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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과 디자인

닮은 듯 다른 점

by 송기연

뜨개질은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한 부분씩 만들어야 하니 철저한 계획, 목적, 꾸준함이 필요하다. 가느다란 실을 엮어 부드러운 목도리나 조끼, 옷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실을 엮는 것이 아니다. 실을 당기는 힘, 패턴의 균형, 촘촘한 짜임까지 복합적인 계산이 필요하다. 그리고, 특정한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을 엮는 수많은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선(실)으로 면(옷)을 만들어가는 조형적 활동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요소인 기술, 콘텐츠, 맥락을 외형으로 아름답게 목적에 따라 만드는 행위다. 좋은 뜨개질이 그렇듯, 좋은 디자인도 철저한 계획과 체계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디자인도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콘텐츠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기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뜨개질과 닮았다.


뜨개질이 쓸모 있는 의류가 될 수 있는 것은 목적에 따라 철저하게 계획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실이 엮여있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실과 실 사이의 면이 있어 모양을 만들고 기능을 한다. 서로 다른 성질이 실이 서로 얽히면서 패턴을 만들고 조화를 이룬다. 이 복잡한 뜨개질의 손 움직임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옷의 부분을 상상하면서 하나씩 실체화하는 것이다. 뜨개질이 이런 과정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가듯이 디자인도 보이지 않는 요소를 서로 조합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움직임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뜨개질하는 사람의 정교한 손놀림과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의 결과물인 것이다.


뜨개질은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다.

입었을 때 편해야 하고, 상대의 기호도 충족시킬 때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의미 있는 물건이 된다. 따뜻한 옷처럼 좋은 디자인은 사람을 배려한다. 또한, 뜨개질이 실의 탄성에 의해 몸에 자연스럽게 맞아 들어가듯이 디자인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사용하는 사람의 환경과 특성에 따라 기능할 때 생활 속의 디자인은 더욱 빛난다. 좋은 뜨개질이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정성스럽게 엮여 완성되듯이 좋은 디자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노력과 치밀한 계획이 쌓여야 완성된다. 보이는 것만 좇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신경 쓰는 디자인.


그게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여가면서 만들어내는 진정한 디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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