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by 선향

그 문제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셸의 집에 갔다. 이삼일 안 가면 셸이 궁금해하며 내 방으로 찾아왔다.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 셸의 주변은 정말 삭막했다. 그에게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곧잘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불신하며 서서히 셸이 친구를 하나 둘 잃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딸과 아들마저도 소식을 완전히 끊고 지내는 듯했다. 매일 전화를 하는 아버지만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일 뿐이었다.


그는 점점 더 내게 정성을 기울였다. 에테보리의 아시아 식료품점에 가서 김치와 홍콩제 라면을 사 오기도 했다. 그가 사 온 김으로 김밥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는데 그는 김밥을 쌀소시지라고 불렀다. 그에게 나의 위치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나의 불안감도 커져 갔다. 그가 친구 하나 없이 너무 고립되어 있음과 내가 그의 삶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결국 나는 우리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모두 부담스러웠다. 그걸 무사에게 상의한 적이 있었다. 무사는 주의 깊게 듣더니 말했다.


“셸에게 말해. 결국 너는 네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지금 네 입장을 설명하면 그도 너무 깊이 마음을 쏟진 않을 거야. 그가 외롭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네가 불안해해서 관계를 끊는다면 그가 상처를 입을 뿐이야.”

“나와 셸의 관계는 안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이상하게 봐요. 난 그게 속상하고 정말 싫어요.”

“스웨덴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성적으로 연결시키곤 해. 그리고 사실 셸에게 필요한 이도 그를 돌봐 줄 부인이야. 너를 딸처럼 대한다고 해도 그건 한계가 있을 뿐이야.”


점점 셸에게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가더라도 잠시 앉아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날은 엠마와 함께 도서실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도서실 창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셸이었다. 그는 자꾸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혀가 풀린 채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엠마가 놀라서 창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그를 만났다.


“왜 이렇게 취하셨어요?”


그의 취한 모습은 마치 완전히 망가져 허물어진 사람과 같았다. 울며 웃으며 나를 붙잡고 얘기하는 그에게 나는 자꾸 집으로 가자고 했다.


“미야, 사랑스런 미, 내가 내일 줄 테니 100 크로나만 빌려줘. 보트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지금 돈이 떨어졌어.”


나는 집으로 꼭 가셔야 돼요. 다짐시키며 내 방으로 가서 돈을 가지고 왔다.


“다시 술 드시면 안 돼요. 집에 돌아가셔서 주무세요.”


결국 그를 보내고 내 방에 돌아와 누우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당황하고 놀란 가슴에 그의 눈물에 젖어 맥이 풀린 흐릿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절망에 찬 모습이었다.


다음날 그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방문은 굳게 걸려 있었다. 안에서 스띵땅이 문을 긁으며 짖는 걸로 보아 셸이 있는 듯했다.


“셸, 문 열어요. 저예요.”

셸이 문을 열어주곤 다시 침실로 가서 이불을 쓰고 고개를 돌려 누웠다. 방안은 술 냄새와 알지 못할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셸, 일어나 학교에도 가고 밥도 먹고 해요.”


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울먹였다.


“나는 죽고만 싶어. 정말 죽고 싶어.”


그는 일어나 앉아 얼굴을 손에다 묻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 지켜볼 수가 없어 일어나 창가로 갔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져 왔다.


“나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는 내가 예쁘고 영리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모두 나를 좋아한다고 하고 자신은 나를 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학교로 돌아와도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가 말한 것들이 불안스레 머리를 맴돌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다음날에도 셸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여전히 셸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셸, 이러시면 안 돼요. 어제 학교에 오기로 나와 약속했잖아요.”

“나, 오늘 신부를 만나고 왔어. 신부가 그러더군. 그 엉터리 신부가 하느님을 믿고 괴로움을 덜기 위해선 교회에 꼭 나와야 한다고 하더군. 하지만 난 교회가 싫어. 그래도 나는 하느님을 믿어. 하느님은 바로 사랑이야.”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 그의 눈은 여전히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셸, 또 술 드셨어요? 안 드시기로 했잖아요.”


나는 식탁 위에 놓여있는 술병을 쥐고 갖다 버리겠다고 했다. 그는 요것만 마시고 다시는 안 마실 거야 하면서 내게서 술병을 뺏으려고 했다.


“셸, 술을 끊으셨잖아요. 왜 다시 마시려고 해요? 뭣 때문에 술을 다시 마시는 거예요?”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 술은 내 거야. 돈은 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 술병을 줘.”

“셸, 정말 죽으려고 해요? 그러지 말아요.”


그는 술병을 뺏어 품에 넣고 다시 누워 버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학교로 돌아와 버렸다.

다음날 오후에 갑자기 레나가 내게 물었다.


