라는 옵션을 얘기해 볼 수준으로 우리는 성장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낭비를 조심하며 미래까지도 고려하는 디자인을 추구해야 한다.
가치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비싸고 좋은 아이템에 가치를 두기도 할 것이고, 저렴하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아이템에 눈길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의 난이도가 높은 것은 수많은 불특정 다수에게 사용되거나 도움이 되는 제품이라 생각한다. 이런 제품은 필연적으로 많이 생산되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품질은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격도 줄일 수 있고, 그것이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Humble Masterpieces라는 제목의 책을 구매한 적이 있다.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어서 중요함을 자칫 잊어버릴 수 있는 제품을 Humble Masterpieces(겸손한 명품)라고 표현했다. Humble을 겸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는 미천한, 비루한 정도로도 해석된다. 아주 극단을 의미하는 두 단어의 조합에 아주 공감했다. 한국어 제목은 "디자인, 일상의 경이"였다. 예를 들면 종이클립, 주사위, 축구공, 레고, 지퍼, 거품기 등이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생활 속에서 제대로 자리 잡은 디자인들이다.
개인적으로 다이소를 좋아한다.
그 역시 초기 품질문제를 경험하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알리 익스프레스는 한국 신세계 그룹과 합작법인을 발표하면서 생활용품 시장의 글로벌화가 다양하게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이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서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디자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추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거시적인 이슈와는 관계없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소박한 디자인에 더 가치를 주고 싶다. 이제는 개인이 구매하는 제품이나 소비하는 브랜드가 그 사람을 상징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느냐가 단순한 제품을 떠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가치는 어떤 것도 좋고 나쁨이 없다. 다른 뿐이다. 특히, 디자이너들은 실력과 함께 가치관이 중요하다. 특히, 인공지능 AI의 발달은 더욱 기능보다 콘셉트에 중점을 두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디자이너들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나 시스템과 싸워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디자인의 정의를 내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