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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해 Oct 18. 2015

나는 어릴 때부터 50살이 되고 싶었다.

영화 <인턴>, 어른에 대한 이야기

영화 <인턴>을 보았다. 18개월 만에 회사를 엄청나게 성장시킨 스타트업-여자-CEO와, 4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 은퇴한 70대-노인-인턴의 회사 생활이 담긴 잔잔한 이야기였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뻔하고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아 허점투성이인 영화지만, 지금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여자-CEO 신동해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기에, 브런치 첫 글로 당첨.


어릴 때부터 나는 빨리 50살이 되고 싶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말을 또 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대체 왜?"

"으앙, 나는 쭈글쭈글 주름지는 거 너무 싫어~"


내가 얼른 50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2, 3학년 때 쯤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환경과 가정사로 인해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했지만 그 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불신과 서러움이 깔려 있었다. 그런 유년 시절의 나는 단지 '50대의 나는 좀 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이지 않을까?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다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래도 50대에는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괜찮은 가정을 꾸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지금은 그 이유가 좀 바뀌었다. 특히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크게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뻔하게도 '어른의 연륜'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회가 정한 관습, 틀 같은 것들에 저항하는 마음이 컸는데 그 이유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때문이었다.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고, 가끔은 나보다도 멍청해 보이는 - 물론 이건 그때의 오만이었다 - 사람들에게 어른 대접을 해주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런 어른들에게 적극적으로 반항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한 적도 더러 있었다.


나도 20대가 되고,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생각이 바뀌긴 했다. 물론 시간이라는 관성에 의해 본인 의지나 정신적 성숙도와  상관없이 나이만 먹은, 이른바 '꼰대'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만, 정말 어른다운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아마 내 스스로가 보잘 것 없고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생긴 반비례적 생각일 수도 있다.


벤은 점잖은 겸양으로 모두를 대하되, 절대로 저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에서 이런 존재는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 <인턴>에서 70세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은 사소한 행동부터 위급 상황의 대처까지 깊이와 재치 있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40살 어린 CEO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상사에 대한 예우는 깍듯이 지키면서, 점잖은 겸양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되, 절대로 저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처한 모든 상황과 주변 인물들을 저 멀리서 관조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결국은 모두 관여한다. 그게 바로 노련미일 것이며 주변 사람들은 그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자신들도 모르게 길들여진다. 그의 적절한 처세 덕에 회사 내에서 인기남으로 등극하는 것은 물론 까탈스러운 줄스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되는데, 70년의 인생 경험과 40년의 회사 생활 속에서 숱한 상황을 겪으며 깨우친 지혜이리라. 그런 그에게는 성숙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연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랄까.


매일매일  정신없고, 일에 쫓기고, 내 감정에 충실한 나는 당연히 벤보다는 줄스의 모습에 가깝다. 아마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더 그녀에게 공감했을 것이며 벤 같은 친구가 생긴 그녀를 누구보다 부러워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벤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 이거보단 나은 사람이에요.


극 중간에 줄스가 벤에게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 있다. 스포일 수도 있으니 내용은 자세히 얘기할 수 없지만, 그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정말로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늘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 '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였다. 사업을 하면서 몸이 지치니까 사소한 감정은 무뎌지고, 반면에 일을 대할 때는 너무 예민하고 괴팍해진 내 모습이 처량할 때 하곤 했던 말이었다. 그러니 너무나도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달까.

보통 스스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이후이다. 줄스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사람을 모으고, 주변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 아이였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목표가 생기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면서 점점 주변에 사람이 줄었다. 고맙게도 아직 나를 찾아주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만나지 못한다. 나의 미안함과 상대방의 서운함은 쌓여만 가고, 그렇게 나는 '바쁜 애'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나 이전엔 주변 사람들에게 참 잘하는 사람이었는데..'하는 씁쓸함이 언제나 있다. 그래서 슬프다.


그렇다면, 그렇게 내가 시간을 쏟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몰두하고 있는 회사에서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사실 회사에서 결정하는 문제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단순히 어떤 논리가 부족해서, 옳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에서 이견이 생기면 정말 결론을 도출하기가 어렵다. 또 아무리 유쾌하고 팀웍이 좋다는 우리 팀이지만, 일에 치여 늘 예민한 상태이다 보니 한번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감정적으로 번질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정말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나? 그때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그냥 들어줄걸, 늘 후회한다.


거기다 사실 최근에 함께 일했던 친구들 몇몇이 나가면서 좌절감이 더 크기도 했다. 그들에게 분명 문제가 있었고, 주변에서는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주지만 그래도 내 책임이 없을 순 없다. 그간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지내왔지만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어떤 대표, 어떤 코파운더, 어떤 언니, 어떤 사수가 되어야 하는지를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몰랐으며, 아직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간 코파운더가 아닌 '직원' 혹은 '부사수'와 함께 일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늘 열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룬 줄스는 능력 있는 CEO이다. 그런 그녀도 힘들다.

노련한 사람은 여유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렇게 생긴 여유를 통해 주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까지 미친다. 나는 지금 사적 영역이든, 공적 영역이든 전혀 그러질 못한다는 의미에서 미성숙하다. 내 안에서,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서 일에 치여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생기고, 뭐가 옳은지 그른지, 뭘 가질지 버릴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실수를 연발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탓에, 가끔 참 힘들다. 이게 혼자 일을 저지르고 혼자 불을 꺼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그 고통은 정말 크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자책감이 나를 짓누르고, 망가뜨린다. 그래서 정말 하루가 머다 하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 겪는 이 고통을 성장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훗날에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세월은 연륜의 필요 조건


어른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특히나 지내온 시간을 곧 권위로 생각하는 꼰대들에게는 정말 해주기 싫은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간의 힘은 강력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그 나이대에 비해 많은 경험치를 쌓은 젊은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 동안  체득할 수 있는 연륜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연륜을 갖추려면 세월이라는 녀석이 필요조건인 것이다. 수백 가지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 사람과 직접 겪어본 사람의 경험치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런 연륜이 바탕이 되어 그리고 나보다 조금 덜 성숙한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결국 어른은 조금 덜 성숙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말 말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50살이 된다고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나이  때쯤 꽤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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