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베트남 속에서 한국이 느껴진 거야
14일의 길고도 짧은 격리 생활을 한 후, 4월 3일 토요일이 되어서야 하노이의 땅을 제대로 밟을 수 있었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밖에 나가게 되면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크게 감흥이 없었다. 지나가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베트남이란 사실을 인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너무나도 이 곳은 도시였다. 내가 느낀 하노이는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처럼 느껴진다. 경기도 어디쯤으로 보이는 곳도 있고 충청도 어디쯤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태어나 처음 온 나라에서 자꾸만 한국의 향기가 느껴진다.
집 계약을 하기 전에 임시로 머물 집을 미리 예약해두었고, 격리 후 나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집이 너무 좋아서 놀랐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할 뿐만 아니라, 고급 아파트에 속하는 곳이라 그런지 아주 쾌적했다. 한국 집보다 별로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와장창 깨졌다. 이곳에 계속 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창가에 서서 바라본 바깥의 모습은 서울의 중심가에서는 조금 벗어난, 큰길과 강이 보이는 강동구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는 또 그렇게 나의 나라를 떠올렸다.
격리 끝나고 나오면서 느끼지 못한 셀렘을 집에 도착해서 느끼게 될 줄이야.. 베트남에서의 행보는 이래저래 자꾸만 내 예상과 벗어나는 일이 생긴다.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그런 일이 잦을 것 같다는 두렵고 정확한 예감이 든다.
격리 해제일은 나의 가장 친애하는 J의 결혼식이기도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마 우리가 알게 된 10여 년 전부터 이 결혼식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가 참된 마음으로 아주 진실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의 베트남행으로 인해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올해 들어 가장 아쉬운 일이었고, 아마 이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쭉 내 마음에 아쉬움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결혼식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사진 구걸(?)을 했고 다행히도 사려 깊은 마음을 베풀어준 W의 영상통화 더군에 그녀의 결혼식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그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손바닥이 아리도록 박수를 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하를 했다. 그 순간만큼 나는 한국이었고 그녀의 결혼식장에 있었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내내 작은 휴대폰을 바라봤다. 괜히 마음이 찡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랜선으로 친구들을 만난 적은 있었지만, 결혼식을 참석한 건 처음이다. 기술의 발전에 매우 감사했지만, 또 이렇게 참석하고 싶지는 않다. 부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전에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내가 돌아온 후에 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정말.
결혼식을 보고 나니 배가 고팠다. 짐 정리는 잠시 미뤄두고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곳곳에 보이는 야자나무를 보니 제주도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곧 동남아다운 습한 날씨에 이곳이 베트남임을 실감했다.
격리 내내 뜨끈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던 나는 첫 식사로 한식을 선택했다. 나의 지인들은 베트남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칼하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간절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한식당이라 그런지 손님은 대부분 한국인 뿐이었고, 수저와 젓가락에는 한글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물은 보리차가 나왔다. 하이트 맥주가 새겨진 물통 안에 담긴 익숙한 누런색 물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이곳이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자꾸만 웃음이 나게 했다.
된장찌개를 기다리며 준비된 밑반찬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보통 밑반찬이 맛있으면 메인 음식도 맛있는 경우가 많기에 기대감이 조금 부풀었다. 이내 곧 된장찌개는 나왔고 타국에서 만난 귀한 한국 음식에 대한 감격스러운 다음으로 한 숟가락 떴다. 조금 달큼한 느낌이 있었지만 젓가락과 수저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었다. 타국에서의 첫 식사 치고 성공적인 식사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격이 조금 아쉬웠다. 이 곳은 분명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베트남인데 한식당은 베트남 물가가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음식의 가격은 한국과 같았다. 밥을 먹으러 오는 길 내내 이 곳은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지만 밥을 먹으러 들어온 후 그 사실을 까맣게 망각했다. 베트남의 한식당은 베트남의 일부가 아닌 한국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