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며..
프리랜서와 지방문화원 2곳을 거쳐 서른에 창업을 한 후 쉼 없이 일을 지속해오다 보니 커리어는 쌓여갔지만, 어느 순간 점점 역량의 한계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고민이 아닌, 제가 넘어야 할 허들이란 생각에 한계를 극복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예술을 전공한 기획자였고, 경영자였으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비교적 분명했다고 자부했었습니다. 따라서 박사과정은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라 여겼습니다. 즉, 그동안 제가 걸어온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겨울학기부터 인하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 강사로 출강하게 되었고, 2022년에 원장님의 추천으로 인하대 대학원 문화경영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입학과 동시에 안팎으로 수많은 갈등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닥 친 자존감으로 인해 내면은 점점 더 망가져만 갔고, 일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특히 서른에 석사논문을 쓸 때와 마흔에 학업을 다시 시작한 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평소에 인지하지는 못했었지만, 10년이란 세월 동안 서서히 노화가 진행되었고 체력은 바닥이 나 있었습니다. 어려서 겪은 사고 후유증과 여러 잔병치레가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결국엔 뇌혈관 협착 및 폐색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일상은 무너졌고, 공부와 연구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2년간의 코스웍은 끝이나 수료를 하게 되었으며, 병원에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은 후에야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학위논문이라는 새로운 압박감에 조급함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끝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8월에 급히 논문 주제를 잡기 시작했고,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을 거쳐 9월 초가 되어서야 논문 주제를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한 학기를 미룰지 강행을 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택하라 하셨고, 다른 과에 친분이 있는 학업 메이트 선생님의 격려로 용기를 내어 강행이라는 길을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년간 실무를 해오며 사회에서 충분히 두들겨 맞고 꺾이는 과정을 겪었기에 많이 단련되어왔다 자부한 저였습니다. 하지만 박사논문을 쓰는 지난 4개월은 제게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이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싸움이었으며, 외부와의 갈등이 아닌 철저히 제 자신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국지전과 전면전이 수시로 일어났고 내면은 점점 더 폐허가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견디고 버텨야만 했습니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 아직도 내 목덜미가 뻣뻣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이 내게 꼭 필요해서 주어진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삶을 살아오며 틈틈이 자기 성찰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깊은 곳에는 여전히 오만과 자만이 깔려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 극단의 상황에서 저는 제 자신의 바닥과 한계를 아주 냉정하고 철저하게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어디까지 내려가야만 하는 건지, 그 끝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공포가 매일 매 순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으며, 포기를 수없이 고민할 만큼 고통스럽고 험난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직하고 투명했습니다.
제 논문 제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이 예술경영 민간조직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 조직 내부역량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입니다. 다수의 조직 대표자 및 실무자에게 설문 응답을 받아 진행된 양적연구였지만, 14년이란 시간 동안 예술경영 민간조직을 직접 운영해 왔기에, 이 논문의 연구 문제와 방향은 결국 제 자신과 제 조직을 향해 있었습니다. 논문을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더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연구는 조직에 대한 연구이기 이전에,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이죠. 나와 내 조직은 과연 어떤 정체성으로 일을 해왔는지, 내가 믿어온 나와 내 조직의 내부역량은 실제로 잘 작동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아직은 성급할지도 모르겠으나, 앞으로의 제 삶과 일의 방향성에도 어렴풋하게나마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그래서 제게 졸업은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다음을 위한 새로운 시작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직하고 투명하게 마주한 저라는 도화지 위에 다시금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박사라는 학위를 얻음과 동시에 더 오래 질문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거듭나, 과거와는 또 다른 새로운 쓰임이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이처럼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학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감사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먼저 전액 장학생으로 추천해주신 김상원 지도교수님, 저의 구세주가 되어주신 추계예술대의 남상문 교수님, 손재영 심사위원장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교수님들, 문제해결의 브릿지가 되어주신 삼육대의 권은경 교수님, 배남주 논문 스터디를 열어주시고 유사전공 분야의 학생들에게 논문작성법과 많은 지식을 나눠주신 건국대 유동환 교수님, 항상 저를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이선철 대표님, 논문의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동학 도시재생학박사 이승주 선생님, 만날 때 마다 푸념을 늘어놓아도 항상 잘 들어주고 멘탈을 잡아준 동네친구 노경민 대표님, 연구를 위한 설문에 참여해주신 204명의 응답자분들, 잦은 문의에도 항상 친절히 응대해 준 과사 조교님 등 언급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외 일일이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저를 가까이 또는 멀리서 지지해 주시고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집에는 언제 오냐며 조심스레 전화와 문자를 해오시고, 박사논문 통과 소식에 졸업이 멀었는데도 친인척 등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기뻐하시던 우리 부모님. 언제나 항상 건강하고 무탈하게 계셔서 걱정 없이 박사과정과 학위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곁에 계셔 주시길 바라며, 곧 뵈러 갈게요! 사랑합니다.
끝으로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든 더 겸손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박사졸업합니다
#졸업식은2월20일
#어떤새로운일들이펼쳐질까
#저이제백수에요
#많이놀아주세요
#일도많이시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