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친 후 저녁이면 주로 셸의 집으로 달려가 함께 TV를 보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하루는 셸이 저녁때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같이 가자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같이 가는 사람이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차를 탄 후 셸은 차비인 듯 20 크로나를 그 사람에게 주었다.
30분쯤 달려 차가 선 곳은 숲 속에 있는 조그만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무슨 모임인지 몰랐으나 셸이 자신은 남자들과 있을 테니 여자들과 함께 있으며 얘기를 들어 보라고 했다. 둥글게 8명이 둘러앉아 있길래 나도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자길래 나도 내 소개를 하곤 무슨 모임일까 주의 깊게 들어 보았다.
“자, 그럼 누구부터 얘기할까요?”
이렇게 제안한 사람이 잠시 후 자기의 경험담을 먼저 털어놓았다. 듣다 보니 알코올중독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게 된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털어놓으며 서로 용기를 북돋았다. 한참 돌아가며 침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깔깔 웃으며 얘기가 끝난 듯했다. 일어나 함께 기도를 하고 서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나와보니 셸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셸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 모임에 가시는 거죠?”
셸은 주저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저 흥미가 있어서야.”
그때 나는 그곳이 알코올중독자들이 서로의 경험담을 나누며 치료하는 모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셸이 왜 그곳에 다녀야 했을까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셸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단지 셸의 말대로 단순한 관심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건 내가 그 모임의 성격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수업이 끝나고 도서실로 가는 길에 교장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장난기 어린 듯한 그분의 표정과 친절함 때문에 나는 그분을 몹시 좋아했다.
“요즘 셸의 집에 자주 간다는데 사실이에요?”
“네. 그래요.”
교장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다른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마리의 생일날 모두 마리의 방에 모여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춤도 추지 않은 채 그저 앉아서 얘기 나누며 술을 마시는 그들의 파티는 내게는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기만 했다. 그날, 셸이 몸에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와서 젊은이들 틈에 서성거리다 곧 돌아갔다. 그가 간 후 마리가 나에게 와서 물었다.
“셸이 너에게 잘해 주니?”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과 새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을 보며 나는 대답했다.
“그럼.”
“나도 전에 마흔 살 넘은 남자와 사귄 적이 있거든. 그 사람이 날 때리고 하는 바람에 곧 헤어져 버렸어.”
나는 그녀가 나와 셸의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 연결시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리,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우리는 단지 아빠와 딸 같은 사이일 뿐이야.”
나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번 굳이 ‘아빠와 딸’을 강조했다.
좀 어색한 표정의 마리는 곧 화제를 돌려 버렸다. 그제야 나는 확실히 많은 사람이 나와 셸을 관련시켜 성적인 관계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교장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셸은 내 생각만큼 나이 든 남자가 아니었다. 그저 50대 중반의 독신남자일뿐이었다.
거울
자라나려는
슬픔의 싹을 자르고
수없이 얼굴을 씻은 후
거울 앞에 선다
나는 너무도 작다
씻어도 초라함은 얼굴에 남아
다시 또 피어나고
다시 얼굴을 씻는다
세계는 바라보는 자의 것
내가 바라보는 거울은
시보다 더 시다운
아름다운 원을 그린
한 여인의 삶과 고통
거울이 맑을수록
마음 깊은 곳의 먼지를 비쳐내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모퉁이가 부끄러운 것
외로움의 늪에
수없는 생각과 느낌의
싹으로 돋아
하늘을 보듯 거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