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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사용기

-길고 허무한 에세이-01

by 빛나길

키보드 앞에 앉는다. 단지 손을 놀리는 것과 글을 적는 것은 다르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헤매었던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헤맨 발걸음마다 흘린 눈물들이 나라는 황무지를 비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지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또


-1-

자각하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은 온통 구린내로 가득하다. 국민학교에도 입학하기 전, 젖니조차 빠지지 않은 친구의 앞니를 뽑아버린 주먹질이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고독한 존재로 태어나 한 줌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것들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로 친구가 매일 갖다 주는 공룡 장난감을 거부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 온 손버릇 나쁜 사람들을 일찍 본 탓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도 당시 볼 수 있었던 세계 안에서, 나는 헤매고 또 헤매었을 뿐이다. 굵직한 것들은 깊은 흔적을 남길 뿐이다. 흔적을 더듬어 세계를 재현하는 일은 빈번하고 쉬운 포기를 전제로 한다.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이 별나기 때문에 이렇게 혼탁한 기억이 되어버렸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사실의 실존이다. 친구네 집에서 처음 참치김치찌개를 먹은 날로 기억한다. 못 먹고 자란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넘치는 식탐을 그날 처음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한다. 친구의 아버지가 퇴근하고 온 단란한 식탁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게걸스러운 저녁을 했다. 혼자서 온 냄비의 찌개를 다 먹으면서 온통 빠져버린 밥알들에서 생물체라면 응당 느낄 민망함이라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지금도 그날 그 저녁의 눈빛들이 생생하다.


어머니를 사랑했는가를 묻지 말아 다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칸칸이 나뉜 충효일기장에 ‘어머니의 생신’을 주제로 앞뒤를 빼곡하게 채워 8장 분량의 일기를 적어 냈다. 선생님은 상을 받을래? 아니면 이걸 가정통신문으로 나눠줄까? 물으셨다. 그 어린 나이에도 한 장짜리 상장보다. 내 최초의 글을 출판물을 추구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사랑을 구했으나 받은 것은 모래더미 같았다. 아니, 모래는 쓸 데라도 있다. 요즘 가사노동을 하며 썩어버린 쌀을 마주했을 때의 허탈함에 가깝다. 사랑에 목이 마를 시기에, 그 갈증 앞에서 받은 것이 썩어버린 쌀 뿐이라면, 당신은 그걸 입에 넣겠는가. 아니면 쥐고 있겠는가?


이전 문장에서 당신이 뭐라고 답을 했던 상관없다. 결론은 결핍이니까. 그래, 이미 결론이 난 삶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을 바꾸기 위해, 음수인 결론을 단지 양수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한 고민의 깊이를 알아줄 사람을 희망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희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오래도록 살고 볼 일이라는 것이다. 죽지 않고 어떻게든, 아니 백 번이나 만 번쯤 양보를 하자. 어떻게든 살다가 보면 세상이 음수와 양수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0. 그리고 무. 세상에 내가 살고 난 흔적을 모두 지우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란 생각을 한다. 누군가 알려준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산 결과가 허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라는 개념이 낯선가? 음도 양도, 그 어떤 척도로도 재어질 수 없는 삶을 사는 숭고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있다. 어떤 기록이나 흔적도 남지 않는 무의 삶은 슴슴하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어떤 맛에도 비할 데 없는 ‘고차원적’ 삶이다. 그래서 무 요리가 어렵다.


초인이길 바란다. 하다못해 초인을 낳기 위해 모든 것들을 불살라야 한다면, 마지막이어도 좋고, 처음이어도 좋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들을 끝장낼 수 있다면, 순서는 상관없으나 어중간한 것은 싫다. 전으로 지나간 슬픔이, 후로 남은 슬픔이 모호하게 남은 그 순서만은 싫다.


