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넘게 배운 기타반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주민센터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모든 강좌가 새롭게 열리면서 통기타 초보반으로 시작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끝까지 하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새로 합류한 분들은 모두 연세 지긋하시고, 선생님이 골라 오시는 노래도 그분들 따라 너무 뽕짝으로 흐르는 것도 불만이었다.
마침 더운 여름도 되었고, 무거운 기타를 메고 걷는 것도 힘들다 싶어 선생님께 잠시 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 선생님의 반응에 놀라며, 내가 뭐 그리 호응 좋은 회원도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아쉬운 마음을 눌렀다.
어쨌든 기대했던 것보다 쉽게 통기타반을 그만두고, 동네에 있는 주말 기타반에 등록했다. 첫날부터 살펴보니 내가 제일 연장자다. 심지어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도 두 명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2-30대의 젊은 친구들이었으며 선생님조차 20대 팔팔한 청년이었다.
이렇게 어린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배운 적이 있었던가?
나도 마음만은 어리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못 올 자리에 온 듯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린 회원들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 않고, 이 정도면 나도 해 볼만하겠다 싶기도 했다.
어린 선생님이 기타를 배운 적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엮어 문화센터에서 3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배운 곡을 쳐보라고 말씀하셨다. 악보를 뒤적여보니 ‘안동역’이 나왔다. 첫 연주부터 이런 ‘가요무대’ 곡을 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도 없어 일단 ‘둥둥둥’ 연주해 보았다.
한 달 정도 안 쳐서 그런 건지, 내 기타 소리가 대단히 거슬렸다. 이전 기타반에서는 서로 경쟁하듯 큰 소리로 ‘뚱뚱뚱’ 두드렸는데 이 반은 너무나 조용했다. 급기야 선생님이 좀 조용히 치라고 하셨다. 어이가 없어진 내가 ‘기타를 어떻게 조용히 치나요?’ 되물었다. 그러자 힘을 빼고 살살 치라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00 씨는 기본기가 많이 모자라시네요.’라고 직언을 날렸다.
일단, 새카맣게 어린 선생님이 ‘00 씨’라고 부르니 나도 모르게 눈썹이 치켜 떠졌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해 보면 예전 기타 선생님은 ‘여사님’이라 불렀는데, 그 호칭보다는 00 씨가 낫겠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기’ 부분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게 좀 화가 났다. 3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한 건지. 이래서 한 선생님한테 계속 배우는 것보다 여기저기 다녀 보는 게 좋다고 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구겨진 자존심을 덮고, 선생님이 주신 곡을 아주 ‘조용히’ 연습하다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새로운 기타반은 어떠냐고 물었다. 뭐 젊은 사람들도 많고 선생님도 조용조용 잘 가르치는 것 같긴 한데, 나보고 기본기가 없다고 해서 좀 열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뽕짝 분위기는 아니라 다행이라고도 덧붙였다.
남편이 ‘그래서 오늘 뭘 배웠는데?’라고 묻더니, 나의 대답에 ‘여기나 거기나’ 라며 비웃었다.
오늘 나는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를 조용히 열심히 두들기고 왔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