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이든/날리면’ 정정보도 판결에 대해 (보완)

2024년 1월 12일 서울서부지법: 외교부 vs. MBC (정정보도)

서울서부지법에서 MBC에 대해 지난 2022년 9월에 방송한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주문은 ‘판결이 확정되면’ 아래와 같은 정정보도를 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하루에 백만 원씩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정정보도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 윤석열 대통령의 글로벌펀드 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한 발언 관련 정정보도
본문: 본 방송은 2022년 9월 22일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장소에서 미국 의회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입니다.     


이 판결에 깜짝 놀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살짝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건 정정보도문 내용이 생각보다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는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인정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언론이 어떤 보도를 하면 그 대상이 원고가 되어 정정보도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보도된 내용이 사실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어떤 사실의 존재가 쟁점이 되었을 때 그것의 장소나 기간 등이 특정되지 않을 경우 등 보도 대상(원고)이 그 부존재를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불가능에 가까운 반면 보도를 한 쪽에서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 더 용이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보도를 한 쪽(피고)에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고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내도록 하고, 대신 보도 대상(원고)이 그것의 신빙성을 탄핵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과학적 사실에 관한 것으로 그것이 현재의 과학기술 아래서는 사실 여부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도대상(원고)에게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으므로 반대로 피고(이 사건에서는 MBC)가 보도의 근거로 삼은 자료를 포함해서 재판에서 파악한 모든 증거의 신뢰성과 증명력을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이 모두 PD수첩 광우병편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사실입증 방식에 관한 법리다. 이번 판결문에도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제시한다(대법원 2011. 9. 2. 선고 2009다52649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보면 바로 이번 판결의 논리가 개략적으로 이해될 것 같다. 재판부는 MBC가 보도한 윤 대통령의 말이 ‘날리면’이라고 확인했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바이든’이라고 말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을 보고 '아니, 이게 어떻게 날리면이야' 하고 흥분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MBC가 바이든이라고 본 것으로 제시한 근거는 자체적으로 여러 차례 들어보니 그랬다는 것, 그에 대해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당황하며 비보도를 부탁했었다는 것, 다른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는 것, 외신도 그렇게 보도했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MBC가 보도하기 전에 풀 기자단에서 여러 처례 들으며 검증해서 의견이 모아졌다는 말은 오히려 풀 기자단 내에서도 이 발언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재생 속도를 조정하거나 배경 소음을 제거하며 반복적으로 들으며 확인했다는 말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발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의미이고, MBC는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었으면서도 이 발언을 이 서비스를 통해 검증했다는 근거가 없고(오히려 보도 이후 검증해보니 이 서비스가 이 발언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고), 대통령실에서 비보도를 요구했다는 것을 해당 발언이 사실이라고 시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다른 언론의 보도는 이미 MBC가 유튜브를 통해 보도한 뒤의 후속 보도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더구나 MBC 외의 다른 언론사는 앞에 실제로 윤 대통령이 말한 적이 없는 ‘미국’이라는 말을 괄호 처리하여 자막으로 추가하지 않았고, 외신은 자체적으로 검증해서 보도했다기 보다는 MBC의 보도 내용을 전제로 하였을 가능성이 큰데 오히려 외신에서도 이 발언에 대한 보도가 진실하다고 판단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보도했다는 것 등이다. 이것 외에도 박진 장관의 전후 맥락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등의 추가적인 내용도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보면, 직접 현장에서 참여하지 않은 대화를 녹취 파일만을 근거로 보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재판부가 문제라고 본 부분이기도 하다. 먼저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이 명백한 발언을 기자가 생각한 맥락에 맞춰 임의로 추가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미국’이라는 말을 ‘국회’ 앞에 넣어서 실제로 윤 대통령이 말한 국회가 미국 의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만약 진짜 국회라면 뒤에 바이든이 나오는 게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냥 ‘미국’을 삽입하지 않고 들리는 것만 보도한 뒤 설명을 ‘국회는 미국 의회를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고 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렇게 여러번 들어보고 또 배속까지 조정해가며 들어봐야 할 정도의 발언이라면 그렇게 단정적으로 보도했어야 할까 하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이렇게 말했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말로 들린다’로 보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실제로 사람의 오감을 통해 인식한 것이 (비록 여러 사람이 비슷하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틀릴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것이 사실성에 대한 신중한 접근 방식에도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발언은 그것이 어느 쪽이든 대통령이 부적절한 표현(‘새끼’라는 발언을 한 것은 명백한 것으로 판결문에서도 적시하고 있다)을 사용한 것인데, 발언이 온 마이크 상태에서나 연설 과정에서 한 것도 아니고 연설 이후 보좌진과 이동하며 서로 격식없이 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보도의 시급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들을 수도 있고, 실제로 녹화까지 된 발언이라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많은 언론이 실제로 그렇게 보도했고,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듣기엔 바이든이 맞아’라고 얘기한다. 재판부도 그 부분을 신경썼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정은 기본적으로 다수결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정정보도 사건의 포인트는 명예훼손과 달리 실제로 그런 사실이 존재하는가(조금 양보해서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현재의 과학적 기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명예훼손 손해배상 사건이라면 ‘그렇게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가 쟁점일 텐데 이 사건은 정정보도만 청구한 건이다. 