엄청난 빈도로, 가혹한 폭력에 노출되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나. 그것만큼은 쉴 새 없이 적을 수 있다. 아무도 믿기 힘든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그 결과를 묻는다. 결코 원인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불안과 공포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데 양분이 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잘 맞지 않았다. 만화를 그리려고 해도 나는 선 하나 제대로 그을 줄을 모르니, 머릿속의 것들을 밖으로 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음표를 읽을 줄 모르는데 악기는 과람하고 여유가 없는데 단전에서 나올 노래는 뒤꿈치보다 더 아래에 있더라. 그래서, 마침내 찾아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그것은 이렇게 깊게 침전한 후에야 할 수 있는, 내 안의 것들을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뿜어낸다는 것은 의지와 관련이 있다. 동시에 의지와 깊은 연관은 없다. 그래서 적고, 그렇기에 적는다. 끝에 가면 마침내 적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적는다.


-2-무면허 라이더였던 시절이 있다. 그때는 겉멋은 물론 시끄럽고 빠르고 예쁜 것이 지상가치였다. 그걸 ‘다룬다’ 기 보담은 매달린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던 시절, 그 무미건조한, 쩍쩍 갈라진 가뭄 같은 피폐한 삶의 순간에 ‘내가 살아도 되는가’ 혹은, 앞으로 ’이런 삶을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아직도 나오지 않은 답을 찾아 헤매면서 멍청하게도 걷지도 읽지도 않았다. 온 동네에 매연과 소음을 흩뿌리면서 헬멧 안의 익명성을 알지 못하고, 내가 내는 악취와 소음에 반응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흘끗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취하려고 달렸다. 멍청했고 모자랐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바이크를 타며 알게 된 사실 중의 하나. ‘바라보는 곳으로 간다’를 체득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그래, 지금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부산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으슥한 골목에 바이크를 주차했다. 어떤 인간이 바이크를 끌어다 자기가 열고 닫을 수 있는 셔터 안에 넣어버리고, 나를 불러서 자기의 중국산 스쿠터랑 바꾸라고 한다. 번호판 등록을 안 해서, 면허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래 결국 내가 지고, 울면서 많은 겨자를 먹었다. 다시는, 그런 위치와 상황에 스스로를 두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 뒤로 다짐육을 잘 안 먹는 것 같은데, 이건 좋은 습관이다. 지금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이건 머리가 큰 탓이 아닐까. 여전히 나쁜 인간들을 차고 넘치는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 교집합의 부분이 사라진다. 참고해 두라. 06시 기상 22시 취침.


마찬가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숱하게 겪었다. 성인오락실에서 1년 가까이 일을 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 늘 기본급만 받았다. 친구는 500만 원을 벌 때에, 200만 원을 받았다. 천성이 못된 놈들에게 맞추거나 아부할 수 없는 성격인가 보다. 여하튼, 험하고 더러운 일, 게다가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면서 200만 원을 받고 다니겠는가? 더 크고 많은 돈을 좇아서 치킨집으로 옮겼다. 치킨집 사장 놈도 가관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서울에서 취직 못해서 내려온 놈이었는데 빚 내고, 지원받아서 닭집을 차렸다. 운영부터 발주, 블로그까지 전부 짬 시키는데 돈도 안 되고, 그만두겠다고 하니, 아 글쎄 이놈이 자기 카드를 주면서, 갖고 싶은 바이크를 할부로 구매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 바이크로 경성대에서 감자를 포대에 담아서 동아대까지 갖고 오고, 이래저래 믿기 힘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정말 믿기 힘든. 일테면 정비가 끝난 미끄러운 빗길에서 아웃 인 아웃으로 코너에 진입하는데 앞타이어가 그대로 미끄러져 바이크는 가가가각 소리를 내며 옆으로 갈리고(?) 있고 그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바이크가 보도블록에 박을 때까지 ‘정좌해’ 있었다. 달리는 트레일러의 바퀴를 고정하는 볼트가 튕겨 나오지 않을까 겁을 내는 바보이기도 했고, 달려오는 버스를 발로 차면 내 발모양만큼 버스가 찢겨나갈 것 같은 느낌(이 수많은 느낌의 반복에 불고하고 버스를 차지 않은 스스로를 얼마나 대견스레 여기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나 후에 적도록 하겠다.)을 받거나, 마찰력이나 토크, 접지력을 떠나서 바이크를 타고 유턴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어떻게 출고가 3,000만 원이 넘는 바이크를 몰고 다녔는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사지육신이 붙어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고가 열 번 넘게 난 것 같은데 다리 하나 부러지고 식물인간 한번 된 것이 고작이라니, 세상이 주는 사랑을 갚을 길이 없어 요원하고 그때 죽지 않고 깨어난 까닭은 세상에 뭔가를 남기기 위함은 아닐까. 너스레를 떤다. 메가맥을 두 세트 먹고도 모자라 불고기 버거까지 입가심으로 하나 먹던 내가 빅맥을 반도 못 먹고 남긴다. 84Kg, 3대 400kg을 넘긴 내가 46킬로가 되어 눈앞을 스치는 버스를 놓친다. 원래 버스랑 200m 대결을 해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재활은 성급했다. 머리는 차치하고 부러진 허벅다리가 ‘붙을’ 즈음이 되자 ‘강함’에 대한 집착에 스스로를 내맡겼다. 오전에 복싱을 가고, 오후에 체대입시를 갔다가, 체대입시를 마치고 크로스핏을 갔다가 유도장엘 갔다. 강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강했기 때문이다.


