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세상으로 올라오는 건물 입구 벽면에 설치된 나무 판넬(?)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빗물에 촉촉이 젖어서 서서히 썩어 들어갔다. 특히 올해 들어서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도저히 더는 버틸 재간이 없어 보였다.
결국 오늘 갑작스레 철거를 결심하고 일을 치렀다. 바짝 마른 상태에서 철거를 하면 힘에 부칠 것 같아서 비가 내린 직후라 흐물흐물한 틈을 타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과 지하 노래방 사장님은 건물주한테 얘길 하지 이걸 왜 혼자서 직접 하냐며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질문 폭격을 날렸다. 철거하느라 힘이 들어서 구구절절 설명을 다 하진 못했지만 나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사실 이건 2018년에 이 건물에 처음 들어올 때 내가 설치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난 인테리어 사기를 당했었는데, 나를 만만히 봤던 그 업자가 약속한 외부용 방부목재를 사용하지 않고 실내용 싸구려 자재를 빗물이 들이치는 벽면에 말도 없이 설치를 한 것이었다.
당시에 수습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건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난 세입자의 의무랄까, 건물주가 굳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도 과도한(?) 책임감으로 알아서 척척 원상복구를 실행하고 있는 거다.
물론 단순히 의무이행으로만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문밖세상으로 들어오려면 이 통로를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데, 사실상 우리 공간을 찾는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노후한 이 건물이 주는 오래된 이미지와 구조적인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할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소한의 개선만이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였던 거다.
헌데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훨씬 더 많은 노동력과 시간이 소모되고야 말았다. 빗물에 푹 젖은 상태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힘을 들여야만 했다. 평소에 워낙 힘쓰는 일에는 재주가 없던 터라 금세 어깨, 허리, 무릎, 팔 온몸이 쑤셔왔고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갑작스레 할 게 아니라 날을 잡아서 철거 알바라도 쓸걸, 왜 이리 혼자서 사서 고생인지 즉흥적이고 실행력이 넘쳐나는 내가 오늘따라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시작했으니 어쩌나 끝을 봐야지. 폐기물 봉투 20리터 10포대를 꽉 채워서 버리고 나니 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철거도 마무리하고 벽에 핀 곰팡이 제거까지 완료하고 나니 3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리고 온몸엔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1차로 지저분한 걸 닦아냈는데도, 자재가 썩은 상태일 때만큼 보기가 싫은 건 매한가지. 조만간 며칠 내로 벽이 바짝 마르면 페인트칠을 해서 지저분한 벽을 말끔하게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말이지 일을 괜히 벌였구나 싶다. 너무 힘에 부친다. 이래저래 탈이 많은 자영업자&세입자의 삶이란. 아니, 굳이 사서 고생하는 내가 문제인 건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