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목적은 그저 달리는 것"

[북] 마녀 체력 -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 이영미

by 심지

2018년 4월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나간 10km 마라톤. 대회 한두 달 전부터 대회 참가 자격을 위한 러닝 미션이 주어졌다. 거의 죽어있던 인스타에 대회 주최 측의 미션을 착실하게 수행해 올리기 시작했다.


"3km를 20분 내에 달리고 인증샷을 올리시오."

"트랙 모양이 동그란 곳을 찾아 달리고 인증샷을 올리시오."

일주일에 세 번씩 주어지는 미션을 구시렁거리며 하는 동안 점점 좀 더 달리기 좋은 곳은 어딘지, 기록은 몇 분대로 맞출지 헤아리게 됐다. 그렇게 4월은 미세먼지와 달리기로 보내고, 결국 미션 성공으로 대회 참가 자격을 받았다. 'ㅎ. 역시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군'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 동호회. 백야의 나라에서 새벽 달리기. 마라톤 대회...열혈 러너는 절대 아니지만 달리기가 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라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즈음 한 PD님께 이 책을 건네받았다. <마녀체력>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제목의 이 책은 초보 러너로 달리면서 성장하는 편집자의 이야기이다.


이미 편집자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무렵, 40대에 마라톤과 철인3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더 왕성한 에너지로 인생의 후반전을 멋지게 이끌어 나가고 있는 편집자의 이야기이다.

때로 부딪히고 실패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간적이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그렇다. 자기만의 페이스로 멋지게 인생을 달려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책.



"삶의 차이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P.24


달이 위영청 뜬 밤, 혼자 동네에 있는 넓은 공터에 나가 천천히 한 바퀴를 걸었다. 아파트 창문마다 환하게 불이 켜졌고, 공터에는 딱 두 사람밖에 없었다. 달걀을 쥔 것처럼 두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슬로우 모션처럼 서서히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칙칙폭폭 호흡을 하면서 흙을 박차 보았다. 그렇게 마흔 살 먹은 아줌마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바퀴 정도는 충분히 뛸 만했다.

하지만 그날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한 바퀴만 돌고는 그만두었다. 다음 날 두 바퀴, 그리고 그다음 날 세 바퀴에 도전해 볼 작정이었다. 욕심을 부리면 무리를 해서 당장 몇 바퀴 더 뛸 수 있겠지만, 금방 몸에 무리가 온다. 저질 체력들은 그래서 운동이 '나랑 안 맞는구나' 쉽게 포기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p.51


<철학자가 달린다>를 쓴 중년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말이 맞았다. "달리는 이유는 십인십색일 수 있지만, 가장 순수하고 최고인 달리기의 목적인(目的因)은 그저 달리는 것"이 되어버렸다. p.67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한 <두려움,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이라는 책에선, 왜 인간의 뇌가 그런 희망을 품는 것이 중요한지 강조한다.

"로저 배니스터는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으로 간 사람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위업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그 사람들은 다 실패했다. 그런데 한 번 성공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그것을 똑같이 해냈다. 왜일까? 뇌는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는 대략의 지도를 그린다. 배니스터, 암스트롱, 힐러리는 상식을 거슬러 희망을 품어야 했다. 그들의 뇌에, 목표에 이르는 지도를 그리라고 요구해야 했다. 그들의 뒤를 따른 사람들은 앞서 달성된 위업을 지도로 이용했다." P.77


클릿 신발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처음부터 파도치는 깊은 바다로 나가라고 하면 다들 거을 집어먹는다. 하지만 안전한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물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앞으로 진출하면 한결 쉽다.

이번에도 나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자전거를 갖고 내려갔다. 한쪽 손을 핸들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며 연습했다. 코를 닦거나, 물병을 빼서 마신 뒤에 도로 넣는 것을 무수히 반복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만,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뭔가 잘 못해서 겁이 나고 두려운 사람은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만이 벗어나는 길이다.

이것은 비단 운동뿐 아니라 일이나 일상생활, 다른 취미 활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거나 두려워서 아예 연습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거다. P.98


"연습은 어제보다 잘하려고 매일 단련하는 종류의 끈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특정 영역에 관심을 느끼고 발전시킨 다음에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기술을 연습하고 숙달시켜야 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몇 주, 몇 개월, 몇 년 동안 자신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반복 연습해야 한다. 그릿은 현재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관심이 무엇이든, 이미 얼마나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든 상관없이 그릿의 전형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P.100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묵묵히 오르다 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 가지 일에 성심을 다해 몰입할 때 도를 깨우치듯이, 자전거 업힐을 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 인생의 진리가 있다.

첫째, 목표를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잡으면 포기하기 쉽다. 자전거로 올라야 하는 고개는 대부분 완만한 경사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저 멀리 위를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게 높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길로만 보인다. 아예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두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그럴 때 나는 일단 이번 굽이만 넘어 보자고 마음먹는다. 멀리 있는 정상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한 고비만 올라간 뒤에 다시 생각해 볼 요량으로 페달을 돌린다. 한 단계 한 단계 기어를 내리며 가다 보면, 속도는 느려도 조금씩 자전거는 올라간다.

정 힘들 땐 안장에서 내려와 남은 거리가 아닌 올라온 거리를 가늠해본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나 싶을 만큼 대견하다. 이 정도 왔는데 포기하는 건 아깝다. 조금씩, 한 굽이씩 잘라 정복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닿겠지.

