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1) : 갤러리 17717, 3월 19일~3월 27일
지난 3월 23일(수), 언제나 그렇듯 평화롭기 그지없는 성북동 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했다.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꽃망울들과 콘크리트 사이에서 연두 빛 속살을 드러낸 풀들을 보며 한껏 설렜던 그날 오후, 어두컴컴한 지하 갤러리에서 또 다른 설렘과 마주했다.
성북시각예술네트워크를 통해 전해들은 설치미술가 정기엽 작가의 전시 소식 '그 속에서 놀던 때가'展, 왠지 애틋해 보이는 전시 제목이 전시장 방문을 재촉했다. 바깥의 밝은 빛에 익숙해진 눈 때문에 전시장은 더욱 캄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어렴풋이 보이던 작가의 작품들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양한 안개가 움직일 때 마다 겹쳐져 드러나는 형상이 오묘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안개란 투명한 물이 타고 남은 하얀 재. 타는 갈증을 못 풀어 애꿎은 물을 태우기로 한다.(작가의 전시소개 글 中)’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 작품은 안개설치작업이었다. 이미지는 안개의 움직임에 따라 차고 기울고 겹치고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긴 파장의 노을처럼 늘어지기도 한다. 그 속에 유리 오브제들이 널려 있다. 건너편 공간에는 비닐우산 속 꺾어진 감나무 가지가 하얀 포말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고향이리라.’라고 표현한 그는 유리를 고체 상태의 물로 비유했으며, 별도의 유리 오브제 작품들도 함께 선보였다.
오랜 시간 그의 삶에 배경이 되어온 성북동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 물, 안개, 유리를 활용하여 설치미술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듯한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아득해진 기억 너머의 유년 시절 추억들이 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작가와 내가 가진 기억의 배경은 다르겠지만, 전시 제목처럼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아무래도 관람객들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가 아닐까.
한편 작가는 불문학을 전공한 뒤 2004년 조형예술가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접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떠나 아르데코(Ecole Superieure des Arts Decoratifs)에서 유리와 소리, 안개설치작업으로 조형예술석사(dnsep)를 마쳤다. 그리고 소리아뜰리에 조교수로 여러 소리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2009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리 인터렉티브 예술축제인 인소노라(In-Sonora)에서 안개를 소리진동으로 조형하는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으로 주목받았다(경인일보, 2014-03-07 제13면 기사 中)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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