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답답할 만큼 느리고, 놀라울 만큼 빠른

by 쉼결
도마배미 슬로우모션.png


마뱀이는 늘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 작은 몸이 세상을 옮겨 다니는 속도는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보인다.


가지 위를 걸을 때면,

앞발 하나를 천천히 들어 올려

붙잡을 곳을 신중하게 고른다.

그리고 발바닥의 패드를 살짝 붙이며

조심스럽게 무게를 옮긴다.


그 과정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처럼 보였다.

빠름이 미덕인 세상 속에서,

마뱀이는 오직 자신만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가끔은 마치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앞다리 하나를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에 멈춘 듯 오래 머물다,

한참 뒤에야 가지를 붙잡는다.

그 한 동작이 너무 느려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먹이를 노릴 때도 마찬가지다.

사냥 전의 자세는 언제나 슬로우모션이다.

몸을 낮추고, 다리를 천천히 굽히며,

눈빛은 단단히 고정된다.

숨조차 멎을 만큼 정적이 흐른 뒤,

마지막 순간에만 번개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케이지 문만 열렸다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릿느릿 걷던 녀석이

순식간에 우다다 모드로 돌변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틈을 향해 돌진하고,

작은 발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바깥세상을 향해 튀어나온다.


천천히 걷던 도마뱀이 맞나 싶을 만큼,

그 속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마뱀이는 분명 작은 도마뱀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삶의 또 다른 리듬을 배운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때로는 한 발 한 발, 숨을 고르며,

슬로우모션처럼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우다다 하며 세상 밖으로 달려 나가도 괜찮다는 것을.


오늘도 작은 사육장 안에서,

마뱀이는 고요와 번개를 함께 품은 채

자신만의 속도로 하루를 이어간다.

나는 그 작은 리듬 속에서

삶의 또 다른 미학을 배운다.

멈춤의 가치와 움직임의 의미를 말이다.

이전 23화1g이 주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