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이별 여행, 가장 슬프고도 따뜻했던 배웅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by 오늘도 가장
(작가의 말) "늘 아이와의 즐거운 주말 여행기만 전해드렸는데, 이번에는 조금 차분하고 깊은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아이와 함께였기에 배울 수 있었던, 조금 특별했던 3일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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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대신 적막이 감돌던 6시간의 길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 낯설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아이와 함께 짐을 꾸리고 차에 탔지만, 차 안에는 여행의 설렘 대신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해 6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3일간의 짧고도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참 소중했던 분이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시골로 내려가는 내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내의 옆모습을 지켜보는데 마음이 참 아려왔습니다.

아내에게 그분은 단순히 '어른'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유년 시절, 시골 특유의 투박함 속에 숨겨진 유난히 따뜻하고 깊은 사랑을 그분에게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거친 손마디로 전해지던 투박한 정(情), 말보다는 눈빛으로 건네던 묵직한 사랑. 아내는 그 따스한 온기를 먹고 자랐기에, 지금의 이 상실이 더 시리고 아프게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2년 만의 재회, 그리고 아이가 된 어른들

사실 마음이 더 쓰였던 건, 딱 2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그분의 평생 짝이셨던 분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홀로 남아 계절을 견디셨던 그분은, 결국 짝이 떠났던 그 계절이 다시 돌아오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긴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3일간의 여정 끝자락, 유골함이 안치되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계신 아내분의 유골함 바로 곁으로, 그분이 나란히 눕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두 분이 다시 만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건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의연하고 강해 보이던 어른들이었지만,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 엉엉 우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해져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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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빈자리를 채운 아이들의 온기

그렇게 어른들이 아이가 되어 울고 있을 때, 정작 우리를 위로해 준 건 진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번 3일간의 여행에는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또래의 조카들도 함께했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어른들의 침통한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반가워 까르르 웃으며 장례식장 한편을 뛰어다녔습니다.

엄숙해야 할 공간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그 천진난만한 생명력이 슬픔에 잠긴 우리를 숨 쉬게 한다는 것을요. 어른들은 눈물을 훔치다가도 아이들의 재롱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아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등을 토닥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를, 아이들의 온기가 채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 할아버지도 이제 흙이 된 거야?"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문득 물었습니다.

"아빠, 그 할아버지도 이제 흙이 된 거야?"

얼마 전,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아내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흙이 되는 거야"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엄마가 흙이 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라며 글썽였는데, 그 대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봅니다.

"응, 할아버지는 따뜻한 흙이 되셔서 푹 쉬실 거야."

제 대답에 아이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흙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른인 저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흙으로 돌아가 다시 나무가 되고 꽃이 되는 그 자연스러운 순환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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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을 달려 마주한, 3일간의 이별 여행. 그곳에는 눈물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떠나는 이의 마지막 뒷모습과,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의 앞모습이 공존하고 있었죠. 흙으로 돌아가는 분의 곁에서 흙 위를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슬프지만 따뜻했던 3일간의 배웅. 할아버지는 따뜻한 흙이 되어 우리를 지켜보시고, 아이들은 그 흙을 딛고 더 단단하게 자라나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겪어낸, 그리고 앞으로 겪어낼 삶이라는 여행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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