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이가 쓰러진 날

by 시현

보통의 아침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고, 내 발 밑에는 몽이가 자고 있었다. 날이 밝아지자 지홍이와 자고 있던 뚜앙이가 방에서 나왔다. 사료를 주자 둘은 말끔히 비워냈다. 난 일기를 쓰고 청소기를 돌렸다. 지홍이는 평소 주말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여기까진 똑같았다.


이른 점심으로 난 어묵우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홍이가 매콤한 게 먹고 싶다고 했다. 결국 나가서 먹기로 하고 주섬주섬 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외출을 눈치챈 몽이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고 나를 향해 짖고, 나와 지홍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두 발로 서서 내 다리를 굵어댔다. 내 맨살을 긁는 몽이를 나는 반사적으로 밀쳤다. 몽이는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몽이에겐 늘상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몽이는 바로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몽이를 안으니 몸에 힘이 없고 뒷다리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갔었고 곧 괜찮아졌다.

"뭐 해 엄마, 요 앞 동물병부터 가보자 빨리."

지홍이가 재촉했다.

그때 내 행동이 느려진 것은 돈 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홍이의 채근에 일단 운전대를 잡았다.

세 달 전 뚜앙이가 수술했던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면서 하던 생각을 이어갔다.

진료실을 들어가면 검사부터 해보자 할 것이다. 검사를 하면 뚜앙이 새끼이니 같은 유전 질환이 한두 가지는 있을 거고, 중성화수술을 안 했으니 자궁축농증과 유방암이 의심되는 근종이 발견될 것이다.

건강해 보이기만 했던 뚜앙이도 막상 속을 열어보니 엉망이었는데 몽이는 더 할 것이다. 세 달 전 뚜앙이의 수술과 입원비가 500만원 가까이 들었다. 거기에 몽이까지...차라리 손을 쓸 수 없다고 했으면 좋겠다....




예약 없이 갔는데도 다행히 뚜앙이를 수술했던 원장 수의사가 있었다. 다른 개를 안고 있는 지홍이와 나를 보자 그녀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내가 뚜앙이 새끼라고 하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몽이의 증상과 상황을 자세히 얘기했다.

수의사는 저번처럼 본론만 명료하게 말했다.

"증상과 외진으로 봐선 뇌나 신경의 문제인 것 같아요. 뇌인 경우 MRI를 찍어 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개들의 MRI는 마취를 해야 해서..... 비용도 좀 많이 들구요."

나는 묻지 않았다.

"일단 기본 검사를 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치료를 하며 원인을 찾을 수도 있어요."

"그럼 약물치료 비용은 어느 정도 들까요?"

비용을 묻는 건 거기까진 할 수 있다는 싸인이었다.

"15만원 정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개들 약값만 매달 30만 원이 된다.

"후우..."


수의사의 말에 따라 기본검사를 맡기고 지홍이와 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

"검사비 30만원은 내가 낼게... 엄마가 점심 사아"

지홍이가 그러는 거다.

마침 근처에 중국집이 보여 들어갔다. 아침부터 짬뽕타령을 하더니만 이 걸 먹으러 여기에 왔나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배가 고프다기보다 난 긴장감 때문인지 허기가 졌다. 만두 하나가 추가된 세트메뉴를 시켰다.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며 각자 다른 이유로 한숨을 쉬었다.

.... 약값만 30만원이지 사료와 패트, 미용까지 합치면 한 달에 최소 5,60만원이 들어가게 된다.....

내 생각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지홍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다음 달부터 애들 약값 보태줄게."

놀라긴 했지만 그 말이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우리 형편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네가 말렸어도 그때 몽이를 보냈어야 했는데..."

지금에 와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말인 건 알면서도 나는 또 그 말이 나왔다.


"후우... 이직은 글렀네... 당분간 이 회사 다녀야지 뭐."

지홍이도 한숨으로 말을 시작했다.

"..... 사는 게 다들 그렇다... 매달 들어가는 돈 때문에 그만 두지 못 할 때가 많아... "

무심코 말을 하고 나니 스무 살 딸에게 하기엔 가혹하다 싶어 다시 혼자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자 지홍이가 내 레퍼토리를 대신 읊어댔다.

"나 너 그 비싼 대안학교도 보낸 사람이야~ 그치 엄마."

우린 잠시 엷게 웃었다.

그렇다. 난 월세를 살면서도 입학금에다 학비와 부수적인 비용까지 합치면 연간 2000만원 정도가 드는 비인가 대안학교를 보낸 사람이다. 애 아빠의 양육비를 받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나도 수 없다.

그 후로 계산상으로는 불가능한 일 앞에 서게 되면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언제 돈 쌓아놓고 했는 줄 아니? 어떻게든 되겠지!"




음식이 나왔다. 짬뽕 맛은 괜찮았다. 하지만 두 젓가락 먹고는 더는 들어가질 않았다.

근심은 근심을 당기는 힘이 있는지 몇 달 후에 있을 집 재계약이 생각났다. 말 나온 김에 그 얘기도 했다.

"얼마를 더 올려달라 할진 모르지만... 퇴직금도 중도인출하고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할지도 몰라..... 암튼 내년엔 빡빡해.... 그런 줄만 알고 있어"


지홍이는 스무 살이지만 지난 일 년 사이에 중요한 문제를 의논할 만큼 힘이 세졌다. 세 달 전 뚜앙이 수술할 때도 200만 원을 척 내놓긴 했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그건 하지 마... 내가 그 돈 마련해 볼게"

나는 짬뽕 한 젓가락을 입에 넣다가 대충 끊고서 지홍이를 쳐다봤다.

걔도 짬뽕을 후루루 넘기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입에 넣은 면을 몇 번 씹고는 다시 후루루 소리를 내며 면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리 듯 말했다.

"퇴직금 그것마저 없으면 엄마가 일하면서 너무 힘 빠지잖아"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나 싶으면서도 나의 찌질함에서 딸의 대견함을 마주하게 되니 입에서 욕이 새 나왔다.

"시발... 사는 게..."


그때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우린 바로 올라가 수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검사결과 몽이는 의외로 건강하다고 수의사는 차트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뚜앙이처럼 담낭수술만 하면 다른 건 괜찮아요. 그때 중성화 수술과 치석제거를 하면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예요."

결론적으로 수술 입원비용 200만원 정도에 매달 경련완화제 약값 15만원으로 압축되었다. 이 조차 큰 비용이지만 걱정이 반으로 줄자 그 자리에 안도와 자신감이생겨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몽이의 약봉지를 보고 지홍이와 나는 웃었다.

"드디어 몽이도 소원성취를 하네".

뚜앙이가 매일 약 먹는 걸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