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 Mar 06. 2022

장롱면허에도 곰팡이 대신 꽃이 피겠지

초보운전 일기 1

장롱면허에도 곰팡이 대신
 꽃이 피겠지


운전면허를 딴 이유는 운전이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스무 살쯤이 되면 성인이 된 기념으로, 성인의 인증수단처럼 부랴부랴 운전학원에 등록하는 친구들과 달리 삼십 대 초반까지도 난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직까지 나처럼 운전면허가 없던 친구들이 조금씩 학원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운전시험이 곧 어려워진다고 딸 수 있으면 지금이 적기라고들 했고, 주변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막차를 타듯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기에 나도 같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홈쇼핑 매진 임박에 조급해진 마음처럼 충동적으로 덜컥 학원 등록을 했다. 


도로주행에 세 번 떨어진 끝에 가까스로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운전대를 잡은 건 도로주행 시험을 본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가끔 신분증으로 운전면허증을 사용하다가 이마저도 주민등록증에 밀려 그대로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면허를 따는 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장롱면허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사실 운전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눈앞에 있으면 노력해서 극복해보려 그간 여러 시도들을 해왔다. 놀이공원에서 웬만한 놀이기구도 무서워 못 타는 내가 60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해보고, 물 공포증이 있어 가슴까지 올라오는 물을 무서워했던 수영장에 들어가서 여전히 어푸어푸하고는 있지만 물에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던 풀 마라톤도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면서 결국 해 낼 수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결국 자신감을 안겨주고,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걸 부정할 순 없다. 


다만 도로 위에서 자유롭게 달리는 차들을 보면 여전히 남일만 같다. 나에겐 트라우마 같은 사고의 기억이 있다. 


때는 초등학교 3-4학년쯤. 한 시간에 한 대 있을까 말까 한 시골버스를 놓칠세라 반대편 도로에 있던 나는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만 보고 부랴부랴 길을 건넜다. 아니나 다를까. 달려오던 1톤 트럭을 미쳐 보지 못했던 탓에, 몸은 트럭에 치여 그대로 붕 떠서 날아갔고 그 순간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트럭에 실려 병원에 가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타박상만 입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건 그때부터였을지 모른다. 대학시절에도 달려오는 배달 오토바이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치였는데, 내가 아무리 잘해도 언젠가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들에 도로는 두려움의 공간이었고, 운전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다시 운전을 해봐야겠다 생각한 건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부터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문제없이 거의 모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급한일이 있거나 밤늦은 시간에는 택시를 잡아타면 그만이었다. 반면에 서울을 떠나 살게 되면서 조금씩 불편함이 생겨갔다. 버스나 지하철 배차간격이 길거나 차로 가면 가까운 거리를 오래 걸려 돌아가 가야 했다. 편의시설은 대부분 걸어가 갈 정도 거리에 있어 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멀리 나가려면 미리 배차시간을 확인해야 하기도 했다. 


게다가 갑자기 회사에 운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면허가 없던 분은 면허를 따기 시작했다며 기능시험을 본 일화를 풀어냈고 다른 한 분은 육아를 위해 다시 장롱면허를 꺼내 들었다며 어느 코스를 다녀왔는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잠들어 있을 내 운전면허가 떠올랐다. 내가 여유롭게 운전을 하는 모습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충동적으로 면허를 땄을 때처럼 이번에도 운전 바람에 휩쓸려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일렁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는 걸 보면, 다른 걸 볼 때보다 부러움이 일었다. 어느 누구에겐 일상적인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나에겐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 운전. 도로 위의 모든 드라이버들이 여전히 대단하게 보이기만 한다. 


 모두 초보의 시절을 건너 이동수단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로 즐길 테지. 겁이 나고 두려웠을 초보의 시절을 어떻게 건너갔을까. 겁이 많은 나도 과연 저들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여유롭게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꿈같은 일들이다. 


혼자서 운전대를 잡고 드라이브를 가는 날을 상상해 본다. 그날이 초보 운전 일기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더 늦기 전에 한번 다시 해보자. 남들 다 하는 운전. 그까짓 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