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집으로

1. 참외

by 고미젤리

명주는 멀리 재래시장에 들러 참외 한 다발을 샀다. 참외가 4개 오천 원, 10개 만 원이라는 말에 당연히 만 원짜리를 골랐지만, 까만 비닐봉지를 건네받고는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묵직한 무게에 어깨도 어깨지만, 팽팽해진 까만 비닐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파고드는 듯했다.

‘이제 저기서 버스만 타면 되니까.’

명주는 혼잣말을 중얼대며 따가운 햇살 아래 발걸음을 서둘렀다. 정류장은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로 북적댔고, 버스 도착 시간은 십 분이나 남았다. 그늘막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붙이고 서 있자니 뒷목으로 땀이 주르르 흘렀다. 명주는 참외 봉투라도 내려놓고 싶었지만 어디 둘 데도 마땅치 않았다.


‘그냥 4개만 살걸, 이놈의 욕심.’


명주는 빨개진 손가락 마디와 칼처럼 팽팽해진 봉지를 내려다보며 투덜댔다.


몇 대의 버스가 오고 가고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명주는 좁은 정류장 한가운데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다행히 버스 안은 시원했다. 마침 맨 앞쪽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명주는 얼른 참외부터 올려놨다. 요즘 들어 무릎도 시리고 발바닥도 아파서 이렇게 높이 있는 자리는 웬만하면 앉고 싶지 않지만, 버스 안에 자리라곤 여기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아, 날 살려라.’ 끙끙대며 자리에 올랐다. 그렇게 겨우 안착하는가 싶었던 그때, 자리에 올려놓은 비닐이 빼꼼 열리더니 참외가 ‘떼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미처 떨어지는 참외 하나를 잡을 새도 없이, 이내 다른 참외들도 연달아 봉투 밖으로 밀려 나왔다. 명주는 엉덩이와 다리로 떨어지려는 참외들을 막아섰지만 날렵하고 잽싼 놈 두어 개가 또르르 뒤쪽으로 굴렀다.


“할머니! 조심하셔야죠.”

버스 운전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네네. 미안해요. 거기 학생, 그 참외 좀 집어 줘.”

명주는 남은 참외를 봉투 안에 잡아매며 뒤쪽에 서 있는 남학생에게 소리쳤다. 다행히 버스 뒤쪽까지 굴러 들어간 걸 낚아챈 사람들이 명주에게 건너 건너 참외를 전달해 주었다. 그녀의 뒷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이미 깨져 속이 허옇게 드러난 참외를 주며 “이건 못 먹겠네.”라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씨를 드러낸 참외에서 단물이 흘러내리고, 그걸 받아 드는 명주의 손이 끈적해졌다. 아직 식지 않은 바깥의 더위에 얼굴이 벌게진 명주는 ‘이놈의 참외 다 집어던져 버릴까.’하는 모난 생각을 누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 명주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지금 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