체급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또한 ‘문과적’ 두뇌를 가졌기 때문인가. 근데 왜 프로부터 아마추어까지 체급을 나누는가 지금은 이해를 한다. 처음 복싱을 시작했을 때 딱 그랬다. 어려서부터 검도로 단련된 거리감각, 체중을 싣는 느낌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했다. 링 위에서 선수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우리 체육관은 이제 셀럽이 된 ‘신종 X’이 다니던 체육관이다. 물론 그의 앞날이나 커리어에 관장님이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욕심이 그득그득 들어찬 그가, 욕심이 곪지 아니했을 때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여가 그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다닌 지 3일 차에 스파링을 했다. 호기롭게, 같이 다니던 친구가 먼저 올라가서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을 상대로 스파링을 했다. 그 친구도 태권도를 5년 넘게 하고, 선수부까지 준비를 했었다(고 들었다.) 한 대도 못 때리고 3라운드 내내 얻어터지고 내려왔나? 2라운드 내내 터졌나? 내 일도 아니고 중요한 일도 아니라 기억을 못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한 대도 맞지 않고 2라운드 만에 그 친구를 넘어뜨렸다. 관장님이 오~~!!! 하면서 글러브를 끼고 올라왔다. 돈을 버는 주먹은 빠르고 예리했다. 매웠고 정확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관장님의 주먹이 내게 깊이 꽂힌 그 찰나. 리턴하는 주먹보다 빠르게 뻗어 관장님을 눈탱이 밤탱이로 만들었다.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주먹세례를 퍼붓는 그에게 꼭 같은 타이밍으로 한 방 더 넣었다. 스파링을 가장한 일방적 폭행, 혹은 스트레스해소가 끝나고 나를 물건이라고 했다. 나는 물건이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그 후로도 미트를 친 적이 여러 번 있다. 잽,잽을 외치고 내가 똑바로 못 하면 예고 없이 카운터를 날리던 그의 글러브, 가드 사이로 주먹을 세로로 꽂아 턱을 ‘턱’ 하고 만졌다. 그 이후로 누구와 싸워도 ‘질 수는’ 있지만, 일방적이거나 허무하게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유도에서도 발현되었다.


유도도 여섯 달 정도를 다닌 것 같다. 유도를 다니면서, 승급심사 한 번을 해본 적 없지만, 2단 이하에게 져본 적은 손을 꼽는다. 한번 지면, 이내 일어나 그 기술을 다시 유도하고 카운터를 꽂는다. 일테면, 허벅다리 후리기가 들어오는데 무릎을 가슴까지 닿도록 점프를 해서 상대가 중심을 잃게 만든 후 착지하면서 자연스레 상대의 등을 지면에 닿도록 유도한다. 한때 무도대학으로 날리던 동아대학교 무도학과 유도특기생과 누르기 싸움을 이겼다. 아마 그 싸움에서 지고 그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부산시 유도대회 대학생부 3위인가 4위를 한 친구가 있었다. 물론 나보다 한참 어렸으나 맞선다면 ‘부러뜨릴’ 밖에 이것 보라. 얼마나 폭력적인 사상인가. 그렇게 숱한 겨루기, 혹은 대련을 하면서 유도 기술을 써본 적이 없다. 물론 배우긴 했으나 대부분 상대의 중심을 역이용한 되치기가 주특기였고, 대학생부 랭커라면 한 번 써볼까 하며 업어치기를 시도하려는데, 도복을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과했던가. 끌려온 그는 내 어깨에 앞니를 부딪혀 치아가 파절 되었다. 유도장에 등록하면서 보험을 들었으나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추접한 것들. 인생이 그렇지. 소송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걔네랑 상종을 안 했다. 이 외곬은 어쩔 수 없는 영역의 것임을 이제는 안다.


