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한 조각을 기록한 <썸머 필름을 타고!>
며칠째 계속 비가 오고 있다. 마치 동남아시아 같은 요즘도 여름의 한 조각이겠지. 그런 창밖을 보고 있으면 또 다른 빛깔의 조각이 그리워진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이 새파란 하늘, 빈틈없이 쏟아지는 햇볕, 싱그러운 초록빛, 매미와 풀벌레가 지저귀는 소리. 여름의 한 조각은 생기로움이 멈출 줄 모르고 뻗어나가는 계절의 모습이 담겼다. 봄에 싹튼 가능성이 여름을 만나서 무르익고, 무성하게 자라고 결실을 맺는다. 여름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라고 성장하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계절. 그 과정을 통과하는 순간을 청춘이라 부를 수도 있고.
여름의 한 가운데, 내리쬐는 햇빛은 지상의 많은 것들을 반짝이게 만든다. 잎이 풍성한 나무들 사이에서 스며드는 햇살, 물결 위를 수놓는 물비늘과 맺힌 윤슬이 빛난다. 나는 그렇게 반짝이는 것을, 반짝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쁘장함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좋다고 말하는 것. 그런 순간이면 상대에게서 청량한 여름의 빛이 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청춘과 거리가 먼 계절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순간의 청춘을 엿본 느낌이 든달까.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여름이면서 청춘이고, 빛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무라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여고생 ‘맨발’. 학교 영화부의 대세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맨발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렬히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은 소년 ‘린타로’를 만나고서 확신한다. 그가 자신의 사무라이 영화의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맨발의 절친인 ‘킥보드’, ‘블루 하와이’ 그리고 학교에서 오며 가며 마주친 재능 있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외친다.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맨발과 친구들은 영화를 만들며 ‘미래에 영화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 그들의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순조롭지 않지만 그 여름을 담은 한 조각을 계속해서 기록해 간다. 우리가 끝이 올 걸 알면서도 지금을 계속 살아가듯이. 영화 속 여름, 선명한 햇빛의 날카로움은 어느 것도 숨기지 못하도록 환히 드러내고 이내 빛이 난다. 이 반짝임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는 용기 속에 있지 않을까. 그런 순간이 청춘답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청춘은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도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온 계절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