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생각해 보니 억울하다.
파킨슨병이 심각해진 시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참 딱하다 싶지만, 30년을 쌓아 온 미움의 세월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사람이 저리 될 걸 모르고 그렇게 모진 말을 쏟아 냈던가 싶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하지만 어머니는 반성하지 않는데, 왜 시어머니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단속하고 되돌아봐야 하나?
어머니 스스로 뱉어냈던 말들을 꺼내면, 왜 그런 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냐고 물을까?
나를 향했던 말도 안 되는 언행을 기록하지 말라고, 그냥 잊으라고 할까?
안 보고 안 듣고 살면 좋겠지만, 어머니는 수시로 남편을 부르고 내 딸까지 부르며 이런저런 일들을 지시한다.
나에게 직접 요청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시어머니의 일말의 양심인지 아니면 그동안 내 투쟁의 성과인지, 어머니는 절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답하겠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 아니냐고 묻겠지만, 결국 그 ‘명령’을 수행하는 건 ‘나’라는 게 문제다. 까다로운 반찬을 고민하고, 냄새나는 빨래를 하고,일어나지 못하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건 나다. 단지 나는 투명인간이다. 보이지 않던 내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면 시어머니의 백 마디 잔소리가 되돌아온다. 몸은 말을 안 듣지만 입은 살아있다.
며칠 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딸이 좀 도와달라고 했다. 화장실에 넘어져 있는 할머니를 혼자 힘으로 옮길 수 없다고 했다.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침대로 옮겼더니, 다음날 내가 어깨를 긁어 상처를 냈다고 했단다. 매일 집에 방문하시는 요양보호사님이 신경쓰지 말라면서도, 그래도 알고 계셔야할 것 같다고 조용히 전해주셨다.
헛헛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게 그냥 웃고 넘길 일인가. 무언가 하려 해도,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도 나는 ‘노인학대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리고 또 억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