크로스핏에서는 3인이 하는 기록 와드에서 여성분과 단 둘이서 코치(이 호칭이 맞나?) 둘이 포함된 드림팀에 간발의 차로 와드 2등을 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차피 여성이나 남성이나 약한 것은 매한가지니까. 체대입시를 했다. 그래, 언제나 좌전굴이 문제였다. 유연하지 못한 것, 사고에서나 삶에서나 사상에서나 그 모든 것에서 유연하지 못한 것은 고질적이다. 고질라도 아닌데 왜 유연하지 못한가. 아직도 유연하지 못하다. 아마 내 다리가 일자로 찢어지거나 남의 정수리를 내려찍을 수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손을 놀리진 않았겠지. 발로도 타자를 쳐보려고 노력했을 듯.


이렇게 적을 썰이 많다. 고양이를 잡는다거나, 처음 해보는 격투기에서 강점을 드러낸다거나, 반대로 친구의 추천으로 다니기 시작한 태권도장에서, ‘유연하지 못해’ 관장님 낭심을 가격하고 그대로 튄 것. 관장님, 아직도 죄송합니다. 잊지 않고 있어요.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 벌써 부당해고를 두 번은 다툰 것. 잘은 모르겠지만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어렴풋이나마 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산의 영역은 아닌가.


부모를 돌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시기가 있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것들을 행함에 있어서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매일 명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명상들이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몸에 찬 독이 너무 많아서 일상을 방해받는다. 아랫니였던가? 윗니였던가? 안에서 썩고 썩어버린 이를 뽑는 순간에 눈동자의 초점이 맞아떨어지는 그 놀라운 감각을 잊지 못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혼자 어디까지 견뎌야 할 것인가를 알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모든 동년배들을 바라볼 때마다, 기깔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명쾌한 답을 내리진 못하고, 또 그렇게 내려진 답이 ‘객관적 옳음‘을 갖지 못해서 섭섭하려다가 그만두곤 한다. 사람들이 붓고 있다. 천천히 오래 아프고 있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 부풀거나 곪아가며 썩는 것을 보면, 그게 곧 암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원으로부터의’ 영양 공급이 끊어지고, 일정하게 정해진 온도와 습도 안에서, 순환하지 못하는 세포들의 하는 발악. 그래, 이거 암 아닌가? 성장을 멈추어야 할 구간에 진입하고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으니 세포가 과잉되어 썩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비정한 세상을 살아간다. 세상이 비정한 것인지, 삶이 비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삶은 또 나름의 모짊을 발휘해 이어진다. 사람이 결코 먹어선 안 될 것들을 버젓하게 판다. 돈을 받고 판다. 이 피상성이 너무도 슬퍼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피상성이 슬퍼서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일장과 일단이 있는데, 그를 설명하는 일의 고루함은 나를 병들인다. 하나의 장점과 하나의 단점. 사랑하는 사람도 완벽하지 않고 낳아주고 거둬주신 부모님도 완벽하지 않다. 일개 물질이야 오죽할 일이고, 무엇에든, 무엇이든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왜,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고민의 마지막에는 체념이 있을 것인가. 체념을 양분으로 삼는 분노가 있어서 기어이 세상을 마주해서 싸워낼 것인가. 다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고, 다 싸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양분도 과하면 썩는다. 암 얘길 했는데, 맥락은 같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걱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걱정이란 무엇인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질문이 쌓이면서 답이 사라지는 부조리를 본다. 어떤 글을 읽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하기 위해서 어떤 글을 읽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떤…..이런 과잉이 또한 암인 것은 아닐까.


