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시선 | 증오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문신, 감정의 고착

by 쉼결
2. 증오.jpg

심리학에서는 증오(hatred)를 단순히 강한 분노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장기적 상처가 정서적으로 굳어진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기제로 기능하게 됩니다.


특히 반복된 무시, 배신, 조롱처럼 정체성과 존엄을 위협받은 경험은

감정의 흔적이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지게 만들고

그 문신은 지워지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오래될수록 감정은 더 단단해지고,

'용서'나 '이해' 같은 말들은 오히려 상처에 소금을 뿌리게 됩니다.


증오의 가장 특징적인 구조는 특정 대상에 고착된 감정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상처받았던 누군가의 말투, 표정, 기색이

눈을 감아도 보일 만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정서 기억(emotional memory)'이 강하게 작동한 결과로,

감정을 유발한 자극이 감정 반응과 고리처럼 연결된 상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을 마주하거나

유사한 상황에 노출되면 증오라는 감정이 자동반사처럼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처럼 증오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회피도 해소도 되지 못한 감정이 정체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내가 당한 일을 쉽게 넘길 수 없다'는 마음,

'다시는 그런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자기보존의 신호.

그 방어는 마음속에서 점점 더 딱딱한 형태로 굳어버리게 되고,

그리고 이 굳음은 주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증오가 자리 잡은 사람의 마음은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정원처럼 닫혀버리기도 합니다.

다가오려는 이도 찔리고,

마음을 주고 싶어도 어느새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는 트라우마 반응의 일종이기도 하며,

심리학에서는 '경계 강화(defensive boundary intensification)'라고 부르며,

일종의 정서적 갑옷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하나 증오의 특징은 감정의 지속성과 불완전한 종결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여겼던 순간에도

타다 남은 재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감정이 다시 피어오르곤 하는 것이 바로 증오입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감정이 아직 '안전하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중요한 건, 증오를 무조건 사라져야 할 감정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 감정이 나에게 이렇게 오래 남았는가?"를 묻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질문은 그 감정이 말하고 싶던 진짜 욕구,

존중, 이해, 회복, 존재의 인정에 다가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증오는 당신이 상처받았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감정적 증거입니다.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것이 '나를 지키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나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때가 된 것뿐입니다.


쉼의 결을 잇다 © 쉼결. All rights reserved.



이전 17화감정 에세이 | 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