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시절일기_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 김연수

by 심지

한 시절이 저물어갈 때서야 그 시절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세수하기보다 귀찮지만 숙제라는 이유로 꼬박꼬박 써 내려간 일기 덕에, 내 온전한 기억보다 추억할 수 있게 된 것들이 많아졌다. 불쑥 자라서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는다. 매일의 일상이 무언가 공허하고 헛헛하다고 느낀 최근에서야 일기를 쓰겠다고 펜을 들었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시절일기>를 읽다가 어렴풋이 그 답을 찾았다. 작가 김연수는 일기를 두고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말한다. 매일 쓰는 행위와 과정 그 자체가 일기다. 학창시절 리포트로 회사에선 보고서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며 자라는 동안 자기검열을 거듭하면서, 생각도 제자리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그냥 '쓰는 데' 집중하다보니 일기를 쓰기도, 글을 쓰는 것에도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자신의 밖으로는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세계의 끝을 볼 수 없다는 말은, 내게 바깥을 향해서는 아무리 외쳐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니 대답을 들으려면 세존의 말씀대로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리라. 그 일이 내게는 글쓰기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혹은 이 세계에 일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뭔가를 끄적이는 일이었다. p. 7
소설가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새로 시도할 때마다 실해하는 것, 그게 바로 데뷔작 이후, 그을린 이후, 모든 소설가의 운명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지난 십 년간, 저자는 생각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바깥에서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그 답은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개인과 문학, 예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답을 찾는 지난 10년간의 여정이 <시절일기>에 녹아있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이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저자가 소설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일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도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누구를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일기를 쓴다. 계속해서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럼에도 사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게 어렵기에, 타인의 슬픔은 누구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충분한 애도도 불가능하다. 그는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이라고 말한다. 애도는 완결 지을 수 없다.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시인은 시를 쓴다고 말한다. 그가 일꾼처럼 때론 농부처럼 계속 다시 쓰고 읽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이유이자, 지면의 많은 부분을 세월호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이 때문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김연수는 계속해서 소설가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의 말대로 ‘언제나 늦되기 때문이 유죄’인 마음을 안고서 말이다.


사전에서는 일기를 “날마다 그날그날 겪는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라면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말하겠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써야 일기가 된다.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p.17


읽는 사람이 없을 것. 마음대로 쓸 것. 이 두 가지 지침 덕분에 일기 쓰기는 창의적 글쓰기에 가까워진다.... 일기의 목적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앞에서 말했는데, 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자기이해이다. p. 18


일기를 상품화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광고카피는 ’Second Life'가 될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말한 자기이해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번 더 살 수 있다. p.19


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 p. 44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p.49


바로 여기에 배우는 일의 더 중요한 효용이 있다. 그 단계는 자기 관찰이다.

자신은 옳게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애쓰는 일을 알렉산더 테크닉에서는 ‘함 do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되어 자신에게 익숙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뜻한다. ...이에 대한 해법은 자신은 옳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 알렉산더 테크닉의 용어로는 ‘undoing'이다. 이건 ’함. ... 얼마나 나이가 들었던, 육체적으로 뭔가를 새로 배울 때는 반드시 ‘undoing'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건 지금까지 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잘못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만은 옳게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을 일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걸 인정해야만 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목표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덕분에 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남을 탓하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에 몰두하며 매일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p. 157


연극을 포함해서 모든 예술이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의 표면을 찢어서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일 테니까.... 예술가들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기만 해도 만족하리라. p. 198


취향이 부족한 사람은 무언가를 멀리하지 못한다." p.243


우리의 삶은 구불구불 흘러내려가는 강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곧잘 지체되며, 때로는 거꾸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 들지만, 그때가 바로 흐름에 몸을 맡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쉼 없이 흘러가는 역사에 온전하게 몸을 내맡길 때, 우리는 근대 이후의 인간, 동시대인이 됩니다. 그때 저는 온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깊은 밤의 한가운데에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내맡길 때, 우리의 절망은 서로에게 읽힐 수 있습니다. 문학의 위로는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p.301


해가 수평선에 가까워지면서 둘의 그림자는 점점 더 길어졌다.

“언제나 마음이 유죄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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