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A 스타트업이 사는 모습
2013년~2014년에 많은 스타트업이 생기고, 데이트팝은 서비스 출시 6개월 만에 첫 투자를 받았다. (관련 기사) 투자는 사업의 시작도 끝도 아님을, 계약서 도장 찍은 그날부터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우리 팀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씨앗이 된 것은 분명하다.
첫 투자를 받을 땐 수익화보다는 컨텐츠와 유저를 모으는 것이 목표였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비용 관리를 허투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쿨리지코너 패밀리 워크샵에서 만난 한 대표님께서 인사 나누며 하시는 말씀이, "텐핑거스처럼 허리띠 졸라매면서 하셔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회식 한번 자유롭게 하지 않고,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근무도 당연히 하면서 성과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2016년 4월, Series A 규모의 10억 투자를 포스코기술투자로부터 유치했다. (관련 기사)
투자금의 사용 목적은 이랬다.
- 1년 동안 자금을 사용할 것이고,
- 시장에서 1위를 공고히 하고,
- 수익 모델을 검증하는 것.
우리에게 맞는 펀드가 있는 투자자를 찾아갔고, 첫 미팅 때부터 담당 심사역은 우리의 사업 방향에 공감했다. 이후 정식 IR을 거쳐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첫미팅 하고 돈 꽂히는 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 누구는 운이 좋았다고 했고, 누구는 좋은 IR이었다고 했다. 뭐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사업할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원래 데이트팝은 데이트하기 전, 색다른 놀거리가 포함되어 있고, 더 생각할 필요 없이 하나의 코스로 제안해주자는 컨셉으로 시작한 컨텐츠 서비스였다. 초기 기획은 친근한 분위기의 매거진을 지향했다.
O2O로 전환하면서 서비스 단에서 큰 변화는 유저들이 인기 데이트 장소를 할인가에 구매해 갈 수 있는 '팝딜'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컨텐츠 탐색(browse)에 최적화해서 구축해놓은 서버 구조와 UI였으나, 결제 기능을 구현하고 안정적으로 커머스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개발팀이 많은 노력을 했다. (라고 쓰고 많이 싸웠다,라고 읽는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변화는 '로컬 사장님'이라는 하나의 고객이 더 생긴 것이다. 고객을 정의하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업의 핵심인데 무려 그 '고객'이 하나 더 생겼다. 엄청난 일이었다.
나도 영업 출신이 아니다 보니 스스로를 설득하고, 내부를 설득시키고 체화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도 역시 잡음이 많았다. 하다못해 사소한 앱 UI부터 고객 대응 매뉴얼, 영업 모델 수정, 내부 시스템 구축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작년 가을 기준으로 팝딜 제휴점 120개를 돌파했고, 현재는 500개 업체가 데이트팝과 함께 하고 있다. 재계약률 역시 80%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추세이다. (20대 타겟 온라인 광고를 원하시는 사장님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처음 영업 필드 테스트를 하고, 시장에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좌절했다. 우리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포인트는, 로컬 사장님들이 IT에 대한 지식이 생각보다 낮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고안한 기술적인 솔루션이 시장에서 생각만큼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사장님들은 기존 로컬 광고 시장을 거쳐간 대형 플레이어들 때문에 온라인 마케팅에 대한 불신이 컸다.
수정한 모델을 다시 가져가고, 기능을 개발하고 앱을 출시했을 때엔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판매가 안돼서 또 좌절했다. 우리 유저가 몇십만인데, 첫 달 구매가 100만 원도 안 났다는 사실에,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처음 필드 테스트를 했던 2016년 3월 이후로 1년 반 만에, 본격적으로 모델이 돌아가기 시작한 10월부터 월평균 15~2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BEP를 달성했다. (짝짝짝!)
큰 변화는 아니지만, 회사에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 사무실을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게임기도 있다!)
- 연차가 생기고, 임원진만 하던 토요일 근무가 곧 없어지고, 월급도 10% 오른다.
- 2년 근속한 전 직원이 2주 휴가를 다녀왔다.
나에게는 이런 변화가 있었다.
- 적어도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과 위기감에 밤잠 설치는 일은 없어졌다.
- 가족들에게 "15명 직원들 월급 줄 만큼은 벌어요."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적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 같기도.. 일단 이 작은 변화들에도, 나도 사람인지라 안 좋을 수가 없다.
실제로 지난 6월 BEP 달성을 기념으로 2주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 운영진 사이에서 개인별로 가지고 있는 KPI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가장 먼저 휴가를 갈 수 있었다.
휴가 가기 직전 우리가 처음 창업했던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의 사무실에 갔다. 머리 식히고 싶을 때 나가서 캐치볼도 하고, 농구도 하던 그 코트 벤치에 한참을 누워서 생각했다. 그리고 공동 창업자들에게 "나 여기 왔다-" 하고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고 2시간을 걷다가 들어온 적이 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지난달 매출액을 보고 내가 누웠던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왔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전혀. 그 안에서 잡음과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미친 듯이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리는 것은 좋았으나, 조직에 부하가 생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top down식 의사 결정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게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스타트업의 생명은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인데, 우리가 그러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처음에 서버를 구축했던 개발자가 퇴사하고, 팀 내에서 분위기가 안 좋았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애써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끝이 다 좋을 수 있을까. 그저 끝이 아쉬운 팀원에게 미안하고, 잘 버텨준 팀원들에게는 고맙다. 나와 조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창업자들이 이번이 첫 사업이다보니, 솔직히 우리가 처음 창업할 때 그림을 아주 멀리까지 그리지는 못했다. 시장의 반응에 따라 다른 계획을 빠르게 세웠어야 했는데, 성과를 내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했다. 그래서 너무 매몰되어 있던 탓에 팀원들에게 더 큰길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다.
결국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과제인 '생존'(스타트업의 생존과 성공)에 성공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내실을 다지며 점진적 성장을 할 것이냐, 외부 자금을 유치하면서 파괴적 성장을 꾀할 것이냐.
물론 처음 투자자와 했던 약속도 있기도 하고,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꽤 오래전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읽고 메모해뒀던 문단이 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것도 없거나, 무언가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래는 지금보다는 낫겠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아마도 '우리가 우주적 규모의 특이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한 번밖에 없는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것들(우주, 지구, 조국, 회사, 인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이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피터 틸은 말한다. 우리의 미래의 가능성은 파괴적으로 몰락하느냐 파괴적으로 돌파하느냐 중에 하나인데,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라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만으로 3년이 지났다. 고객, 비즈니스, 조직, 가치..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요즘이다. 동시에 식량을 구비하고 연료를 싣고 저 먼 바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업 방향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회사를 나갈 것이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것이고, 누군가는 응원을 해줄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이 자리에서 또 한발 한발 내딛을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저기 저 먼 곳에 있는 꿈을 좇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