지나간 미숙을 떠올리며 이불을 발로 걷어차곤 한다. 더 이상 탓할 시대가 남지 않은 느낌인데, 우리는 왜 이런 시기에 여기에 태어났는가. 묻곤 한다. 물어도 대답이 나올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묻는다. 이것은 어리석음의 발로인가. 아니면 공허에 대한 호오인가. 적어진 글들이 말을 거는 꿈을 꾸곤 한다. 잘 적은 글을 거듭 읽다가 보면, 자식을 대하는 대견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 계획은 없다.


자녀 계획이 없다는 소리를 하늘 무너지는 소리로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단념시키기란 쉽지 않다. 우리 세대가 가진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존재들. 자기 앞의 생, 자기만의 방. 수없이, 숱한 어려움과 슬픔이 있는데, 왜 우리는 서로를 공감하지 못하나 참담한 느낌만이 엄습한다.


비가 내린다. 어린 시절에는 비와 관련해서 글을 적었다. 모자람과 모남을 알기 때문에, 나만 때리셔도 되는데, 나와 더불어 온 세상을 다 때린다고. 죄책감만 커지게.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된 까닭으로 이골이 난 탓인가. 이젠 내리는 비를 찾아가서 맞자고 반려를 꼬드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이 가혹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서인가. 따지기 싫은 흐뭇함이 있다.


송사가 많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제약회사와의 송사이다. 이 송사에서 티끌, 한 점 티끌이라도 묻게 된다면, 이후의 민사상의 책임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의 영역에서 보자면, 다툼의 여지나 논쟁의 여지는 적다. 문제는 언제나 내 상식 밖에서 춤을 추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숱하게 나를 스치운다. 스치는 것들 중에서 받아들이는 것만 나의 세상과 우주가 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상대들도 내가 상대해주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읽고, 적으면서 우주의 비밀을 깨쳐가고, 그렇게 깨친 비밀들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 희망한다. 소망한다.


오늘, 나를 지탱해 온 오랜 철학 하나를 놓아 보낸다.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한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인 상황에서 모두의 공리를 추구하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방향성을 잃은 버둥거림이다. 불가능한 것, 나의 삶과 나의 체계를 놓치고서, 어떻게 공리를 추구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어찌할 수 없는, 어찌할 바 없는 일들이 나를 습격하고, 그렇게 습격된 일들이 다시 나를 쌓아 올리고 밀어젖힌다. 의도와 다른 언행들이 발현되고 그렇게 나는 평가되고 또 비참하게 내몰린다. 공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지나간 후에 공리를 추구해도 될 것 같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지나고 뉴라이트 사상에 대해 공부했다. 그래, 이렇게 나도 좌절하고 포기하고 병들 뻔했구나. 다시 추스른다. 다시 움켜쥔다. 모두를 널리 이롭게 하리라.


이전 세대에서 흔히 ’초능력‘ 이라고 생각되던 능력들은 사실은 빈약한 상상력의 발로다. 투명해지면 좋을까?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고통들을 나열해보려고 한다.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나.마. 나은 것은 바로 우리들 중 대부분이 도시에 산다는 것 정도. 그러나 투명인간의 쓸모는 익히 적다. 무엇을 들지도 못하고, 존재를 없앨 수도 없다. 적외선, 열선, X-Ray, 얼마든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는 수많은 감시장비들이 나왔다. 원하는 시간만큼 투명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나의 실존을 증명해야 하는 ‘알리바이’ 앞에서 허망하다. 맨발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하지만 바람에 열릴 리 없는 육중한 철문을 통과하고, 자동문의 센서는 열릴까 의문스럽다. 열린다고 하더라도 아무 의미 없이 열리는 자동문은 충분한 의심의 근거가 된다. 그렇게 이동해서, 목표를 처치하기 위해 칼을 든다. ’누가 보더라도‘ 칼이 의지를 갖고 목표물로 향하는가? 초자연적 현상, 혹은 또 다른 초능력에 다름 아니다. 그래, 어떻게 목표를 처치할 것인가. 피가 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총을 어떻게 숨길 것인가? 그리고 다시 뛰어서, 알몸 차림으로 사건현장을 벗어날 것인가? 투명인간이 지나갈 것이라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과 부딪힌다. 그가 들고 있던 커피가 쏟아진다. 뜨겁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놀라기 전에, 어떤 사람이 투명인간을 ’ 보았노라 ‘며 고함을 친다. 결국, 쓸 만한 곳은 여탕에서의 관음이 아닐까? 차라리 포르노를 보라.


