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게 놔두면 안 돼
‘가짜뉴스’의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Fake News’, 즉 ‘가짜뉴스’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느 순간에 등장했는지는 규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이 말이 폭발적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미국의 한 사전이 이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조작된 허위 정보를 지칭하던 ‘가짜뉴스’라는 말을 정치화한 것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이 말을 자신을 향한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싸잡아 ‘가짜뉴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너무나 손쉽게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언론의 일반적인 신뢰를 공격하는 잘못된 행태인지를 국내외 학자들이 반복적으로 지적했지만 사람들은 입에 착착 감기는 이 용어를 너무 편하게 사용한다. 심지어 언론인, 언론학자들 중에도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미 너무나 이 말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언론도 이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상은 이 용어가 왜 문제가 있는지를 별로 고민한 적이 없을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면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그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왜 사회적으로 나쁜 말인가? 먼저 이 말은 ‘뉴스’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뉴스는 본래 사실을 전하는 것인데 그 중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이 말은 그 자체로 언론을 어느 정도 폄하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짜뉴스라는 말은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에 해명이나 변명을 할 필요도 없이 오히려 보도를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가짜’이니 해명할 이유도 없다는 식의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실제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도 ‘가짜뉴스라는 말은 트럼프가 만든 프레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다음으로 이 용어가 갖는 해악은 의미의 모호함에서 나온다. 학자들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뉴스, 즉 기존의 언론 보도로 보일 수 있는 ‘형식성’을 가지면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는 ‘의도성’을 갖는 경우로 정의한다. 학자들이 ‘허위조작정보’라고 가짜뉴스라는 말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이런 엄밀한 개념 정의를 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런 의도가 없는, 단순 실수로 인한 크고 작은 오보에서부터 교묘하게 기사의 형식을 갖춘 조작된 정보는 물론 아예 뉴스 형식도 갖추지 않은 음모론이나 유언비어까지 가짜뉴스라고 부른다.
이렇게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무언가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면서도 왜 가짜라고 주장하는지 굳이 설명하지도 않는다. 앞서 밥 우드워드가 지적한 것처럼 ‘프레임’으로 활용하기에 너무나 편리한 것이다. 여러 나라의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보도를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무력화시키는 데 활용하는 것은 이 말이 그만큼 쓰기 편리하고 효용성도 좋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반인 사이에서도 전통 언론사들이 약간의 과장보도를 한 것도 가짜뉴스라고 생각하고, 약간의 선정적 제목을 붙인 것,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도하는 일종의 낚시 기사 등을 모두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가짜뉴스’라는 말이 일반인들의 언어생활 깊숙이 침투해서 정말 바로잡는 것이 불가능한가 싶을 정도가 되기는 했다. 심지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이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할 말을 간단하게 ‘그건 가짜뉴스야’라고 말하고 그걸 큼직하게 자막으로 띄운다. 그런 말의 해악을 생각해 조심하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방송을 제작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짜뉴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 데에는 누구나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통째로 공격하는 정치인들과 그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팬덤 지지자들의 영향이 크다. 언론 보도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더라도 사실인 측면도 있을 텐데,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는 통째로 부정해버리는 속 편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인지를 따지도 묻지도 않고 지지나 반대를 하는 정파적 대립이 강화된다. 누군가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악용하기 위해 지금도 걸핏하면 ‘가짜뉴스’라고 외친다.
정권만 잡으면 애용하는 ‘가짜뉴스’ 프레임
미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자신을 향한 검찰의 수사나 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온갖 음모론과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찾기 어렵다. ‘가짜뉴스’라는 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트럼프 집권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진 셈이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법적 비상사태를 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부터 살펴보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8년 10월 2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는 공동체 파괴범’이라고 말하며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유포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말한다. 마침 <한겨레>가 ‘가짜뉴스공장’을 거론하며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기획 보도를 내보낸 직후였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 1월 초부터였다. 이미 2017년 11월까지 가짜뉴스 방지를 내걸고 제출된 법안이 9건이 넘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가짜뉴스’를 언급한 적도 많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언론의 집중 보도가 이어질 당시인 2019년 9월 국경없는 기자회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언론자본·광고자본·속보경쟁·극단적 입장 대립, 증오와 혐오, 너무나 빠르게 확산되는 가짜뉴스나 허위정보가 공정한 언론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 말이던 2021년 1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본회의에 참석해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킬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는 정부와 집권당이 똘똘 뭉쳐서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을 때다.
