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꿈의 무게를 버리고, 현실의 무게를 지고 선 곳

희망 회로가 만든 착각

by 오늘도 가장

멈추지 않는 카운트다운, 블로그의 한계

블로그의 조회수가 치솟던 날들, 저는 잠시나마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머물렀습니다. 아이의 "아빠, 이거 진짜 맛있어!"라는 말은 이 세상 그 어떤 칭찬보다 달콤했고, 무너졌던 제 자존감을 하루하루 쌓아 올렸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제 착각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는 제게 '글쓰기'라는 소중한 자산을 주었지만, 매달 불어나는 전세 이자를 막아주는 방패는 아니었습니다.

블로그 조회수가 하루 2,000회를 넘긴 날도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벌어본 수익은 딱 한 번, 하루 만 원.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몇백 원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2000명이 제 글을 읽어주는데, 수익은 단돈 몇백 원. 반면, 전세 이자와 고정 지출로 매월 200만 원 이상이 숨만 쉬어도 통장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이 아이러니가 저를 옥죄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 상황은 커피 한 잔도 사치였습니다. 한동안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것을 멈췄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커피 한 잔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짙게 깔렸습니다. 하지만 매일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려면,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유일한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잠을 이기기 위해 저는 저렴한 원두를 사서 드립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돈은 많이 아낄 수 있었지만, 저의 간절함과 가장의 미안함이 매일 새벽 드립 필터 위에 함께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앞뒤 재지도 못하고, 매일 블로그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처음 아내와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행복해했던 그 모습을 보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더 많이 와줄까'라는 생각만이 가득했습니다. 음식 재료조차 제대로 살 돈이 없으면서도, 최대한 있는 재료들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고, 사진 찍고, 글쓰는 것이 하루의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퇴직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잘해봐야 1년 남짓. 그 1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저는 과거의 저를 자책했습니다. '왜 투자 공부나 자격증 공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안 했을까.' 그 한심함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이기까지 했으니, 그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블로그 효율성 착각, 유튜브를 시작하다

블로그 수익이 간절해지던 어느 날,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 많은 효율을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요리 블로그를 위해 매번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해야 했는데, '어차피 사진 찍는 김에 영상으로도 남기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영상으로 남기면, 그 영상에서 다시 캡처만 해서 블로그에 활용할 수 있으니 시간 소요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블로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마자, 저는 아예 영상을 찍고 유튜브까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이왕 노력하는 김에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내의 조건 없는 응원 덕분에 '돈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롭고, 나는 뭔가를 해내고 있는 존재'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착각은 저에게 섣부른 용기를 주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24시간의 압박감 속에서, 저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조명도, 값싼 마이크도 없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주방과 저의 목소리가 전부였습니다. 굳은 손으로 카메라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이번에는 뭔가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24시간을 갈아 넣은 후의 허탈감 (유튜브의 냉정한 현실)

블로그는 글만 쓰면 됐지만, 유튜브는 달랐습니다. 영상 하나를 완성하려면 꼬박 하루를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낡은 컴퓨터에 저렴한 편집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유튜브 강의에서 배운 대로 컷 편집을 하고 자막을 넣었습니다. 아이가 잠든 새벽 3시까지 이어폰을 끼고 씨름했습니다. 제 24시간을 모두 갈아 넣어 만든 영상을 올리는 순간에는, 마치 신작 영화를 개봉하는 감독처럼 설렜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올린 영상의 조회수는 대부분 200뷰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구독자 300명 정도는 만들었지만, 수익화를 하기 위해서는 1,000명이라는 아득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진짜 요리사가 될 것도 아닌데, 요리 유튜버, 블로거가 되어 계속 요리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현실이 웃프게 느껴졌습니다.

유튜브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허탈감을 넘어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루에도 몇번이고 조회수를 확인하고 있는 한심한 저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요리를 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작지만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해보지 못했던 사람이 뒤늦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요리라는 것을 해봄으로써 지금은 제가 아내와 아이를 위해 주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생존을 위해 시작한 요리가, 저를 '좋은 가장'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통장 잔고 바닥에서 만난 물류창고

어찌 됐든 다시 이야기로 돌아서면, 유튜브를 하면서 진짜 통장에 돈이 거의 바닥날 때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고, 우연하게 물류창고 일용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달콤한 착각에서 비로소 깨어나야 했습니다. 퇴직금 1년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았고, 이제는 정말 '지금 당장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할 때였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당장의 위기를 막기 위해, 저는 가장 고통스럽지만 가장 확실한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저의 40대에게 주어진 가장 절박한 명령, 그것은 바로 물류창고 일용직이었습니다.

저는 물류창고로 뛰어들었습니다. 제 삶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가장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정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단기 1일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뛰어들었고, 4시간 일하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현장 직원에게 "혹시 나중에 일이 또 있으면 연락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절박했지만, 하고 싶다고 매일 마음대로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일이 있을 때마다 4시간씩 일했고, 그 간절함과 성실함이 전해졌는지 나중에는 정식으로 매일 4시간 고정 알바를 요청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수많은 박스들. 몸은 고되고 머릿속은 온통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된 노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육체적인 피로를 견디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이 필수였습니다. 무력감과 절망으로 무질서했던 제 삶에, 노동의 성실함이 새로운 질서를 심어주었습니다.

저는 창고안에 탁한 공기를 마시며 되뇌었습니다. "이 고된 성실함이, 언젠가는 내 꿈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아이 웃음은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