“셸이 술 마시기 시작한 거 알아? 오늘 학교에 와서 교장선생님이랑 싸우고 돌아갔어. 술병도 옆에 가지고 고함을 질러대는 거야.”


나는 다시 셸의 집으로 갔다. 빈 술병이 식탁 위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셸, 자꾸 왜 이래요, 학교는 안 다니실 거예요?”


나는 고개 돌려 누워 있는 셸에게 울며 소리쳤다.


스띵땅이 자꾸 내 발목에 감겨 들었다. 스띵땅의 몸에 약간의 핏자국이 묻어 있었고 내 발목에 사타구니를 자꾸 비벼대는 것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바닥에 잡지가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학교로 돌아와 내 방에 앉아 있어도 자꾸 그 사진과 스띵땅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딸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셸은 50대의 홀아비이고 여자가 필요할 뿐이야.”


나는 더 이상 셸을 만나기도 그의 집을 찾아가기도 싫었다.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셸이 이대로 죽었으면 싶은 생각을 했다. 셸이 죽으면 나의 부담감도 나의 두려움도 모두 없어지고 그도 더 이상 외로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가 살아있다면 결국 어디를 가든 그가 술과 외로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것을 잊고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죽는 것이 그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 듯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고통 없이 죽기를 바랐다.


마음속에 이는 괴로움을 참고 다음날 수업을 받았다. 교회당 종이 울릴 때 혹시 이것이 셸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언젠가 마을의 누군가가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친다고 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셸이 나를 찾아왔다. 술에 취한 듯 보이지는 않았지만 악취는 여전했다. 나는 문을 열고 나와 복도 앞 소파에 앉아 그를 만났다. 케니뜨가 복도 저편에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셸은 케니뜨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셸은 케니뜨에게 200 크로나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돈이 없다고 하며 케니뜨가 가버리자 셸은 나에게 물었다.


“어제 왜 그냥 가버렸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다 말했다.

“어제 바닥에서 잡지 사진을 봤어요.”


셸은 당황하며 내가 무얼 얘기하는지 모르는 체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그는 내게 빵 살 돈이 없다고 하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절대로 술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이틀 후면 은행에 돈이 들어오니까 그때까지 먹을 음식을 사야 한다고 했다. 술은 마시지 말라고 당부하며 결국 그에게 돈을 주었다.


돈을 돌려주기로 한 날에도 그에게는 소식이 없었다. 그때까지 그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소문에는 그와 다른 사람 하나가 술집에서 말썽을 피워 학교에서는 그를 퇴학시킬 것이라고 했다. 셸의 집에 가서 그를 만나보고 온 무사가 말했다.


“셸이 교장 욕을 몹시 하더군. 교장은 처음부터 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야. 알코올중독자였고 나이도 많았으니 내키지 않았겠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그를 퇴학시키려는 거야.”

“셸이 알코올중독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어요?”

“물론이지. 나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겠던걸.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 (케냐)에서는 가족과 이웃이 끝까지 돌봐 주는 것이 상례야. 우리 아버지도 알코올중독자였는걸. 셸은 민감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야. 그와 같은 사람은 상대방이 진정한 애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쉽게 다칠 수 있어. 부인과 이혼한 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을 거야.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자식마저도 그를 멀리 하고 고립시켜 버리는 것은 스웨덴 사람들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탓이야.”


그는 셸이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가 술을 마시게 되고 사회에서 고립되게 된 것은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무사에게 더 이상 셸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그와 나만 아무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셸에게는 내가 단순히 딸 같은 존재만은 아니었을 듯하다고 했다. 무사는 내가 그렇게 칼을 긋듯 경계를 짓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차리리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영, 너 셸을 사랑하는 게 아니니?”


나는 다만 불안하고 겁이 날 따름이었다. 셸이 나를 여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그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결국 셸을 퇴학시키고 학교에 오는 것을 금지시키며 내게도 셸의 집에 가지 말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나의 눈을 빤히 보더니 그 때문에 괴로움을 느낄 필요도, 혼란스러워할 것도 없다고 했다.


소망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내겐 고통이에요

죽음의 마른 나뭇가지에 걸린

당신의 얼굴을 그리며

나는 소망합니다


처음에 누가 그 끈을

잡아당기었는지 모르나

이제 눈 가린 고통은

스스로 삶의 끈을 끊게 하고

아무도 당신 곁에 남지 않고


내가 떠나도

진공의 우주 속

술독처럼 외로움 안에 허우적거리는

당신의 삶이 이어진다는 것은

내 삶 또한 고통을 의미해요


어린 가슴의 믿음을 깨고

당신의 절망과 외로움

여인이 되어가는 나의 두려움을

일깨웠노라 변명하며

나는 떠나기를 결심합니다


어느 깊은 하늘 속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진

고요한 당신의 그림자를 그리며

나는 부끄럼도 없이

그대의 죽음을 소망합니다.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