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다: 부드러운 얼굴의 규율

치유를 가장한 ‘육아 상담’ 담론과 정상성의 감옥

by 신담

면책조항

(본 글은 특정 방송·인물·기관을 지칭하거나 비방할 의도가 없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육아 상담’은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일반적 담론 형식을 지칭하며, 실제 사건이나 인물과 무관합니다.)



조용한 상담실, 시선이 한 아이를 향한다.

아이는 무릎 위 손가락을 비비며 시선을 피한다.

“왜 말을 안 해요?”

“왜 치료를 거부하죠?”

겉으론 도움의 손길처럼 들리지만, 이 질문은 존재를 심문하는 언어로 작용할 수 있다. 치유와 회복을 표방하는 상담 장면 속에는, 감정과 존재를 ‘비정상’과 ‘교정 대상’으로 환원하는 사회 구조가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가 전지적 시점에서 아이의 행동을 해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순간, 아이는 ‘관찰 대상’이 된다. 시선은 사방에서 뻗어와 등을 감싸고, 아이는 타인의 눈을 짊어진 채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의 중심에 선 것과 비슷하다. 감시자는 사라져도 감시는 계속될 수 있다. 이것은 ‘치유’가 아니라, 내면화된 자기 규율이 시작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오늘날, 일부 담론에서는 전문가의 권위가 부모·절대자·신의 부재를 대신 채우는 경우도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그 빈자리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재건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권력은 아이에게 초자아(Superego)처럼 작동하며,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을 주입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푸코의 개념을 빌리면, ‘정상성’이라는 감옥의 설계자로도 비유할 수도 있다.

아이의 서툰 감정 표현은 곧 ‘이상 행동’으로 분류되고, 사회가 설계한 표준 모델이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 훈련된 표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목소리를 장착한다. 이때 말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규율화된 정상성일 수 있다.


치유를 거부하는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라, 사회적 틀에 맞물리지 않으려는 ‘존재’로서 저항하려는 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저항자조차 끝내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는 역설 속에 갇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살아 있으나, 내면화된 규율 속에서 반죽음의 상태로 남는 것이다.

감정이 억압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여러 층의 방어를 세운다.

울음(1차 방어): 살려달라는 신호

침묵(2차 방어): 포기한 고백

분노의 전치(3차 방어): 다른 곳을 향한 폭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아는 갈라지고, ‘존재로서의 감각’을 조금씩 잃어갈 수 있다. 육아 상담이라는 사회적 장은 종종 사랑과 배려로 포장되지만, 그 밑에는 규율과 훈육의 담론 질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존재의 감각은 존중이 아니라, 분석되고, 기록되고, 결국 ‘치료해야 할 데이터’로 취급될 수 있다. 치유와 구원의 이름 아래, ‘정상성’이라는 규율을 부드럽게 주입하는 현대판 판옵티콘이 작동할 수 있다.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을 말하지 않고, ‘모범’을 연기한다. 그 아이는 울었고,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사랑해 주길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일찍 깨달았다. 울면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억압된 감정을 ‘정상’이라 믿게 된 것이다.


“오 멋진 신세계여!”

아이는 ‘고쳐져야 할 물건’이 아니다. 망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을 말할 기회를 빼앗겼을 뿐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로서 말할 수 있기를 기다려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돼, 곁에 있을게.”
“화내도 돼, 그 감정은 네 거야.”
“정답 없어도 괜찮아, 네 호흡부터 들을게.”

물론 이 말조차 규율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세계라는 알은 스스로 깨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치려 하기보다,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품이 되어야 한다.


그 아이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해석과 사유에 기반한 것이며, 모든 상황이나 인물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 진술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