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낮술을 합니다만..."

by 끄적


내게는 낮술에 대한 로망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낮술은 그저 할 일이 없는 사람이나 마시는 걸로 알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되돌아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인생무상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쯤(?)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먼 훗날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때가 되니 가방끈은 길어야 된다기에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가고. 건장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된다는 군대를 가고. 먹고살려면 취업을 한다기에 이곳저곳 취업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다 보니 정신없이 직장생활이 시작되더라.


인턴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꼰대들한테 잘 보이려고 눈칫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하게 되더라. 인턴에서 살아남으면 생활이 바뀔까 싶어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버텼지만 인턴 이후에도 그 생활은 이어지더라.


아프니까 청춘이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하더니만 내 인생도 별 수 없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5일을 버티다 보면 그래도 금요일이더라. 금요일 저녁에는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집으로 향했다.


부어라 마셔라 친구 놈들도 마찬가지, 사회 초년생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 인 줄만 알았다. 다들 뭐 이리 할 말은 많은지 술이 쭉쭉 들어가더라. 맥주 한잔 먹던 친구 놈도 소주 한 병은 훌쩍 마시더라.


친구와의 대화

"술좀 늘었다?"

"인생 뭐 있냐? 마셔"

"오~"

"이런 뭔발...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냐?"

"어... 아마도 D질 때까지?"

"그래? 아놔 말리지 마. 오늘 진짜."

"어 안 말려."

"아놔 진짜. 나 먹고 D질라니깐"

"어 안말려."


먹다 보면 자정을 넘기고 새벽에나 집에 들어가 일쑤. 그렇게 술이 최고였고 인생은 술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요일에는 골골대다 누워있으면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월요병이 오더라.

" 아 뭔발... 출근하기 싫다..."


이렇게 살아야 되나 인생에 회의감이 들어 사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어렵게 썼지만 용기가 없어 가슴에 품고 출퇴근을 왔다갔다하더라. 몇 년 동안...


점심시간에 회사 앞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면 가끔 우연히 옆테이블에 팀장님들이 반주로 소주를 한잔하고 계실 때가 있었다.


우연히 만난 팀장님과

"야 너 얼굴 빨개져?"

"아니요."

"한잔 먹을래?"

"네"

"캬... 좋다~ 좋은걸 지들끼리 처먹네..."(독백)

"한잔 더 먹을래?"

"네"

"캬... 이거네 이거..."(독백)


이때가 아마도 낮술의 묘미를 느꼈던 때 같다. 소주 두 잔에도 취기가 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나중에는 낮술을 꼭 먹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학창 시절 몰래 피는 담배가 꿀인 것처럼 근무시간에 술을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리도 맛있었나 보다. 애송이 같으니라고...


이제는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니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마음껏 낮술을 즐긴다. 아마도 코로나시절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낮술이 가장 좋은 건 효율성이 높다는 거(?) 소주 반 병에도 얼큰...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된 느낌이랄까(?) 술기운에 일도 더 잘 되더라는... 대충대충 잘~


저녁에 술을 마시다 보면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꼭 2차에 가서 맥주를 한잔 더해야 하고 늦게 들어가고 다음날 일어나면 힘들고 그렇더라.


낮술은 한두 시간이면 뚝딱 인 것을. 가끔 저녁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낮술이 좋더라.


"가끔 낮술을 합니다만..."


술 한잔 해요 - 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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