이전 세대에서 느끼지 못한 ‘초능력’ 그러니까 이렇게 포르노가 범람하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니 관음의 필요가 있다. 아직도 버버리맨이 있으려나? 아니, 것보다 버버리 코트 안의 알몸을 ‘보여주는’ 것으로 흥분하던 그 시절 수많은 버버리맨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그래, 거기서 자위라도 하던, 그렇게 왜곡된 사람들, 가여운 존재들이 지금은 강시나 미라, 망태할아버지마냥 옛 시대의 전유물은 아닐까. 대세는 외계인과 좀비, 바이러스다. 흘러가버린 한때의 공포들이여. 그리울 수 없는 것들의 그리움. 향수는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래, 사실 향수라는 것은 시공간의 복합체다. 시간과 공간. 둘을 동시에 그리워하는 것. 고통스럽다. 시간을 배제한 채로는 공간에 도착해도 헛헛함이 메워지지 않는다. 공간은 이미 변해있다. 시간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염동력? 텔레파시? 다음 초능력을 얘기해 보기로 하자. 텔레파시라. 혹시 ‘이동전화’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초기억’이라는 것은? 우리는 기억의 외주를 통해서 모두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마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헐크를 제외하곤,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 싸운다. 기껏 해봐야 건물이 조금 부서지는 정도. 근데, 디씨 안에서의 파워 인플레이션은 그냥 지표면에 손을 ‘꽂고’ 달리기만 반복해도 지구가 동강 날 기세다. 그래,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적응해야 할 ‘마더 어스‘ 즉, 대자연의 원천인 지구를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묻겠다. 원자폭탄과 헐크는 다른가? 우리가 동강낼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기분은 어떠한가? 그래, 우리가 얻게 된 초인의 지위에 걸맞은 이성을 갖지 못한 스스로, 아종(나 아, 무리 종)을 생각하면 과연 헐크랑 크게 다를 것인가? 고함만 질러대며 파괴를 반복하는 초록색 괴물, 아 물론 피부색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 굳이 직접 파괴를 자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괴물이 되어버린 것을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나 하나의 힘으로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아직 멸망에 대해 이야기하긴 멀고 먼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미명하에 얼마나 잔인한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가. 그를 생각해 본다면 세상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적을 것이고 또 말이 되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세상이 무한히 반복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떠밀려 다닐 수야 있나. 자세를 고치고, 마음을 먹고 다짐한다. 내가 신이라고.


신이란 무엇인가. 전지 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전지하고 전능하다면 존재할 이유란 또 무엇인가. 아니, 나아가 존재란 무엇인가. 존재는 반드시 소멸을 전제한다. 그러면, 소멸하지 않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소멸하지 않으려면 존재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 부처는 그 길을 진즉 깨달은 사람이고, 힘과 능력은 강해지는데 반해, 그 욕심이나 아집을 내려두지 못한 가여운 존재들을 보라. 그래, 결국 그들이 악마일 것이다. 심심하거나, 잘 모르겠거든 거울을 봐도 좋다. 잠시잠깐 지나는 사고의 편린들을 토대로 많은 것들을 적어 내린다. 어떤 것들을 적어 내릴 것인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적어낼 뿐이다.


세상이 많이 늦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진보가 이다지도 늑장을 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느린 진보라 하더라도 그 진보가 바탕이 된다면, 그를 막아서기란 쉽지 않다. 이런 것으로 위안을 받다니, 슬플 일인가. 아니면 기쁠 일인가.


