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서울, 안녕 하노이?

서울을 떠나요, 안녕 그리울 거야.

by 이츠심
여기는 텅 빈 인천공항입니다.

이 시국에 인천공항이라니요?

3월을 맞이한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고, 캐리어 3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캐리어 3개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인천공항이다. 코 시국에 뜬금없이 나는 인천공항에 왔다.


늘 붐볐던 인천공항은 텅 비어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지나치게 공허한 공항을 맞이하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한적함 덕분에 모든 일 처리가 빠르게 진행된 점은 좋았으나,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공항의 설렘은 느낄 수 없었다. 재난 영화 속의 한 장면과 같은 공항의 모습은 코로나 여파를 실감하게 했다.


내가 인천공항에 온 목적은 베트남 하노이에 가기 위해서다. 나는 태어나서 베트남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베트남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나는 하노이에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절대 해외에서 살 일이 없을 거라고 늘 확신에 차서 말했던 내가 하노이 살이를 선택했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나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부럽다, 잘됐다! 글쎄..?

하노이에 가기로 결정을 내린 후,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다들 부러워했다. 그리고 잘 된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시원하게 내린 결정이었지만, 심란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가기 며칠 전부터 문득 그리고 갑자기 마음이 울렁울렁하여 눈물을 쏟기도 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잠시 후회의 순간도 찾아왔다. 내가 결정한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일까 고민했다. 이제야 말하자면 사실 셀 수도 없이 밤낮을 고민했고, 내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많은 되새김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이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의 내 인생에 미칠 영향이 예측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떠나는 나로 인해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이 자꾸 내 발목을 잡았다. 내 마음 한편에서 자구만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그 따스함을 벗어나기 싫었다.




잘 부탁해 부디 조심히 데려다줘

저는 비행기가 무서워요.

아주 축축하고 적적한 마음을 가진 채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소공포증과 더불어 잠시 공황장애를 앓았던 나는 초긴장 상태였다. 다행히도 내 좌석은 창가 쪽이 아닌 중앙 자리였다. 제주도에 가는 1시간 정도야 참을 만 하지만, 4시간이 넘는 시간은 처음이라 참 막막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안정제를 하나 먹었고 집중할 것을 찾았다. 어떤 영화를 볼까 하다가 인턴이라는 영화를 틀었다. 평소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를 즐겨 찾지 않지만, 이 순간만큼 나는 4시간 동안 마음이 훈훈해질 필요가 있었다. 난 그렇게 혼자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영화 인턴을 보던 중간에 기내식이 나왔다. 끼니를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프던 찰나였다. 고기 요리와 생선 요리 중 나는 당연히 생선 요리를 선택했다. 가능했다면 와인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현재 주류는 금지되어 사이다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나는 참 단순했다. 안정제의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허전했던 무언가를 밥이 채워줬다. 그 이후 인턴을 쭈욱 감상했고, 시간이 남아서 작은 아씨들도 봤다. 작은 아씨들에 집중하다 보니 하노이에 도착했고 결말을 보지 못한 채 내리게 되었다. 아주 잠시 동안 결말이 궁금해서 내리기 싫었다. 분명 나는 이 비행기에서 빨리 내리고 싶었는데 영화의 결말이 궁금해서 내리기 싫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웃겼다.




문제의 QR코드

순탄치 않은 첫걸음

베트남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베트남에 오긴 왔구나 느끼는 순간 아차 싶었다. QR코드를 내놓으란다. 응? 무슨 QR코드? 그게 뭔데? 하고 잘 생각해보니 입국 전에 휴대폰으로 검역 신고서를 작성하라고 했는데 적적한 마음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작성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발을 내딛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진심 뭣 됐다 싶었다. 와이파이 연결해서 부랴부랴 작성하려는데 연결이 안 됐다. 마음이 급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 한 여성분이 나에게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덥석 그녀의 손길에 응했다. 일단 감사하다는 말부터 연신 내뱉었다. 그러나 내 휴대폰은 여전히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고 그녀가 흔쾌히 휴대폰을 빌려주어 나는 그녀의 휴대폰으로 QR코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한 고비를 넘겼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으로 베트남 사람이었다. 한국어를 너무 유창하게 해서 현지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베트남 사람일 줄이야.. 몇 마디를 나누고 그녀와 나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나는 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냥 형식상 하는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의 인사였다. 내 인생 통틀어 고마운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할 정도면 말 다했다.


그렇게 베트남에 온 지 1시간 만에 친구를 사귀었고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3시간 동안 이대로 가만히 기다리기

오랜 기다림 후에 나를 반기는 소독약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후 기다림의 연속이 반복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기다린 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버스에 타라는 의미로 추측되는 베트남 말과 더불어 손짓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밤은 지나 새벽이라 불리는 시간이었다.


버스 앞에서 우주복 같이 생긴 올인원 방호복을 나눠주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입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내 곧 버스는 출발했고, 바스락거리는 불편한 옷을 입은 채로 하노이의 새벽을 감상했다. 하노이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높은 건물이 많았고 도시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원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바깥 구경을 하다 보니 숙소에 도착했고,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독약이었다. 거부 혹은 저항의 의사를 밝힐 틈도 없이 나에게 락스 냄새 한가득 나는 소독약을 마구 뿌린다. 비로소 이제야 방호복을 벗을 수 있었다. 찝찝한 기분과 더불어 방호복을 벗었음에도 나를 따라다니는 락스 냄새 때문에 조금의 언짢음이 더해졌다. 누군가 이런 표현을 했었다. 소독약을 맞는 기분은 내가 동물? 가축이 된 그런 기분이라고. 그 말에 아주 큰 공감을 했다.




하노이에서 처음 먹은 음식

면성애자에게 최고의 환영인사

방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것은 컵라면이었다. 3시간의 무한 기다림에 지쳐 배가 고팠던 나에게 라면은 너무나도 반가운 환영인사였다. 또한 내가 면성애자이기에 라면을 더욱 격하게 반길 수밖에 없었다. 비록 한국에서 먹었던 것에 비해 밍밍한 맛이었지만(수출된 제품이 조금 더 심심한 것 같다) 이것저것 따지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지치고 힘든, 그리고 기나긴 하루였으니 말이다.


2021년 3월 20일 토요일,

나의 하노이 생활은 컵라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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