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수업

by 선향

수요일엔 스웨덴사람들과 함께 듣는 역사수업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유럽 열강의 아시아 식민지화에 대한 토론에서 목공반의 토마스가 얘기했다.


“아프리카 흑인들과 동양인을 다룰 때 차이가 있었던 것은 동양인은 옷을 입고 있었고 흑인들은 발가벗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 토론의 정확한 방향은 내 듣기 실력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유럽인의 아시아 침략을 다뤘기에 어느 정도 민감해져 있었던 내 귀에 선명하게 와 박히었다.


스웨덴은 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계 역사의 중심부에서 세계를 문명화시킨 유럽인이라는 자부심의 한 꼬투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럽의 아시아 침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역사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더듬거리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서 식민지화되었어요. 그래서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유럽의 과학기술과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 의해 우리도 서구화되었어요. 일본의 식민지화로 우리 민족은 고통받았지요. 어쨌든 모두에게 평등하게 교육기회가 주어지고 여자들도 공부하게 된 인류 역사의 흐름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겠지요”


사실 나로서는 할 말이 없는 문제였다. 다만 내가 나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유럽의 역사와 서구 문명이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구나 하는 어렴풋한 자각이 생겼다. 유럽을 보는 아시아인, 그중 한국인으로서의 시각이 제대로 정립되지가 않았고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 이런 질문에 대해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는 순정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대부분 순정만화의 주인공은 프랑스나 영국, 미국의 백인소녀들이었다. 가끔씩 잠들기 전 머릿속으로 순정만화나 하이틴로맨스 장면을 그려보곤 하는데 예외 없이 여자 주인공은 금발에 푸른 눈의 미인이고 남자 주인공은 멋진 백인 남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이상향이 지금 내 눈앞에 낯설게 나를 쳐다보는 차가운 푸른 눈에 노란 머리를 갖고 있는 저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유럽인이 아시아를 보는 시각 그 이상을 갖지 못한 내가 아시아인으로서 식민지화에 대한 아시아와 한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그들 앞에 밝혀 주어야 할 입장에 섰다. 나는 동등한 입장으로 그들 앞에서 한국인으로서 그들을 보는 내 시선을 밝히고 싶었으나 뭐라고 할 얘기가 없었다.


그 후 언니에게 전화로 부탁해서 ‘동양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역사’, ‘한국문학의 이해’ 등의 책들을 몇 권 받았다. 그중 어느 책에서 ‘동양의 서구화에 의해 동양은 서양이 갖지 못한 자체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라는 구절을 읽었다. 우리 것을 알아야겠다는 내 의도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었듯 그 말도 역시 서구화의 위력 앞에 주체성의 흔들림을 느낀 동양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해 가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미래역사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현재의 역사는 판단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동양과 서양 중 누가 주도권을 잡았냐는 질문 자체가 없어질 정도로 인류 전체가 하나가 되어 민족과 인종을 벗어난 의식 수준에 도달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 죽으면


세상에 --

죽고 나서도

내가 남는다면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약속된 하늘나라

잘은 몰라도

나를 떠난

큰 하나에

올라서는 것


잃어버린 몸

가졌던 그대로의 생각

영혼으로 남아서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후회한다면


지상의 삶은

아직 내가

잘 치러야 할

무거운 숙제이지만


죽으면 나는

나를 잊고 싶어

내가 아닌

큰 힘 속에

하나 되는 것


내 생에 한 번도

신을 믿은 적은 없지만

참되고 진실한

신 있다면

그 속에

하나로 섞이고 싶어


지상의 사랑은

지상에 다 꽃 피우고

나 죽으면

순백의 영혼

왔던 그대로

돌아가고파


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