일도 마찬가지다.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미리 걱정해 봤자 불안만 가중된다. 그럴 때에는 목표와 시간을 잘게 나눠서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한다. 그렇게 한 단계씩 해치워 나가면 어느새 훌쩍 목표에 다가가 있다. P.113~114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마음속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제 그 CCTV 스위치를 꺼 버려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는다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P.122


유복한 환경에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철학자 알랭 드 보통. 살면서 실패 따위는 안 해봤을 것 같지만, '인생학교'의 모든 수업을 관통하며 그가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 한계를 인정하기. 그리고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실패 후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실패 앞에서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런 실패 때문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서 경험해보는 실패는 일종의 가상현실과도 같다. 스트레스 지수는 비슷하지만, 매우 안전하면서도 얼마든지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실과 달리 큰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는다. 자주 두드려 맞고도 내일은 더 잘해 보겠다는 마음의 맷집이 강해진다. P.124~125


저질 체력에다 늦게 운동을 시작했다는 핸디캡이 내게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 처음부터 순식간에 잘할 거라고 마음먹었다면 제풀에 지쳐 시들해졌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빨리빨리 잘 해내고 싶지도 않다. 나의 희망 사항은 그저 늘 현재형으로, 어제 한 것만큼 오늘도 빠뜨리지 말고, 그저 조금씩 단련하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는 어쩌고 저쩌고" 떠벌이고 싶지 않다. "지금은 예전처럼 못하지만 블라블라" 자조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환경과 처지에 맞게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몸의 근육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P.130


어쩌다 유리 천장을 뚫고 위로 올라갈 기회가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들처럼 기를 쓰고 그 자리를 꿰어 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학생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는 동안, 남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나란히 서서 자주 겨뤄 봤다면 어땠을까. 일상생활에서 남자들을 이겨 보는 사소한 경험이 많았더라면, 내 삶의 선택지가 훨씬 다채롭고 넓어지지 않았을까. P. 135


반백 년을 살아 본 경험으로 나는 독서에다가 두 가지를 더 덧붙이곤 한다. 독서, 그리고 운동과 외국어다.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 사람을 매력 있게 만드는 세 가지 이기도 하다. P. 139


그러고 보니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노력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둘째,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꾸준히, 오랫동안 해야만 효과가 나타난다. 넷째, 좋은 건 누구나 알지만 시급하지 않아서, 당장 실천하기 어렵다. P. 141


시작을 했으면, 이번엔 그것을 '핵심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뉴욕타임스 기자 찰스 두히그가 쓴 <습관의 힘>은 반복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이뤘는지 제시한다. 습관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이 책에 따르면 신호-반복행동-보상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열망과 믿음이 그 습관의 고리를 지속적으로 회전시킨다. 특히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습관'을 바꾸면? 그 밖의 것까지 덩달아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P. 142


열띤 마라톤 대회는 단순히 달리기 기록을 재는 경기가 아니었다. 브라질의 카니발이나 태국의 송끄란 같은 일종의 축제였다. 차 없는 거리를 뛰면서 현실에선 느끼지 못하는 긴장과 스릴을 즐긴다. 오롯이 내 육체를 움직여 원시 시대 수렵인의 본능적인 기쁨을 느낀다. 억누르고 자제해 왔던 숨겨진 광기를 다 함께 달리며 해소한다. 이제야 <말아톤>의 초원이가, 남편이,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이 왜 돈을 내가면서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지 알 것 같았다. P.154


세상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기를 쓰고 싶지 않다. 나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 살고 싶다.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 눈엔 '강하고 우아한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단단하고 두꺼운 허벅지, 근육이 도드라진 팔뚝, 잔 근육이 자글자글 발달한 등,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짧게 친 커트 머리, 화장 안 한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눈길이 간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뜨거운 태양 밑에서, 걷고 달리고 땀 흘리며 큰 소리로 웃는 여성이 멋져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생기와 강함 역시, 젊음처럼 세월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밥 먹는 태도 같은 사소한 버릇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행동처럼 중요한 에티켓까지, 나이 들수록 우아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상은의 노래 가사처럼 젊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현명함, 측은지심, 공감과 경청을 실천하는 품위 있는 인간으로 나이 들고 싶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얼굴과 몸매는 절대적이거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외모는 절대로 인성과 태도를 앞지르지 못한다. 젊음 하나로 모든 약점을 가리던 휘장이 하나하나 벗겨질 때, 꾸준히 연마해 온 강함과 우아함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흔 살은 흔히 생각하듯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잔혹한 시그널을 보내도 절대로 주눅 들면 안 된다. 더 나아지는 걸 주저하지 말고, 더 도전할 수 있는 걸 포기하지 말자. '아, 지금이 내 삶의 절정인가 보다' 싶은 때가 신기하게도 계속 찾아온다. 마흔 살을 훌쩍 넘었는데도, 앞으로 또 어떤 대단한 터닝포인트가 찾아올지 몹시 기대된다. P.176~177


소설가이자 마라토너인 하루키도 <먼 북소리>를 쓸 때부터 어느 나라에 가든지 꼭 달리기를 한다.

"여행지에서 그 동네의 길을 달리는 일은 즐겁다. 주변 풍경을 보며 달리기에는 시속 10킬로미터 전후가 이상적인 속도이다. 자동차는 너무 빨라서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다.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기가 있고 달릴 때의 기분도 각각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길모퉁이의 모습, 발자국 소리, 보도의 폭, 쓰레기 버리는 습관 등도 모두 다르다. 정말 재미있을 정도로 다르다." P.189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