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힘

다정함에 대하여, 영화 <와일드 로봇>

by 성실한 관찰자


지금껏 정말 많은 후회를 했고, 하고 있다. 어떤 후회는 되풀이되며,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분명 시작점이 다르고, 상황과 상대가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후회로 이어진다.


‘왜 나는 조금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물론 내가 다정했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따뜻했다면, 조금 더 부드러웠다면 어땠을까라는 미련이 남는 순간들이 있다. 그랬다면 상대에게 나의 온기가 닿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조금 덜 껄끄럽지 않았을까 싶은 후회가 남는다. 모르는 사람에게 쉬웠던 친절이,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다정하지 못했던 지난 내 모습들이 떠오른다. 영화 <와일드 로봇>은 우리에게 ‘다정함의 온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에 대해 들려준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어느 울창한 숲에 한 로봇이 불시착한다. 로봇의 이름은 ‘로즈’. 그는 인간을, 누군가를 돕기 위해 프로그래밍 되었지만 숲에는 동물들뿐이다. 로즈는 마주치는 동물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를 묻고 다닌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응답 대신 괴물 취급이다.


야생의 숲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던 로즈는 공장으로 복귀하려던 중에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를 만나게 된다. 태어나 처음 본 로즈를 엄마라 알고 따르는 브라이트빌을 위해, 그는 엄마라는 역할로 '먹고 헤엄치고 가을까지 날 것'이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그렇게 로즈는 새 임무를 위해 공장으로의 복귀를 미룬다. 그리고 자칭 기러기 전문가인 여우 ‘핑크’가 합류해, 셋은 임무를 위해 함께 고군분투한다.


로즈는 임무를 위해 브라이트빌과 핑크와 함께 지내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도움을 주는 친절을 넘어선다. 그들과 온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교감한다. 그렇게 친절한 로봇에서 다정한 로즈가 되어간다. 친절함은 예의와 배려를 위한 기술, 어느 정도는 프로그래밍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정함은 감정과 관계, 온기가 있어야 한다. 태도나 행동에서 드러나는 몇 번의 친절은 쉽지만, 한 번의 다정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관계는 기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여곡절 끝에, 브라이트빌은 겨울이 오기 전에 다른 기러기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난다. 그렇게 로즈는 마지막 임무까지 완수했지만 그는 숲을 떠나지 못한다. 겨울이 지나고 돌아올 브라이트빌을 만나고 싶어, 또 한 번 공장으로의 복귀를 보류한다. 그해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고, 최악의 눈보라가 몰아친다. 이를 알지 못한 채, 겨울잠에 들었던 동물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로즈는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예전의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즈와 핑크는 하나씩 구출해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데려온다. 하지만 살았다는 안도는 얼마 가지 못했다. 먹고 먹히는 관계였던 천적들까지 숲 속의 모든 동물이 모인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모습을 보던 로즈는 말한다.


'때로는 살아남으려면, 프로그래밍된 자신의 본성을 넘어서야 돼요.'


이 말은 단지 로봇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물들은 싸움을 멈추고, 서로의 곁에 누워 체온을 나누며 다시 겨울잠에 든다. 다시 봄이 찾아오고, 함께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며 눈을 뜬다. 로즈는 조용히, 브라이트빌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결국 다정함이었다. 로즈의 다정함으로 브라이트빌과 숲의 모든 동물을 살아남게 했다. 처음엔 단지 도움을 주는 로봇이었던 로즈가 말이다. 다정함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남게 되는 힘. 끝내 서로를 지탱하게 만드는 온기. 어쩌면 우리도 크고 작은 다정함의 순간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우리 아주 잠깐이라도 조금 더 다정해지자.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