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 대책이 강조되다 보니 관련된 부처들이 느끼는 압력도 상당했다. 법무부가 상거래 관련 법률인 상법을 개정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내놓은 것도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가짜뉴스 대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다 3년 임기를 채우지 않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언론학자 출신으로서 가짜뉴스 대책을 만들라는 요구에 순응할 수가 없었다는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2022년 대선을 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적어도 가짜뉴스 문제에 있어서는 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할 태세다. 대선 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의 언론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를 비판했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집권 이후 태도를 바꾼다.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드디어 2023년 5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서서 가짜뉴스 대책을 발표하더니 산하 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도 전신인 자유한국당도 2018년 가짜뉴스신고센터를 만든 적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신고센터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이런 행태는 사실 권력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8년 가짜뉴스공장을 집중 보도하며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에 힘을 실었던 한겨레는 윤석열 대통령이 가짜뉴스 대책을 언급하자 “대통령의 ‘가짜뉴스’ 장사”라며 트럼프와 비교하는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에는 아서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이 2019년 9월 23일자 칼럼이 인용돼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기자와 저널리즘에 대한 전세계적인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현역 대통령의 ‘가짜뉴스’ 주장이 이러한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 이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인데 당시 국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부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칼럼은 설즈버거가 “전세계 50여개국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모방해 ‘가짜뉴스’라는 말로 자국 언론을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도 전하면서 “현재 상황이라면 한국도 명단에 추가되었을 성싶다”고 썼다. 현재가 그렇다면 당시 문재인 정부는 어땠을까?
문재인 정부 당시 가짜뉴스 문제를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등이 앞장서 지적했다면 윤석열 정부에서 가짜뉴스의 폐해를 지적하는 언론은 단연 <조선일보>다. 가짜뉴스 문제를 연일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보수 언론인 폭스뉴스가 트럼프의 음모론을 함부로 보도했다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게 된 것을 크게 보도하며 미국의 가짜뉴스에 대한 엄정 대처 분위기를 강조했다. 일관성이 있는 것은 누가 권력을 잡든 가짜뉴스 대책을 강조한다는 것이고, 그 정권에 가까워 보이는 언론이 그런 분위기를 잡는 보도를 한다는 점이다.
허위조작정보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면...
인터넷,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는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 AI까지 허위 정보 생산에 가세하면서 이 문제는 정말 모든 사람에게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 무작정 반대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관건은 도대체 언론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정파적으로 반대 세력을 압박하는 수단도 아닌 해법이 있느냐는 점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문제 해법에 접근하려면 조금은 체계적이고 냉철한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명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라는 애매하고 정치적인 용어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많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오보는 물론 단순히 의견이 다른 부분까지 포괄하는 용어를 가지고는 어떤 진지한 논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소 재미없고 말하기 어색하지만 ‘허위조작정보’라는 보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2018년부터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는 김민정 교수는 개념정의가 명확하지 않고는 그에 대한 대책 논의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의 단순 실수에서 비롯된 오보나 해석이나 의견의 차이, 다소간의 과장 등을 모두 가짜뉴스로 포괄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이미 오보에 대해서는 사실을 바로잡거나 손해를 배상받는 절차가 법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국 등에 비해 명예훼손 등에 대한 배상금이 적다는 지적이 있지만 우리가 사실을 보도해도 명예훼손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미국에 비해 초상권, 음성권, 사생활침해 등을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넓어서 법원으로서도 함부로 높은 금액의 배상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진 상황이다. 해석이나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은 애초에 논쟁의 영역이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이런 점을 걷어내고 정말 누군가 의도를 갖고 허위 사실을 조작해 유포하는 것, 그것이 사회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문제적 행위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제기됐던 백신에 관한 여러 괴담들은 대표적으로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허위조작정보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자유 의지를 빼앗기고 조종을 당하게 된다거나, 코로나 백신 안에 컴퓨터 칩이 들어있다거나, 유전자를 변이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지금도 존재한다. 그저 재미로 만들어낸 말이라도 감염병 대응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저해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나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엉터리 주장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정부가 뭐라고 해도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의견일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누군가 고의로 침몰시킨 것”이라거나 “일부러 구조를 하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천안함은 자폭한 것”이라거나 “천안함은 미국 잠수함에 충돌해 침몰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허위조작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그럴듯한 사실과 버무려 공개적으로 주장하게 되면 누군가는 이를 믿고 엉터리 사실을 전파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건 당장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도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허위조작정보의 문제에 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법이 개입할 영역’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며 이른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 보도에서 나왔던 삽화 문제 등을 추가했던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때려잡겠다는 의도를 앞세워서는 사회적 공감을 확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어떤 처벌을 강화하려면 처벌 대상을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언론에 대한 나쁜 공격이 통하는 바탕이 되는 사회적인 정파적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허위조작정보가 생산되는 것은 그것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심각한 사회적 분위기를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보도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있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