재판부로서는 어떤 사실 인정 과정에서 언론인이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려’라고 판단한 것을 사실 인정의 합당한 방식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대단히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쟁점은 취재진의 귀에 그렇게 들렸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들을 수밖에 없는 말인지에 있기 때문이다. 


* 추가: 1. 이 사안이 과연 정정을 해야 할 사안이냐, 아니면 어떻든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는다면 외교부에 반론을 인정하는 것에 그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일단 이 사건은 정정보도 청구에 관한 것이어서 법원이 정정 대상이 아니라고 봤으면 청구가 기각됐을 것이다. 지금 훨씬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발언이 '바이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반론은 가능하지만 정정은 부당하다는 주장은 많은 설득력을 얻을 것 같다. 다만 이 사건에서 결국은 논란의 여지 없이 명쾌하게 들리지 않는 발언을 어떤 비난의 맥락에서 보도하려고 할 경우 적어도 상대방의 반론을 듣는 등 조금 더 신중하게 보도했어야 한다는 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가 듣기에는 이렇게 들리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며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발언했다'고 단정하고 비판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겠다. 한때 뉴미디어 부서 책임자로 있을 때였는데, 지금의 여당 소속 중진 의원이 상임위 회의 과정에서 욕설을 했다는 영상이 들어왔고, 제작 팀이 자막까지 입혀서 콘텐츠를 만든 적이 있었다. 당사자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고 해명을 했는데 제작팀에서 나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내가 들어봐도 틀림없이 욕설이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펄펄 뛴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혀 이 사안을 들어보지 않은 동료 기자들 여럿에게 듣게 했는데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누군가 다르게 들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 우리가 틀렸나?'하는 의심을 듣고 몇 번을 들어보니 당사자의 해명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 콘텐츠를 내렸고 당사자도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끝냈다. 그 일은 여러 사람이 '이 말이 맞다'고 해서 그 말을 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 나아가 팩트는 다수결로 정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다.


2. 판결이 나온 뒤에 어떤 MBC 기자가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재판을 한 것이라고 재판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종종 어이없는 판결을 비판한 적이 있고, 판결이 신성 불가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판결에 대해 논리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맞추기를 했다는 식의 감정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사건은 얼마든지 항소심에서 결론이 바뀔 수 있다. 사실 인정은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재판에서 51대 49로 사실관계에 대한 결론이 달라지더라도 일단 한 방향으로 결정이 나면 이를 증명하는 위주로 증거 관계에 대한 판단이 제시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오해하면 사안을 너무 일방적으로 보고 그에 배치되는 건 보지 않은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이건 좀 중요한 건데, 이 사건이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사석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들을 수 있는 공개 장소에서 비속어를 써가며 대화를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한 일이 아니다. 물론 보도가 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국제적 논란이나 국격 손상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어떻든 그런 말을 한 것은 대통령이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다시 확인됐지만 '새끼'라는 비속어를 쓴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 그런 발언조차 한 적이 없다는 식의 해명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당시 발언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른바 '100대 0'을 만들려고 하니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MBC를 비롯해서 언론도 논란의 여지 없이 명쾌하게 들리는 일반적인 발언을 보도할 때와는 달리 이처럼 제대로 녹취되지 않은 음성을 보도할 때는 조금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했다. 특히 실제로 하지 않은 표현을 삽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런 자막을 너무 당연하게 쓴다. 앞에서 일정 부분의 말을 잘라내며 흔적을 남겨놓는 것도 아니고 하지도 않은 말을 넣어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이 부분은 이번 MBC 보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말에도 그런 식의 표현 추가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 보도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가끔은 정말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몇 마디 안 했는데 내용 자막은 괄호 등으로 꽉 차서 방송되는 경우도 있다. 


MBC가 항소를 했으니 이번 1심 판결에서 적용한 법리나 사실인정의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다뤄질 것이다. 판결 주문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된 것들만을 기준으로도 양쪽 모두 한발씩 물러서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선균 보도 지적하다 ‘인권침해 방지법’ 만들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