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입을 닫은 이유

말 많은 어른들과 말 없는 아이들 이야기: 영화 <안녕하세요>

by 성실한 관찰자


아이들의 눈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콕하고 박힌다. 다른 어떤 말보다 따끔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진실을 꿰뚫어 보기 때문일까. 영화 <안녕하세요> 속 ‘미노루’의 말처럼, 솔직한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정곡을 찌른다.


도쿄 외곽, 똑같이 생긴 주택들이 즐비한 어느 동네. 그중에 한 집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젊은 부부가 사는 그 집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하교 후, 숙제도 학원도 미뤄두고 그곳에 모여든다. 아이들의 부모는 카바레에서 일하는 젊은 부부의 집에 아이들이 드나드는 걸 못마땅해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집으로 돌아온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부모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른다. 돌아온 대답은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조용히 해”뿐이다. 그러자 형 미노루는 당돌하게 말한다. 어른들이야말로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좋네요, 아 그러셨어요?, 아 그러시구나, 아 그렇군요”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한다고. 아이의 말은 기막히면서도 틀린 데가 없어 실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형제는 부모의 말대로 조용히 하기로 결심한다. 침묵시위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집 밖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형제의 영어 과외를 해주는 선생은 아이들이 입을 닫게 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다. 미노루의 말이 정답이라면서도, 그런 말들이 없다면 인정도 없고 살맛도 안 나는 세상일 거라고 덧붙인다. 사실 그는 형제의 고모를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날씨 이야기나 자신이 맡고 있는 번역 일 이야기만 꺼낸다. 정말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은 하지 못한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가 침묵시위를 하는 동안 동네에는 분실된 부녀회비에 관한 소문이 여자 어른들의 입을 통해 집 사이사이를 넘어 다닌다. 소곤소곤 조용하지만,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전하지 않아도 될 말이 오가고, 사실보다 부풀려진 말들이 쌓여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이 동네에 정말 필요한 건 아이들의 침묵이 아니라, 어른들의 침묵이었다. 아이들이 선택한 침묵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귀여운 반항이었지만, 어른들의 말은 무책임한 소음이기도 했다. 결국 형제는 텔레비전을 얻게 되고, 동생 이사무는 기쁨의 훌라후프를 돌린다.


출처: 왓챠피디아


<안녕하세요>는 마치 1950년대 일본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한 장의 필름 사진 같다. 오래되어 조금은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더불어 66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도 미노루와 이사무 같았던 적이 있었다. 텔레비전이 아니어도, 부모님과 그런 실랑이를 벌인 때가 있었다. 결국 얻어내 뛸 듯이 기뻤거나, 끝내 얻지 못해 낙담했을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영화 속의 어른들처럼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어쩌면 우리는 평생, 쓸데없는 말을 하며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말을 비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며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영화 속 이사무처럼 기쁨에 못 이겨 세레모니를 했던 때가 있었을 텐데. 그게 언제였을까. 이미 어른이 돼버렸지만, 나도 기쁨의 훌라후프를 돌리고 싶다. 내가 기다리는 기쁨은 무엇일까. 언젠가 나도 말없이 훌라후프를 돌릴 날이 올까.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