남는 시간을 적절히 죽여버리는 일, 혹은 그대로 공기 중에 놓아 보내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게임이 유행한다. 사실 익이게 우리 안에서의 도파민 불꽃축제를 원하는 딱 그 정도의 일일 것이다. 기쁠 것은 없고, 기뻐할 것은 더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사유하는 존재, 소유냐, 존재냐를 고민할 수도 없는 세대에 태어났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기쁘기란 그렇게 어렵고, 선택을 위한 빨강, 파랑 약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디자인되어버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씨실과 날실을 얽어 어떤 무늬를, 면을, 특이하고 독특한 고유의 질감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디자인과 패턴이 세상에 놓여난 것은 아닌가. 우리 세대는 어떤 것에 첨착 해야 하고 어떤 것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


비가 온다. 여전히, 너무 많은 비가 온다. 이런 날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비가 와도 달릴 수 있는 세상이 좋다. 가진 것이 있어서, 잃을 것이 있어서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온몸이 칭칭, 수많은 줄들에 감긴 까닭이다. 그리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떤 것들이 생각이 난다. 그 생각들을 전부 놓아버릴 수 없다. 그 모든 것들을 시대로, 세대로, 폭력의 탓으로 돌려버리기엔 심지어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의아할 따름이다.


그러나 분명한 시대의 폭력은 있다. 우리가 왜 일을 하지 않는지. 왜 MZ들이 존엄을 팔기를 거부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시키기란 어렵다. 나는 MZ가 부끄러운 M의 세대지만, Z들은 확실히 다르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다가 교사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혀 머리를 뭉텅 깎여본 적이 있고, 교무실 뒤켠으로 불려 가 손찌검을 당했다. 얼굴, 다리, 몸통, 어디 할 것 없이, 그렇게 우리를 폭행하던 교사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마법의 기기에 힘을 잃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권’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또한 이러한 가증스러운 차별의 피해자라는 얘길 하고 싶다. 군 가산점을 없앤 세대다. 지금, 사병 월급이 150만 원을 확실히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라떼’는 병장 월급이 15만 원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한 역차별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송을 통해 우리의 인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우리의 지난 2년도 충분히 소중했으며, 그 시기에도 분명히 인권은 있었다. 외면하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을 뿐.


지금의 인구절벽이 그에 따른 항의일 것이다. 조금 더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 여성참정권, 인종차별, 부에 따른 차별, 그 모든 것들이 적절히 섞여 무한경쟁, 돈을 많이 번 어느 부자의 말처럼, 자는 동안에도 당신께 부를 가져다줄 방법을 찾지 못하면, 숙면조차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누군가에게 돈을 더 벌어다주기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가. 이 즈음이면, 망하는 것도, 전쟁통에 한번 쑥대밭이 되며 세대가 교체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코로나 방역이 너무 훌륭했던 것은 아닌가. 자조 섞인 후회를 한다. 그래, 그렇게 잘 한 방역 뒤에, 이렇게 못 한 방역도 있어서 시대는 역사는 더 큰 비교의 시선을 드리우겠지.


글을 적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제된 사유를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알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 수많은 폭력들이 어째서 지금은 용납되지 않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슬프고도 의아한 일이며, 그 혹독한 시대를 살아낸 모두, 그 시대가 요구하는 세금으로 바쳐버린 개개의 꺾여버린 마음과 사랑, 아아 어쩌면 좋을꼬.


하나의 사물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현상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기준의 다름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우리는 틀림과 다름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물론 비슷하다. 그러나 맞고 틀린 일에 대해서 눈을 감아버린다면 연대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다. 조금은 더 성숙히 논해야 할 것들이 있다. 다들 진정하고, 몸과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명상이 조금 더 널리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살아낸 10대의 피 끓는 마음을 어찌 모르랴. 빠르고 강한 것, 맛있고 강렬한 것에 첨착 해서, 10년 뒤를 내다보지도 못하고 나는 시골에선 못 살 사람이다. 그렇다고 더 대도시로 떠나지도 못한 부산 촌뜨기가 이렇게 되뇌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를 스스로 모를진대, 그 누가 더 나은 세상을 감히 주창하랴.


그래서 우리는 명상을 해야 한다.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조금 더 널리 보급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무엇도 우리를 훼손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비운 마음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상태로 사유하고 걷고 창조해야 한다. 비우고 창조하고, 또 비워낸 자리에 창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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