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에게

10년째 기울어진 전신주에게 쓰는 편지

by 서툰남편 김광석

그래, 너도 기대고 싶겠지


고작 몇 걸음 떨어져 있으면서
영영 닿을 수 없는 친구와
선으로나마 연결되어 있음이
오히려 야속하겠지


어설픈 흙바닥에 꽂힌 채로
중심을 잡고 서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폭포처럼 많은 비가 쏟아지던 날
혹은 꽁꽁언 땅이 녹아내리던 날
땅의 꺼짐을 느끼며 화들짝 놀랐겠지


그 때,

아마도 그 날이었을 거야
네가 처음으로
너 아닌 존재에 몸을 의탁한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머쩍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살결을 닿아 있다는 것이
이토록 든든하다는 사실을 알았을거야


그래서 누군가
너를 다시 세우러 올 사람이
늦게 오기를 바랐을거야


그 바람이 바람을 타고 갔는지
너는 10년을 더 넘겨서도
그에 기대어 있구나


그래, 너도 기대고 싶겠지
나도 그것을 바라줄게


<신주에게>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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