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 가까이 주방에서 일을 했다. 국숫집, 뷔페, 스테이크 전문점, 태국 음식점, 베트남 쌀국숫집, 브런치카페, 돈까스집 등 어지간한 주방은 가 본 것 같다.
코로나 시국이 끝날 때까지만 다니자는 생각으로오게 되었다. 나는 어린이집 조리사이다.
출근을 하면 먼저 주방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 프로와 어린이집 조리업무는 비슷한 게 많다.
전 날 빨아놓은 흰 행주를 개어놓고 발주서와 식자재를 확인한다. 발주는 당일 것만 한다. 퇴근할 때면 냉장고는 비워져 있다.
우리 원은 풀무원에서 발주하는데 배송사고는 거의 없다. 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
브로콜리나 가지는 크기를 확인해야 한다. 가끔은 너무 작은 게 올 때가 있어서 한두 개는 여유 있게 발주를 넣는 편이다. 다 잘 와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인 우리 원은 관할 급식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식단을 사용한다.
오전 간식은 주로 채소 스틱, 과일, 우유와 치즈, 요거트 등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 위주로 가볍게 짜여 있다.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들은 아침 간식으로 죽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영아보다 유아 비중이 큰 우리 원에서는 죽이 나가지 않는다.
대개는 9시반쯤 오전 간식을 먹는다. 가정에서 아침을 안 먹고 온 아이들이 그 시간에 죽을 먹게 되면 배고픈 상태라서 많이 먹게 된다.
점심식사는 대개 11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나가는데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 아이들은 점심에 입맛이 없다. 그렇게 점심을 충분히 먹지 않은 아이들은 3시에 먹는 오후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오후 간식은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먹어 좋을 게 없는 음식들이다. 크림빵, 핫케이크, 잔치국수, 우동, 떡볶이, 스파게티, 튀김, 떡 등.
간식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이이른 저녁을 먹는다면 밥상 앞에서 딴짓을 할 게 뻔하다. 엄마의 밥상으로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끼니를 다 챙겨 먹었어도 성장기 아이들에겐 부실한 식단이 되고 만다고, 나는 교육받았다.
15년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그땐 나도 오전에 여러 가지 죽이 번갈아 나오는 유치원에 '좋~아라' 하며 아이를 보냈다.
나는 단체급식 조리 일은 처음이다. 단체급식을 조리할 때 포기해야 할게 많다. 탱탱한 면발이나 바싹한 식감, 뜨끈한 국물은 일단 접어야 한다. 먹음직스러운 플레이팅 또한 불가능하다.
어린이집 급식은 더 제한이 많다. 큼지막하게 해야 하는 음식도 가능한 잘게 썰어야 한다. 갈비찜은 그래서 늘 고민이다. 사태로도 할 수 있지만 갈비찜이 뼈에 붙은 고기를 먹는 음식이란 걸 알려주고 싶다. 손이 한 번 더 가야 한다.
아이들은 맛을 어떻게 느낄까?점점 궁금해졌다.
애들도 맛있는 건 귀신같이 안다고들 하고, 애들은 미각이 발달되지 않아 맛을 잘 모른다고도 한다.
내 생각엔 둘 다 맞다. 아이들은 맛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관찰해 보니 의외로식감에 민감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감은 따로 있는데 이런 식이다.
바싹한 건 좋아한다.
그런데 거칠거나 딱딱한 건 싫어한다.
부드러운 걸 좋아하지만 물컹거리는 건 싫어한다.
쫄깃한 건 좋아하지만 질긴 건 싫어한다.
아삭아삭한 건 좋아하지만 서걱서걱한 건 싫어한다.
식감에 신경 쓰다 보니 조리과정이 추가될 때가 많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음식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싫어하는 음식은 거의 비슷하다.
초록색이면 일단 재낀다. 녹색 나물, 녹색채소, 샐러드, 브로콜리는 맛과 상관없이 녹색이라서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김치도 싫어한다. 그건 20대 젊은 선생님들도 그렇다.
물어보면 얼굴을 찡그리고 "매워"라고 하니 단지 매워서 안 먹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내 관찰에 의하면 아닌 듯싶다. 백김치, 매운맛이 거의 없는 물김치, 그리고 피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매콤한 참치김치찌개나 김치를 넉넉히 넣고 돼지고기와 볶아낸 두루치기는 4세 아이까지 좋아한다. 김치가 싫은 건 매워서가 아닌 것 같다.
여기엔 아이들끼리는 다 아는데 어른들만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게 나의 추론이다.
생으로 먹는 채소들의 선호도에도 의문은 남는다.
선호도 순으로 오이> 당근> 파프리카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색깔도 예쁘고 단맛도 있는 파프리카나 당근보다 오이를 그나마 더 선호하는 이유를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초록색의 음식을 싫어한다면 이 날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 원은 수요일은 국 없이 볶음밥이나 덮밥, 비빔밥 등으로 나오는데 어느 날은 (시금치) 카레라이스였다.
나는 인도식 시금치 커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시금치의 녹색에 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까 봐 고민이 되었다(괄호는 선택사항이라 원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전에 마크니(인도식 닭고기 카레)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게 기억이 나서 모험을 걸기로 했다. 카레는 어떤 식으로 하든 자신 있는 음식이지만 시금치를 넣는 건 처음이라 하는 내내 난 진지했다.
시금치는 갈아서 마지막에 넣고 끓일 생각이었다.
혹시 아이들이 잘 안 먹으면 선생님들이라도 많이 먹으라고 또띠아를 반죽해 난처럼 구워냈다.
평소처럼 만들어 놓은 황금색 카레에 시금치즙을 넣자 탁한 녹색으로 변했다. 맛이고 뭐고 처음 접할 이 녹색 카레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생각하며 바트에 담아 내주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아이들이 맛있다고 너 나할 거 없이 더 달다고 해서 냄비를 박박 긁어 퍼주고도 모자랐다.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맛에 대해 표현하는 걸 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에 볶음밥을 할 때 버터를 넣은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볶음밥에서 아이스크림 맛이 난다고 하자 다들 맞장구를 쳤다고한다. 5세 반 희찬이는 로제 스파게티에서 피자맛이 난다고도 했다.
안 매운 육개장을 고추기름으로 칼칼한 맛을 내고서는 밥을 먹고 있는 7세 아이들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